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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기운 완연한 낙성대. 전통 혼례식장에 초례청이 열리고 사람들 웅성웅성, 한쪽에선 고기굽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오늘(27일)은 미국인 부부 로버트와 지니가 두번째 결혼식을 올리는 날입니다.
남들은 한 번 하기도 힘든 결혼식을 두 번이나 올리는 복(?) 아닌 복을 누리는 이 부부에게는 어떤 사연이 있을까요?
지니(Jeanie), 그녀의 한국 이름은 진희입니다.
머릿글에 그들을 미국인 부부라고 이야기했지만 어쩌면 미국인 신랑과, 피는 한국인 100%지만 국적은 미국인 신부라고 해야 정확한 소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양부모님은 그녀의 한국이름을 본따 발음이 비슷하도록 ‘지니(Jeanie)’라고 지었습니다. 지니는 7살 되던 해 너무나 힘든 가정형편 때문에 고아원에 맡겨졌다가 다시 미국인 부부에게 입양되었습니다. 구구절절 말로 다 하지 않아도 한 가족이 헤어져 살게 된다는 것은 너무나도 뼈아픈 일일 것입니다.
가정형편 때문에 핏줄과 헤어져야 하는 어머니의 심정이 그러할 것이고, 또 아직 어리광이나 부리며 응석받이로, 귀염둥이로 사랑받으며 지낼 나이에 부모를 떠나 고아원에서, 또 다시 태평양 건너 미국이라는 곳에서 전혀 낯선 언어와 문화를 새로 배워야 하는 고통은 당사자가 아니고서는 짐작하기 힘든 일입니다.
성인으로 자란 지니는 지난해 모 방송국 프로그램을 통해 자신을 버려야만 했던 그 어머니를 만나러 한국에 오게 되고 감격의 상봉을 하게 됩니다. 이미 결혼해서 한 아이의 엄마이자 한 남자의 아내가 된 지니…. 기억하기 싫은 어린 시절의 악몽과 함께 그녀는 한국말도 거의 잊어버린 채로 한국에 돌아와 어머니를 만나게 됩니다.
어른이 되어서 다시 만나게 된 어머니 앞에 신부의 모습으로 다시 서고 싶었을까요?
곧 다시 와서 남편과 한국식으로 결혼을 다시 하고 싶다고 이야기하던 지니는 꼭 1년만에 한국을 다시 찾아 오늘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초례청에 섰습니다.
예식이 시작되고 신랑이 입장합니다.
120kg이나 나가는 거구인 신랑에게 동양에 있는 아내의 나라 풍습대로 치르는 이 결혼식이 꽤 낯설겠지만 구경하는 우리 또한 마찬가지로 낯설고 또 한편으로는 재미있기도 합니다.
사물놀이패를 앞세우고 마당으로 들어서는 신랑행렬 앞에 청사초롱을 들고 나란히 선 두 아이는 지니의 아들과 딸입니다.
신랑은 먼저 장모님께 들고 온 기러기를 바치고 절을 두 번 올려 예를 갖춥니다.
곧이어 신부가 혼례식을 위해 자리로 들어섭니다.
작년처럼 머리에 노란 물을 들였다면 오늘과 같이 한복이 잘 어울리지는 않았을 겁니다. 한복을 입혀놓으니 영락없는 한국 색시이지 않습니까?
전통혼례의 하이라이트는 뭐니 뭐니 해도 신랑신부가 서로에게 술잔을 건네 나눠 마시는 부분이 아닐까요?
특별한 오늘의 결혼식에는 몇 가지 재밌는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습니다.
거구인 신랑이 장모님께 절을 올리려 마루에 오르는데 발이 너무 커서 신발을 벗는데 애를 먹기도 하고 전통혼례에 익숙하지 않아(누군들 익숙하진 않겠지만) 읍(두 손을 마주잡아 얼굴까지 들어올렸다가 허리를 굽히고 인사하며 내려놓는 인사법)을 해야할 때 절을 하고 또 절을 해야 할 때 읍을 하기도 하니 엄숙한 결혼식이 아니라 흥겨운 잔칫날 분위기가 되었습니다.
신부에게 큰 절을 올립니다. 어색할 텐데 연습을 많이 했는지 절하는 모습은 자연스럽습니다.
오른편에는 신랑측 부모와 하객이, 왼쪽에는 신부측 부모와 하객이 자리잡는 게 보통인데 오늘 신랑측 부모님 자리에는 신랑의 어머니와 신부의 어머니가 나란히 앉아 계십니다.
왼쪽은 신랑 로버트의 어머니이고 오른쪽은 신부 지니를 키워준 양어머니입니다. 반대편 신부측에는 지니를 낳아준 친어머니가 앉아계시는 까닭입니다.
결혼식이 끝나자 아름다운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지니를 낳아준 어머니와 키워준 어머니가 부둥켜안았습니다. 비록 말은 통하지 않아 깊은 속내를 터놓고 나누지는 못했겠지만 말하지 않아도 마음으로 모두 통했을 것입니다. 간간히 들려오는 지니 친어머니의 흐느낌에 그 동안의 마음고생이 얼마나 컸는지 짐작이 갑니다.
정식으로 청첩장 돌리고 제대로 격식 갖춘 결혼식이라 하객도 많이 참석했습니다. 하객들 중간 중간에 한복 입은 외국인들이 참으로 이채롭습니다.
오늘 예식을 위해 태평양을 건너온 하객들은 신랑 로버트의 어머니와 신부 지니의 양어머니, 그리고 로버트의 누이와 조카, 그리고 지니의 아들과 딸입니다.
형형색색 모이고 보니 지구촌이 바로 여기군요.
신랑 측 하객 중에 단연 돋보이는, 한복이 아주 잘 어울리는 이 예쁜 소녀는 신랑 로버트의 조카입니다. 외삼촌의 결혼식을 위해 멀리서 날아왔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 그녀는 행복하겠지만 지난 시간을 돌이켜보면 지울 수 없는 고통스러운 시간이 있었을 것입니다. 또 모든 입양아들이 오늘의 지니와 비슷한 삶을 살지는 않을 것입니다.
어느 가정에서건 이런 불행한 가족사가 더 이상 생겨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리고 지니의 양어머니를 부둥켜안고 울어야 하는 친어머니나 자신을 낳아준 부모님을 위해 다시 한번 결혼식을 올리는 지니도 없어야 할 것입니다.
꽃가마 탄 색시는 이제 신랑의 나라 미국으로 곧 떠납니다. 꽃가마 뒤에 아팠던 기억은 두고 즐거운 순간들만 갈무리해서 싣고 돌아갔으면 합니다.
덧붙이는 글 | 작년에 지니가 한국에 처음 왔을 때 관광안내를 맡은 인연으로 오늘의 결혼식에 초대되었습니다. 지니의 앞날에 행복이 함께 하기를 기원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