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1년 소위 ‘유서대필사건’으로 3년간 옥고를 치른 강기훈씨 사건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시민사회의 공동 대책위원회가 발족했다.
이창복 전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이하 전민련) 상임의장(현 경기대 이사장)을 상임대표로 하고 김상근(목사), 박정기(박종철 열사 부친), 이부영(단국대 민주동문회 회장), 임기란(민가협 전 상임의장), 함세웅(신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등을 공동대표로 하는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사건 진상규명 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가 29일 오전 10시 안국동 느티나무 카페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공식 출범을 선언했다.
박래군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기자회견에는 사건 당사자인 강기훈씨는 물론, 대책위 공동대표단, 조순덕 상임의장을 비롯한 민가협 회원들, 전태일 열사 모친 이소선씨, 이한열 열사 모친 배은심씨, 열린우리당 이인영 의원, 천주교인권위원회 변연식위원장, 민변의 이덕우 변호사 등과 강기훈씨와 함께 활동하던 전민련동지회 회원들이 대거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김기설 열사가 분신하던 당시 전민련 의장이었던 이창복 상임대표는 여는 말을 통해, “이 사건의 진상규명은 한 개인의 명예와 인권을 회복하는 문제이며 동시에 사회를 맑게 하는 일"이라며 동참을 호소했다.
과거 강기훈씨와 함께 전민련활동을 했고, 대책위의 집행위원으로 참여한 열린우리당 이인영 의원은 “후배인 김기설씨가 분신을 한 일로도 너무나 가슴이 아팠는데, 선배인 강기훈씨가 완전히 조작된 '유서대필 사건'으로 옥고를 치렀다”며, "14년 동안 비겁함과 부끄러움을 마음속에서 지우지 못한 채 살아왔다. 이제 진상을 밝혀야 할 때"라고 말했다.
또, 대책위 집행위원장을 맡은 김선택 전민련동지회 회장은 “책임이 무겁다”며, “전민련에서 활동 했던 모든 동지들이 함께 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이날 오랜만에 공식석상에 모습을 보인 강기훈씨는 “검찰에 의해 고문을 받으면서, 친지들이 곤욕을 치르는 것을 보면서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고 당시를 회상하며, “당시에 자신을 고문하고, 모욕했던 검사들이 고속승진을 하여 검찰의 요직에 있다는 사실을 도저히 인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에도 검사들은 김기설 열사의 유서와 자신의 필적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주장하면서 “진상규명을 통해 이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라”고 말하면서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대책위 발족선언문을 낭독한 함세웅 신부는 선언문 낭독 전, “군사독재시절의 검찰은 중앙정보부와 안기부의 하수인에 불과했다. 모든 공안 사건의 조작은 안기부에서 이루어졌고, 검찰은 꼭두각시였다”며 “그러나 유독 유서대필 사건만은 검찰이 자신들 스스로 사건을 조작하고 확대시켜 무고한 사람을 옥고를 치르게 했던 일임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 당시 검찰은 물론 판결을 내렸던 법관들 역시 책임을 물어야한다”고 강조했다.
대책위는 발족선언문에서 “한 인간을 동료의 분신을 부추기고, 방조한 반인륜적 범죄자로 만든 이 사건은 강기훈씨뿐 아니라 당시 모든 민주세력을 도덕적으로 매장하려는 음모였다”고 지적하고, “검찰이 자기고백을 통해 이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고 희생자들과 국민에게 용서를 구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회를 맡은 박래군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는 “국정원을 시작으로 경찰과 군에서도 과거조작·의혹 사건의 진상규명을 통해 새롭게 태어나려는 노력을 시작했지만, 유독 검찰만은 아직도 움직임이 없다”며, “검찰도 과거사 진상규명에 나서야한다”고 촉구했다.
대책위는 내일(30일) 열리는 검찰총장 내정자의 인사 청문회 현장에서 방청할 계획이다. 이어 신임 검찰총장에게 공개 질의서를 보내, 검찰이 "권력의 시녀"노릇을 해 온 가장 대표적인 사건이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임을 지적하고, 총장이 이 문제의 진상규명을 위해 나설 것을 촉구하는 한편, 이 사건 조작에 관련된 현직 검사들의 면직을 요청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덧붙이는 글 | 천주교인권위 홈페이지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