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산길을 가는 사람들
산길을 가는 사람들 ⓒ 안준철
나는 이틀 동안의 휴일을 앞두고 종례 시간에 반 아이들에게 이런 말을 해주었다.

"내일 특별한 계획이 없으면 혼자서 길을 한 번 떠나보세요. 평소에 그런 생각 많이 하잖아요. 어딘가를 훌쩍 떠났다가 오고 싶다고. 친척집도 좋고, 가까운 산도 좋고요. 아니면 여러분이 살고 있는 동네라도 오래 동안 한 번 걸어보세요. 걸으면서 여러분 자신과 깊은 대화를 나눠보세요."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던 그 아이

까마득히 잊고 있다가도 산길을 가거나 오래 길을 걷다보면 문득 생각나는 아이가 있다. 그는 심리치료가 필요할 정도로 내성적인 아이였다. 이틀째 결석을 해서 가정방문을 해보니 제 방에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왜 결석했느냐고 물으니 방바닥만 뚫어져라 쳐다볼 뿐 아무 말이 없었다.

전혀 말을 하지 않는 아이와 함께 앉아 있는 것처럼 힘든 일도 없다. 말을 시키거나 대답을 강요하면 저도 자신이 답답한지 제 가슴을 쥐어뜯기도 했다. 뭔가 도움이 필요한 아이인데,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이렇다할 해결책이 없다보니 결석일수가 위험수위까지 차올라 학교에서는 자퇴를 권유해보라는 말이 나왔다. 본인도 자퇴를 원했고, 부모들도 속이 상할 만큼 상한 터라 순순히 자퇴원에 도장을 찍어주었다.

자퇴원을 서랍에 넣어두고 나는 마지막으로 그를 찾아갔다. 수업을 오전에 몰아서 하고 조퇴를 신청하여 학교를 빠져 나왔던 것이다. 그날도 방바닥만 쳐다보고 있는 아이에게 나는 이렇게 말했다.

"너도 마음이 답답하지? 우리 나가자. 난 걷는 것을 참 좋아하거든. 오늘은 학교 생각 하지 말고 그냥 한없이 걸어보자.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그냥 걷기만 하자. 네 곁에 선생님이 있다는 생각도 하지 말고 아주 편한 마음으로. 어쩌면 이것이 너와 마지막 시간이 될지도 모르잖아?"

산에 오르는 아이들
산에 오르는 아이들 ⓒ 안준철


그를 치유한 것은 혹시 '길'이 아니었을까?

그날 우리는 약 6시간을 함께 걸었다. 산과 들과 방천길을 따라 걷다가 배가 고프면 허술한 간이식당에 들어가 라면을 시켜 먹고 다시 걸었다. 서로 말이 없었고, 들꽃을 꺾어 건네줄 때도 "받아" "예"하고 눈으로만 대화를 나누었다.

그러다가 밤이 이슥해졌고, 드디어 헤어질 시간이 돌아왔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다시 선생으로 돌아와 고민에 빠져 있을 때, 그의 입이 벌어졌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그 말뿐이었다. 하지만 뭔가 사뭇 달라진 모습이었다. 그에게 나도 딱 한 마디만 했다.

"네 자퇴원 아직 내 서랍 안에 있다."

다음 날 그는 학교에 오지 않았다. 그 다음 날도. 삼일째 되는 날, 그는 학교에 나왔다. 그 후로는 학교생활에 잘 적응을 해나갔다. 나는 생각해 보았다. 무엇이 그의 병을 고친 것일까? 그를 치유한 것은 혹시 길이 아니었을까? 길을 걸으면서 스스로 길을 찾지 않았을까? 누구보다도 자기 자신과 깊은 대화를 나누면서.

청소년기를 지나는 아이들은 어느 누구라도 심리적으로 불안한 상태에 있다. 그것은 지금 자기 삶의 그림이 그려지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다. 불안함 속에서도 그 그림을 스스로 완성하도록 기다려주고 도와주는 것이 어른들의 몫이요, 바른 교육의 모습일 터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월간지 <국토>에 기고한 글을 깁고 보탠 것입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ㄹ교사이자 시인으로 제자들의 생일때마다 써준 시들을 모아 첫 시집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로'를 출간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이후 '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 조촐한 것들이' '별에 쏘이다'를 펴냈고 교육에세이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 '오늘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 '아들과 함께 하는 인생' 등을 펴냄.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