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쑥된장국에 밥 말아 먹으면 봄은 거진 다 먹는 셈입니다.
쑥된장국에 밥 말아 먹으면 봄은 거진 다 먹는 셈입니다. ⓒ 김규환
봄이다 봄. 봄을 시샘하던 추위도 저만치 물러갔다. 어둡던 세상도 한층 밝아졌다. 봄은 냇가에서부터 찾아왔다. 버들강아지 한껏 제 몸을 부풀리더니 물가엔 미나리 파란 싹이 돋아났다.

건너편에선 어서 어서 나오라고 아지랑이 손짓을 한다. 벌과 나비가 날개를 바삐 움직여 노란 민들레꽃에 앉았다. 아이 손잡고 아장아장 들로 산으로 나가 볼까. 몸도 가만 있질 못하고 제발 봄나들이 가서 풋내를 적셔 달라고 꼬드긴다. 아우성이다. 상춘가(賞春歌)를 불러 달라, 노란 풀밭에 풀썩 앉아 쉬어 보자, 탁영탁족(濯纓濯足) 서두르라 한다.

보리밭이 짙어갈 때입니다. 봄바람 살랑이면 손이 다 트겠지만 몇 줌 가져와 국 끓이면 좋겠습니다.
보리밭이 짙어갈 때입니다. 봄바람 살랑이면 손이 다 트겠지만 몇 줌 가져와 국 끓이면 좋겠습니다. ⓒ 김규환
참기 어려운지 자연은 잎보다 먼저 꽃을 흐드러지게 피워댄다. 새봄의 유혹은 이토록 사람을 가만두지 않는다. 좀이 쑤시는지 근질근질해서 뭉그적거리는 게 손해다. 천렵(川獵)이라도 한판 열어야 직성이 풀릴까보다.

내 오늘 달래나 한줌, 머위나 몇 뿌리 뜯어 보려 했다. 어허! 세상사 내 뜻이 아니로고! 허리를 조금 숙였더니 갓 깬 병아리 속살마냥 노랗고 파릇하며 뽈그족족한 가녀린 풀이 엎드려서 여기 나 살아 있으니 제 이름을 불러 달라며 하소연을 한다.

"아따 요놈들 보소. 솔찬히 컸구먼. 그려 내 한번 니들을 들여다보마. 가만 있자, 우리 아이들도 이참에 너희들을 확실히 꿰차게 하마. 그럼 봄나물 노래를 한번 불러보리다."

남녘엔 동백, 매화에 이젠 산수유가 피어날 때입니다.
남녘엔 동백, 매화에 이젠 산수유가 피어날 때입니다. ⓒ 김규환
정월이월에는 냉이가 나순개요, 된장나물이 광대나물! 코딱지나물에 좁쌀뱅이, 찹쌀뱅이 집된장에 어울리고 우지뱅이 씌워 땅에 뭍은 무 뿌리 착착 쳐서 냉잇국 끓여 눈밭 봄동 숙채 만들어 둘둘 비벼 보자.

대보름 묵나물로 가지 않겠다는 기나긴 겨울을 저만치 밀쳐 버리고 우리 기분 전환을 하자꾸나. 다래, 고로쇠, 자작나무 물 받아 놓고 콩 볶아 먹으며 '머슴 날' 하인들 잔치 열어 줬으니 하드렛날 하루 뻑적지근하게 놀아보고 농사철로 접어들게야. 보리밭이 야들야들 짙어지며 춤을 추면 누가 뭐라 해도 말릴 수 없당께!

쌉싸레한 머위싹 뿌리 언저리까지 캐서 무치면 봄의 의미를 다시 찾을 수 있습니다.
쌉싸레한 머위싹 뿌리 언저리까지 캐서 무치면 봄의 의미를 다시 찾을 수 있습니다. ⓒ 김규환
경칩, 우수 지나면 진짜 봄이다. 춘삼월 요때 나오는 싹은 삶아서 잘만 먹으면 독초도 나물이다. 가시달린 모든 싹은 약초라 했다. 뾰족뾰족 비집고 나오는 싹, 잡초, 풀잎 죄다 캐고 쥐어 뜯어 주무르면 반찬이라.

톱타자 납시니 이름은 달래라오. 달래장 두어 숟가락이면 밥 한 그릇 뚝딱 비벼 먹는 데 부족함이 없다. 스퀴즈에 능한 머위는 뿌리채 캐서 된장 고추장 섞어야 쓴맛 덜어낸다. 그래도 데치려면 산신령께 여쭤 보거라.

