정부(혹은 국가)는 1차적으로 자국의 국민 보호와 영토 수호에서 그 존재의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 이런 전제에서 볼 때 17일 한국정부가 일본의 독도 도발에 대해 ‘해방의 역사를 부인하는 제2의 한반도 침탈’로 규정하고 단호한 대처를 천명한 것은 일단 평가할 만 하다고 하겠다. 독도분쟁의 역사가 반세기가 넘건만 그간 군경의 '전투수칙' 외에 '독도 우발사태'에 대한 특별한 매뉴얼 하나가 없었다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돌이켜보면 우리 현대사에서 적어도 박정희 정권 이래 일본에 대해 제목소리를 내본 정권은 거의 없었다. 어떤 정권은 경제협력을 이유로, 또 어떤 정권은 한일우호를 앞세워 일본에 대해 늘 저자세 내지 필요 이상의 관대함을 보여 왔다. 차원은 다소 다르지만 참여정부의 행태 역시 별반 다르진 않다.
지난 2003년 현충일날 취임 후 처음으로 일본을 방문한 노 대통령은 국내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한일간의 과거사 문제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했다. 이날(6일) 저녁 아키히토 일왕 주최 공식 만찬석상에서는 물론 고이즈미 총리와의 '한일 공동성명' 5개항 가운데 그 어디에서도 과거사 문제를 언급치 않았다. 일본 언론들은 이를 대서특필하면서 그 배경에 주목했다.
노 대통령은 방일기간 중 자신이 전후세대임을 강조하며 일본인들에게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를 역설했다. 노 대통령은 방일에 앞서 당일 오전 국립현충원에서 현충일 추념사를 통해 "과거의 고통스럽고 굴욕스러웠던 그 역사를 결코 잊지는 않을 것"이라며 "그러나 이제 분노와 증오로서 과거를 되살리는 것만으로는 새로운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노 대통령 '호의' 인정하나 나이브한 점도 있어
노 대통령의 이같은 발언은 일본 정치지도자들에 비해 도덕적으로는 한 차원 높은 것임은 분명하다. 노 대통령은 적어도 우리가 아픈 과거사를 넘어 미래지향적으로 나갈 경우 일본도 그에 응당하는 화답을 할 것으로 기대했던 것 같다. 노 대통령은 동북아의 평화와 공동번영을 위해 껄끄러운 사이인 일본마저도 ‘좋은 이웃’으로 만들고 싶었고, 그를 위해 일본에 대해 ‘호의’를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노 대통령의 그런 자세는 너무 ‘나이브’한 것이 아니었나 싶다. 노 대통령의 ‘파격적인’ 대일선언 이후로도 결과적으로 볼 때 일본은 종전의 행태에서 아무런 변화를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혹시나’ 했던 기대는 ‘역시나’로 돌아왔다. 툭 하면 일제 식민지배 미화발언을 하거나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 역시 그치지 않았다. 급기야 한국령인 독도를 버젓이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고 나서고 있다. 일본은 ‘이웃’으로서의 기본마저 지키지 않았다.
결국 참여정부의 대일정책은 '실책'으로 드러났다. 이는 이후 노 대통령의 태도 변화에서 입증된다. 작년 3.1절 기념사 말미에서 노 대통령은 "일본에 대해 한마디 충고하고 싶다”면서 “(일본의) 국가적 지도자가 우리 국민 가슴에 상처를 주는 발언을 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이 내용은 당초 원고에 없었던 것이다. 올 3.1절 기념사에서 노 대통령은 "양국관계 진전을 존중해서 과거사 문제를 외교적 쟁점으로 삼지 않겠다고 공언한 데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고 전제하고는 "진실한 자기반성의 토대 위에서 한일간의 감정적 앙금을 걷어내고 상처를 아물게 하는 데 일본의 지성들이 앞장서 달라"고 호소했다.
