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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3월 26일에 열린 추모식 모습.
2004년 3월 26일에 열린 추모식 모습. ⓒ 윤평호
나는 기자다. 지금처럼 <오마이뉴스>에 가끔 글을 올리는 시민기자이기도 하지만 충남 천안의 동네 신문에서 기사를 써서 밥을 먹고 있는 전업기자이다. 전업기자라는 고백은, 적어도 한국 사회에서 밑져야 본전인 고백이 아니다. 나는 정치인이라고 고백했을 때 대부분 사람들의 시선이 싸늘하게 돌변하듯 '언론 불신'이 만연한 한국 사회에서 전업기자에 대한 시선은 결코 곱지 않다.

기자 생활 초기부터 언론의 사명을 비유적으로 일컫는 '예방견'이라는 말을 좋아했다. 어려운 말은 아니다. 말 그대로 '예방하자'고 짖는 개다. 잠수함 속의 토끼가 승무원들보다 공기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 승무원들의 생존 조건에 첨병 역할을 하듯 한발 앞서 열심히 짖어 문제나 사고 발생을 예방하자는 것이다.

기자 생활 8년차. 이제 언론은 예방견이 아니라 '미친개'가 돼 가는 것 같다. 도둑이나 수상한 사람을 보고 짖기는커녕 엉뚱한 행인에게 달려 들어 피해만 안기는 개. 평소에는 짖지 않고 오직 배고플 때만 생존을 위해 목청껏 짖어대는 개. 주인의 명령이라면 똥인지, 된장인지도 구분 않고 덤벼드는 개. 남이 짖으니까 그냥 덩달아 짖는 개.
그리고 예방견으로서 영민한 머리와 날렵한 체구는 잃은 지 오래. 육중한 몸매로 고깃집만 어슬렁거리다 사고나 문제가 발생하면 떼거리로 몰려드는, 조금 더 시간이 흐르면 자신들이 무엇을 보고 짖었는지도 망각하는 개.

천안초등학교 축구부 화재 참사 2주기인 26일 오늘, 문득 나도 미친개를 닮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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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초등 참사 어린이들 눈물의 입관식

그 많던 기자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9명 초등생의 목숨을 앗아간 천안초 축구부 합숙소 화재 현장.
9명 초등생의 목숨을 앗아간 천안초 축구부 합숙소 화재 현장. ⓒ 윤평호
2003년 3월 26일 오후 11시 20분께 천안초등학교 축구부 합숙소에서 불이 나 이곳에서 잠자던 축구부원 8명이 연기에 질식, 숨지고 17명이 크게 다쳤다. 며칠 뒤 중상을 입었던 학생 1명이 추가로 사망, 천안초 축구부 합숙소 화재참사로 모두 9명의 축구 꿈나무들이 졸지에 목숨을 잃었다.

나는 기억한다. 화재 발생 이후 천안초등학교는 물론 단국대병원에 마련된 빈소와 영결식장, 부모와 가족들의 오열 속에 아이들의 주검이 한줌 재로 변하던 수원의 화장터. 그리고 광덕의 천안공원 묘원에 아이들의 유골이 합장되던 날.

그 비통의 순간들을 벌떼처럼 누비던 수많은 방송·신문 기자들. 하기야 학교체육·엘리트체육의 병폐가 불거지며 전 국민적 추모 분위기가 조성되던 이슈였으니, 대규모 취재진이 몰리는 것은 당연. 어쩌면 내가 평생 만나게 될 기자들보다 더 많은 수의 기자들을 그때 보았던 것 같다. 천안단국대병원에 빈소가 마련된 초기에는 취재진의 쇄도로 유족들이 오히려 자리를 찾지 못해 기자들이 빈소에서 내쫓기는 해프닝도 빚어졌다.

그때만큼은 아니였지만 천안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축구부 합숙소 희생학생 1주기 추모식'이 열렸던 2004년 3월 26일에도 지방과 전국의 많은 방송·신문기자들이 추모식장을 찾았다. 1주기를 앞두고 몇몇 신문과 방송에서는 천안초 축구부의 재건과 부상 학생들의 재활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그리고 2005년 3월 26일. 때가 되면 앞다퉈 새로운 소식들을 줄기차게 쏟아내는 신문과 방송 어디에서도(내 우매한 눈과 귀가 발견을 못한 걸까) 천안초 축구부 화재참사 2주기와 관련된 뉴스는 접할 수 없었다.

화장장에서 아들의 관을 부여잡고 오열하는 어머니.
화장장에서 아들의 관을 부여잡고 오열하는 어머니. ⓒ 윤평호
사실 내가 보고 싶었던 뉴스는 화재참사 2주기를 맞는 유족들의 표정이나 부상 학생들의 최근 정황도 아니었다. 지금도 어디에선가 흙먼지나는 모래 운동장을 박박 뛰고 있을 초중고교 축구부원들. 근본적으로는 학교체육과 엘리트체육의 문제점들이 아홉 명 어린 학생들의 죽음 이후 얼마나 개선됐는지, 변화가 없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지에 대한 심층 뉴스를 기대했다.