달래장 하나면 밥도둑. 머리가 맑아지고 졸음이 날아납니다.
달래장 하나면 밥도둑. 머리가 맑아지고 졸음이 날아납니다. ⓒ 김규환
지난 가을 쑥대밭이었던 들판은 쑥쑥 잔바람에도 앞뒤 색깔 다르게 흔들리며 검불에 묻혀 자갈도 함께 잘리겠다. 쑥 범벅이든 쑥국을 끓이고 푹 삶아서 얼려 놓아 두고두고 먹으리라. 아이 소풍갈 땐 쑥떡을 만들어 볼까.

나물을 다 캐기도 전에 벌써 소쩍새 쪽쪽 울어대니 두견화(杜鵑花) 고이 따서 지지고 술 담가 쌉싸래한 맛을 느껴봄이 어떠냐?

돗나물(돌나물)은 양지바른 언덕배기에 옹기종기 모여 삽니다.
돗나물(돌나물)은 양지바른 언덕배기에 옹기종기 모여 삽니다. ⓒ 김규환
새빨간 싹 땅을 들썩여 밀치고 올라오니 자네가 땅두릅인가? 맞다마다. 나물 캐러 들로 간 동네처녀 봄바람에 콧노래 절로 나네. 고들빼기, 씀바귀, 질경이, 자운영 캐오리까? 곤드레만드레 취하기는 곤드레만한 게 없지. 참비름, 돗나물마저 걷어 오리다.

나뭇잎 무성하지 않으면 참두릅 몇 개 따고 참취, 쑥부쟁이 들국화 지천일세. 잔대, 하수오 상큼한 향 가득 담으리라. 막 된장에 막걸리 한잔 생각 간절하니 산을 더 뒤져 오갈피 싹, 개두릅에 참 옻 순까지 톡 톡 톡 끊어 입에 넣어 보자. 다랫잎 홑잎 훑고 산마늘, 산부추, 원추리 동행하면 망태기 넘치겠다.

민들레와 개망초도 봄나물에서 빼놓을 수 없지요.
민들레와 개망초도 봄나물에서 빼놓을 수 없지요. ⓒ 김규환
해가 붉어지기도 전에 아이들 집에 가자고 보채니 속절없이 내려오다 코를 찌르는 강렬한 이끌림은 또 뭔가. 잠자던 보랏빛 더덕 새싹이 고개를 쑤욱 내밀고 있네그려. 칡순, 찔레 꺾어 아이 몫으로 던져주면 덩달아 입막음은 걱정 없다.

고사리, 고비는 다음으로 미뤄도 좋으니 어서 집으로 돌아가 요리조리 한 소쿠리 벌여 놓고 순수하게 장만하여 눈, 코, 입 단속부터 하자꾸나.

산부추 꽃입니다. 가을에 참 보기 좋게 피더군요. 향이 무척 진합니다.
산부추 꽃입니다. 가을에 참 보기 좋게 피더군요. 향이 무척 진합니다. ⓒ 김규환
다른 공기 쏘이고 하루를 걸었더니 약(藥) 한 알 먹지 않아도 온몸이 가뿐하다. 곁들여 자연이 내린 보드라운 약채(藥菜)로 보신하니 소화마저 자유롭다. 이래서 봄은 생동하는 계절인가. 몸도 제 주인을 잘 만나야 호강하니 이 찬란한 봄 새뜻한 맘으로 분위기 전환시켜줌이 좋지 않겠나.

벌써 남도엔 봄바람에 자던 세상이 깨어 있겠다. 봄날 노랗게 산수유꽃과 생강나무꽃이 옅은 수채화를 그려 놓았겠네. 어젯밤 비가 왔으니 무척이나 퍼졌겠다. 오늘, 밤잠이나 설치지 않을까 몰라.

산수유 필 때 산에는 기분 좋은 향기가 코피를 터트릴 힘으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이 꽃이 김유정의 <동백꽃> 주인공입니다.
산수유 필 때 산에는 기분 좋은 향기가 코피를 터트릴 힘으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이 꽃이 김유정의 <동백꽃> 주인공입니다. ⓒ 김규환

덧붙이는 글 | 남도의 향기를 맡으러 버스를 대절하여 내일 제 고향에 갑니다. 아직 여분이 있으니 콧바람 쐬실 분은 011-9043-4549로 전화 주시기 바랍니다. 소쇄원과 식영정, 백아산을 눈으로만 봐도 즐거울 겁니다. 

김규환 기자는 <잃어버린 고향풍경1>(하이미디어 刊)을 냈다. <홍어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cafe.daum.net/hongaclub)대표이다. 올 연말 쯤 전남 화순 백아산으로 귀향하여 산나물 백화점 <산채원 山菜園>(cafe.daum.net/sanchaewon)을 만들 꿈을 현실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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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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