올해는 한일 양국에겐 특별한 의미를 갖는 해다.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한 ‘을사늑약’이 강제체결된지 100주년이자 해방 60년, 국교 재개 40주년이 된다. 한일양국은 아픈 과거사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선린관계 모색을 위해 올해를 ‘한일 우정의 해’로 정한 바 있다. 그러나 지금 돌아가는 형국을 보면 ‘우정’은커녕 발포만 안했지 ‘준 전쟁상태’로 돌입한 감마저 든다. 일본 시마네현 의회에서 ‘다케시마의 날’ 제정 조례를 통과시킨 16일 낮 일본 항공자위대 소속 군용기가 독도에 출현해 우리 공군이 쫓아내기도 했다.
2002년 한일월드컵 개최를 기념해 이듬해(2003년) 5월말 일본 도쿄에서 한일 친선 축구경기가 열렸다. 그런데 바로 그 다음날 일본 집권당의 정조회장(우리의 정책위의장격)은 도쿄대 강연에서 "창씨개명은 조선사람들이 원해서 한 것"이라고 허튼소리를 해댔다. 그로부터 6일 뒤인 6월 6일 노 대통령이 취임 후 첫 방일했는데, 노 대통령 일본 도착 1시간 전에 ‘유사법제’를 참의원에서 통과시켰다. 이 법은 일본이 ‘가공의 적’을 상대로 유사시 이웃나라도 공격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거의 해마다 일본문제로 스트레스 받는 한국인들
일제 강점기는 차치하고라도 해방 이후 일본이 한국(인)에 대해 행한 태도를 보면 일본을 도무지 ‘선한 이웃’으로 보기 어렵다. 좀 과하게 표현하자면 ‘깡패국가’나 다름없다고 할 수 있다. 한국전쟁 때 ‘전쟁특수’로 경제부흥의 전기를 맞은 일본은 과거사에 대한 제대로 된 반성이나 적절한 보상은커녕 오만과 몰염치로 일관해 왔다. 물론 여기에는 전통성이 결여됐던 한국의 역대 친일정권의 책임도 없진 않지만 근본적으로는 전후청산이 제대로 되지 않은 일본 지도층에 문제가 더 컸다고 할 수 있다.
독도 영유권을 둘러싼 한일간의 논란이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을 경우 전쟁이 나지 않으리라는 법도 없다. 정동영 NSC 상임의장은 17일 최근의 독도사태와 관련, 향후 ‘한일관계 4대 기조 및 5대 대응방향’을 밝히면서 일본의 독도 도발을 ‘제2의 한반도 침탈’로 규정했다. 또 정 의장의 발표에 앞서 한 정부당국자는 이날 낮 프레스센터에서 가진 언론사 외교담당 논설위원들과의 간담회에서 우리정부는 일본의 독도 도발에 대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대응책’을 마련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제 우리는 일본에 대해 나름의 결단을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일본을 버리고 갈 것인가, 아니면 그래도 같이 갈 것인가를. 일본과의 단교(斷交) 주장이 나오는 것도 이런 맥락이 아닌가 싶다. 혹자는 일본측에 ‘이웃의 소중함’을 일깨워주기 위해서라도 단교와 같은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그럴 경우 우리의 고통도 적지 않겠지만 일본의 고통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이런 최악의 상황은 근본적으로 일본측이 자초한 것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어림잡아 봐도 우리는 거의 해마다 일본문제로 전 국민이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이제 더 이상 한국정부가 일본에 대해 ‘쇠 귀에 경 읽기’식의 정책을 펴는 것은 용납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그런 방식이 아무런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지난 반세기간의 한일 역사가 이를 명쾌히 입증해주고 있다. 자칫 이런 주장은 합리적 논의에 앞서 강경론으로만 치부되기 쉬우나 엄밀히 말하자면 이는 '대응'의 하나일 뿐이다. 타국의 영토를 제 땅이라고 넘보는 '강도같은' 이웃에게 선린 운운하는 것은 호의나 관용 차원을 넘어 어리석은 행동일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