영민한 머리와 날렵한 체구로 또다시 사고가 발생하기전 한발 앞서 현장을 쫓는 예방견들의 기민한 모습을 보고 싶었다. 천안초 축구부 합숙소 화재참사의 의미를 유족들과 피해 학생들의 울타리에 가둬 놓을 때 우리 사회는 진보할 수 없다. 그러나 어쩌랴. 그 많던 기자들은 사라지고 남은 건 또, 유족밖에 없으니…. 화재참사 희생 학생들을 땅에 묻고 오던 날, 취재수첩 귀퉁이에 끄적였던 시가 기억난다.

어미는 눈물도 말랐다./ 자식을 앞서 보낸/ 어미는 눈물도 말랐다./ 마른 가슴에 남은 건,/ 분노와 후회./ 너희들의 죽음 앞에서도/ 변하지 않는 세상./ 변하지 않는 세상에/ 너희를 낳은 후회./ 마른 가슴, 마른 땅에/ 너희를 묻고 오던 날/ 어미는 제 몸의 반쪽도 두고 오는구나/

상처는 덮어야 한다?
천안초·천안교육청 화재참사 2주기 추모식 생략

▲ 이성구 천안교육장과 교육청 직원, 천안초 교장.교감이 묵념을 하고 있다.

우형식 충남도교육감 권한대행과 천안교육장, 시장·국회의원 등 각급 기관장과 학생 등 1천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지난해 3월 26일 열린 ‘축구부 합숙소 화재사고 희생학생 1주기 추모식’과 달리 올해는 공식적인 추모식이 생략됐다.

지난 26일 오전 10시경 천안초 축구부 화재참사 희생 학생들이 합장된 천안공원의 묘역에는 유가족들 외에도 이성구 천안교육장과 교육청 직원, 천안초등학교 교장·교감이 묘역을 찾았다. 이성구 교육장과 교육청 직원, 천안초 교장·교감은 헌화와 묵념을 한 뒤 묘역주변을 정리하고 있던 김창호씨와 몇마디를 나눴다. 화재 참사로 아들 바울군을 잃은 김창호씨는 유가족대책위원회 회장을 맡았었다.

이 교육장은 “교육감은 부득이한 약속 때문에 오지 못했다”며 말문을 열었다. 이금호 천안초 교장은 “어제 축구부원과 학생대표, 어머니회장 등이 묘역을 다녀갔다”며 “오늘은 주5일째 수업이 실시되는 매월 넷째주 토요일로 학교는 쉰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창호씨는 “오늘 만이라도 기억을 해줬으면 좋겠다”며 학교가 쉬지 않았으면 별도의 추모식 계획이 있었는지 여부를 물었다. 이금호 교장은 “어제 학교 방송으로 묵념의 시간도 가졌다”며 “휴교일만 아니면 계획을 수립했을 것”이라고 짧게 답했다.

유족들이 별도의 시간을 갖도록 잠시 뒤 교육장과 교직원들은 묘역을 떠났다. 하지만 주5일제로 인한 휴교 때문에 2주기 추모식을 생략했다는 학교와 교육청의 주장에 대해서는 이견이 제기되고 있다.

교육 분야를 취재하는 한 기자의 말에 따르면 지난 23일 천안초등학교를 방문, 2주기 추모식 계획을 물었을 때 "교장과 교감이 천안초에서 26일이 어떤 의미가 있는 날인지도 몰랐다"고 전했다. 이들은 기자가 재차 묻자 "3월 발령으로 학교를 충분히 파악하지 못했다"는 변명과 함께 주5일제 수업에 따른 학교휴무만 강변했다고 한다.

2주기 추모식을 등한시하기는 천안교육청도 마찬가지. 천안교육청 역시 어린 영혼들의 넋을 기리고 학교시설의 안전에 대한 경각심을 고취시키려는 계획이 없었으며 화재참사 발생일조차 모르고 있는 실정이었다. 교육청 관계자는 "1주기 추모식이 의미가 있을 뿐, 다시 상기해서 좋을 것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유가족 관계자는 "교육청은 합의보상으로 모든 책임에서 자유로워진 것처럼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며 "천안초 화재사건은 천안초 울타리안에서 발생한 대한민국 교육계의 고질적인 문제점을 드러낸 사건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당시 화재사건 수사를 한 경찰 관계자도 "3월 26일은 천안지역에서 결코 잊어서는 안될 날이고 이날을 잊는 것은 어린 영령들에게 또 다른 죄를 범하는 것과 같다"고 밝혔다.

2주기 추모식의 생략건을 취재한 이 기자는 "1주기 추모식에서 불과 한해가 지났건만 망각되서도, 망각해서도 안될 대형참사를 잊고 있는 지역교육계를 비롯해 지역 사회의 무관심이 어린 영혼들을 더욱 애처롭게 한다"고 지적했다. / 윤평호 기자

덧붙이는 글 | 98년 대학 졸업 후 천안지역 주간신문사에서 일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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