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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이기원
토요일 오후 아내와 아이들을 태우고 시골집으로 갔습니다. 제사음식으로 무엇을 준비하시는지 먼발치로 보이는 집에서는 흰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나고 있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직접 만드는 게 정성이라며 제사 때나 자식들이 오는 날이면 장독대 곁에다 솥 걸어놓고 불을 때서 음식을 준비하십니다.

집에 도착해보니 어머니는 방에서 나물을 다듬고 계시고 아버지는 장독대 곁에 앉아 불을 때고 계셨습니다. 아버지는 항암치료 받고 퇴원하신지 5일이 되었습니다. 퇴원하신 뒤 건강이 걱정이 되어 몸은 좀 어떠시냐고 여쭤보았습니다.

“집에 와서 며칠은 속이 울렁거려 혼났다.”

큰 어려움 없이 3차 항암치료까지 받으셔서 다행이다 싶었는데 아버지 말씀을 들으니 걱정이 되었습니다. 지금은 어떠시냐고 했더니 지금은 밥도 잘 먹고 소화도 잘되니 걱정 말라고 하십니다. 그리곤 오히려 제사 음식이 너무 간소하지 않은가 걱정하십니다.

“이번엔 이해해주실 거예요. 준수도 걸어서 학교 다니고 아버지 수술도 잘 끝났잖아요.”
“그러면 좋을 텐데.”

ⓒ 이기원

ⓒ 이기원
장독대 옆 무쇠 솥에서는 송편이 익고 있습니다. 그 옆 양은솥에서는 닭을 삶고 있습니다. 아궁이 앞에서 연기 마시면서 불 지피는 아버지의 모습은 어린 시절부터 보아온 아주 익숙한 모습입니다. 그 모습을 보면 저절로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어린 우리들을 키워주시던 아버지의 꾸밈없는 모습 그대로이기 때문입니다.

ⓒ 이기원
어머니께서는 그만하면 다 익었을 거라며 솥에서 떡을 꺼내십니다. 어머니가 빚고 아버지가 불을 때 익힌 송편입니다. 편하기로 따진다면 돈 주고 사다 제사를 지내야겠지만 정성이 빠지면 그게 무슨 소용이냐며 뜨거운 송편을 맨손으로 잘도 꺼내십니다.

제사 준비가 끝나갑니다. 준수도 쓰러지고 아버지도 쓰러져 서울과 원주의 병원을 오가며 애태우며 살던 게 불과 석 달 전이었습니다. 이젠 아버지도 준수도 집으로 돌아와 생활하고 있습니다.

제사상을 받으실 할아버지가 이 모습을 보신다면 어떤 표정을 지으실까 궁금했습니다. 하지만 할아버지의 얼굴은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할아버지는 내가 태어나기 전에 돌아가셨고 사진도 한 장 남겨두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덧붙이는 글 | 제 홈페이지 http://www.giweon.com에도 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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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서 있는 모든 곳이 역사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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