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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원! 이 놈 들이 아주 우리를 죽이지 못해 작정을 했구먼!"
장판수는 성 밖 청나라 진지를 공격하기 위해 훈련대장이자 동성대장인 신경진의 휘하에 새벽부터 모여든 이들을 보며 기막혀 했다. 모여 있는 이들은 바로 전 날, 원군을 요청하러 선전관이 성 밖으로 보내려 했던 자들이었다. 장판수와 함께 온 시루떡은 사람들을 보며 읊어대었다.
"보소보소 웬일인가. 모집나가 죽기 싫어 그냥가고 말았는데, 도로 다시 오고 마네!"
사람들이 그 어조에 킬킬거리자 시루떡은 신명이 나 한 소리를 더 하려 했지만 신경진이 한 무리의 궁수와 포수들을 이끌고 와 더 이상 말을 계속할 수 없었다.
"뛰어난 자들로 각 진지에서 차출되었다고 들었는데 왜 이런가!"
신경진의 호통에 기가 막힌 이들은 신경질적인 표정으로 대꾸를 대신했다. 그들은 어제 일에 대한 벌로 다시 이 자리에 불려 나왔다고 여기고 있었다.
"오늘 오랑캐들의 진지를 치기 위해 특별히 사람을 가려 뽑아 온 데는 이유가 있느니라. 여기 모인 20여 명과 훈련도감에서 온 사수(射手)와 포수 이 십 여명이 힘을 합해 오랑캐의 중군을 친다."
장판수는 어이가 없었다. 겨우 사십 명으로 적의 중군을 치는 것은 차라리 나가 죽으라는 소리나 다름없었다. 장판수가 부당함을 말하려는 찰나, 신경진이 크게 소리쳤다.
"초관 장판수와 한기원은 앞으로 나오라!"
장판수와 또 한명의 초관이 나서자 신경진은 낮은 목소리로 작전을 말했다.
"긴밀히 움직여 적의 진영에 불을 놓고 나오는 적을 잡되 오래 끌어야 하느니라. 동북쪽에 있는 암문으로 나가면 적의 중군이라 생각되는 닿을 수 있을 것이니라."
"장군님. 이건 너무 무모합네다."
장판수의 말에 신경진은 노랗게 뜬 얼굴로 윽박질렀다.
"자네와 저 자들이 모집에 응하지 않았다 들었네! 목숨을 거는 일이 아니라 적의 주의를 끄는 일인데 뭐가 어렵다고 하는 겐가! 이 일을 맡지 않겠다면 오직 군율로 다스리겠네!"
장판수는 이를 갈며 그 자리에서 물러나왔다. 암문을 나서며 장판수는 으르렁거리듯이 사람들에게 일렀다.
"내래 딴 건 바라지 않아. 모두들 살아야 한다우. 내래 솔직히 말하갔어. 니들이래 살아 있는 거 원하지 않는 자들이 있어. 나보고 하나씩 죽이라고 말한 놈도 있어. 기래도 난 그 말을 따르지 않갔어. 여기 있는 사람들이래 두 눈 시퍼렇게 그 놈들보다 더 살아야 한다우. 그럼 그 놈들도 더 이상 우리를 괴롭히지 못할 기야."
장판수의 말이 끝나자 뒤에서 누군가의 얕은 한숨이 터져 나왔다. 성 밖으로 나온 이후 병사들은 자신의 발소리에 신경을 곤두세운 채 청나라 진지로 숨어들어갔다. 반복되는 조선군의 기습에 청나라 진지의 경계가 한층 강화되었지만 진지 깊숙이까지는 그리 신경을 쓰지 않아 장판수와 병사들의 잠입은 쉽게 이루어 질 수 있었다.
'빠져 나가는 것이 문제다!'
장판수는 불만 지른 뒤 도망쳐 나갈 생각이었고 그러기 위해서는 시끄럽기만 한 포수의 총은 필요가 없었다.
"화약과 화살을 모으라우."
포수들도 장판수의 말뜻을 안 듯 신속히 화약을 모으기 시작했다. 장판수는 자신이 가슴에 차고 있던 지갑(紙甲 : 종이 갑옷)을 칼로 찢은 뒤 시루떡을 불렀고 시루떡은 능숙한 솜씨로 두터운 종이에 화약을 싼 뒤 옷에서 뜯어낸 무명실로 묶은 뒤 화승을 연결해 화살촉에 매달았다.
"됐다! 불을 붙이라우!"
사수들은 시위를 당겼고 포수들은 익숙한 솜씨로 불을 댕겼다. 화승이 반 이상 탔을 때 장판수는 일제히 쏘라는 신호를 보냈고 청의 진지에 떨어진 화살은 '펑'하는 소리와 함께 불길을 내뿜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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