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국내 언론들은 안철수연구소 안철수 사장의 ‘은퇴’를 비중있게 보도했다. 안 사장은 1962년생이니 올해로 만 43세다. 아직 ‘사오정’에도 못미치는 나이다. 보통 최고경영자(CEO)의 나이로 봐도 현역에서 물러날 나이는 아직 아니다. 아마 그래서 다들 충격으로 받아들이는 모양이다.
창업10주년을 맞는 지난 18일 안철수 사장은 창업 10주년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CEO 자리에서 물러나 공부를 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이사회 의장으로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그는 “주주 모두를 위한 좋은 지배구조를 만들고 큰 방향을 제시하는 일을 하겠다”며 “몇 년만 지나면 노안으로 돋보기가 필요할 텐데 그 전에 대학원에 들어가 학생으로 공부할 생각”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안철수 사장은 의대 출신이다. 그러나 그는 사람의 병을 고치는 일 대신 컴퓨터의 병을 고치는 일에 나섰다. 그리고 큰 성공을 거두었다. 지난해 안철수연구소는 국내 소프트업계 사상 최고실적(매출 338억원, 순이익 106억원)을 거두며 정상의 자리에 올랐다. 그게 그가 물러나는 하나의 계기가 됐다. 그는 “최고의 자리에서 새 출발하는 차원에서 CEO직을 김철수 부사장에게 넘겼다”고 밝혔다.
"공익과 이윤추구가 서로 상반된 게 아니란걸 보여주고 싶었다"
그의 행보도 물론이거니와 안철수연구소 홈페이지에 실린 그의 퇴임사가 더 깊은 감동을 던지고 있다. 여태 우리는 이런 기업인을 만나보지 못했다. 필자는 이제 우리나라에도 이런 기업인이 실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자긍심마저 느껴졌다.
"안철수연구소를 경영하면서 지난 10년간 세 가지를 이루고자 노력해왔습니다. 첫 번째로 한국에서도 소프트웨어 사업으로 자리를 잡을 수 있는 워킹 모델(working model)을 만들어보고 싶었습니다. 지식정보의 가치가 인정받지 못하고 왜곡된 시장구조의 척박한 토양 하에서도 다음 세대를 위한 한 가닥 희망의 빛이라도 남겨놓고 싶었습니다. 두 번째로 현재 한국의 경제 구조 하에서 정직하게 사업을 하더라도 자리를 잡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보고자 노력해왔습니다. 투명경영, 윤리경영이 장기적으로 더 큰 힘이 되는 사례를 만들어 보고 싶었습니다. 세 번째로 공익과 이윤추구가 서로 상반된 것이 아니라, 양립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이 세 가지가 안철수연구소 구성원 모두가 이 땅에서 숨쉬고 살아가면서 스스로 인식하고 노력해온 ‘존재 의미’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는 경영철학으로 기업이 다음 세대의 한 가닥 빛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자 했고, 또 정직한 기업인이 성공하는 사례를 보여주고자 했다. 특히 공익과 이윤추구가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양립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대목은 일반인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그간 천박한 자본주의의 첨단에 서 있던 한국의 기업인에 대해 그는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이제 한국사회에도 그로 인해 존경받는 부자가 있을 수 있음을 그는 10년간의 기업경영을 통해 몸으로 보여줬다. 그로 인해 떳떳한 부자, 이른바 ‘신 부르조아’의 탄생이 예고된 것이다.
안철수보다는 나이로는 네 살 많고 지명도에서는 다소 떨어지나 결코 가볍지 않은 이름으로 오한흥이 있다. 그는 충북 옥천 소재 <옥천신문>의 대표다. <옥천신문>은 서울의 ‘조중동’과 같은 거대한 일간신문사도 아니고 MBC, KBS와 같은 공중파 방송에 비하면 영향력도 미미하다. 한마디로 시골동네의 지역신문에 불과하다.
그러나 한국 언론사에서 <옥천신문>이 던지는 메시지는 결코 작지 않다. 한겨레신문조차 조중동에 밀려 뿌리를 내리지 못하던 이 척박한 땅에서 그는 창간 10년만에 지역에서 가장 사랑받는 신문으로 성장시켰다. 창간초기 4면으로 시작하던 이 신문은 현재 16면~20면 규모의 신문으로 성장했고, 유가부수 3500부를 자랑하고 있다. 이 신문은 국내에서 발행부수를 공개하는 몇 안되는 신문에 속한다.
“나 아니면 안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특히 그는 보수성향의 옥천땅에 언론개혁의 깃발을 꽂으면서 지역의 보-혁을 아우르는 전략을 펴 유례없는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그는 조선일보의 친일전력 등을 수 차례 자사신문에 보도하였고, 이를 통해 조선일보의 반민족 죄악상을 낱낱이 파헤쳤다. 지역신문으로선 하기 힘든 일이었다. 그런데 뜻밖에 큰 성과를 거뒀다. 이른바 '옥천전투'로 불리는 옥천신문의 '발칙한 거사'는 국내 풀뿌리신문의 발달사에서 하나의 귀감이 되고 있다.
1989년 이 신문을 창간하는데 주도적으로 참여한 오 대표는 편집국장을 거쳐 현재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오 대표는 오는 31일 주주총회에서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날 예정이다. <옥천신문>의 최대주주인 그는 주식 전체를 회사에 귀속시키고 의결권은 노조에 넘길 작정이다. 후임 대표이사에는 현 편집국장을 내정한 상태다. 그의 ‘물러남’은 전적으로 자의적인 것이다.
'은퇴' 배경을 두고 그는 “나 아니면 안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며 “대학을 졸업하고 첫 직장으로 <옥천신문> 기자로 들어와 취재부장을 거친 현 편집국장에게 대표이사직을 물려주는 것은 대단히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대표이사직을 떠나더라도 <옥천신문> 직원들이 잘 꾸려나가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럼 그는 이제 무엇을 하려는가. 지난해 <옥천신문>은 몇몇 지역언론사들과 함께 <여의도통신>을 창간했다. <여의도통신>은 '국회의원 개개인을 밀착 마크해 모니터한 결과를 그 의원을 선출한 유권자들이 구독하는 풀뿌리언론에 지속적으로 공급함으로써 유권자와 정치인의 ‘소통’을 돕는 뉴 패러다임 언론 매체'다.
"한국언론사에 ‘국내 최초의 국회의원 모니터 전문 매체’로 기록될 여의도통신은 ‘정치개혁’과 더불어 ‘지방분권’과 ‘언론개혁’을 동시에 지향하고 추구합니다. 여의도통신은 이를 위해 작고 소박하고 천천히, 그러나 우직하고 끈질기고 구체적으로 노력할 것입니다."(<여의도통신> 홈페이지에서)
현재 <여의도통신>은 전국구 의원을 포함, 25명의 현역 의원을 마크하고 있다. 그는 이 매체를 키우는데 주력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미 자리를 잡은 <옥천신문>의 기득권을 모두 내던지고 그는 또다시 황무지나 다름없는 빈 들판으로 나선 것이다. 그는 이 일이 그에게 새로운 임무로 주어졌다고 판단하고 있다.
두 사람의 '아름다운 퇴장'에 박수를 보내며, 제2의 도전에서 또다시 알찬 결실을 거두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