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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 흐느끼는 용
“전사가 포획한 물건은 작은 것일지라도 그 사람에게 도로 주는 것이 마땅하니, 이 뜻을 여러 대장에게 하교하는 바이다.”
다음날 마치 장판수의 일을 알고나 있었다는 것 같이 이러한 어명이 내려졌고 이로 인해 신속히 조치가 취해졌다. 장판수가 노획한 청군의 무기와 투구가 고스란히 돌려보내진 것이었다. 병사들은 이 일을 두고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에는 석연치 않다며 입을 모았다.
“어제 사람들이 그 일로 인해 몰려다니지 않았나. 누군가 그 일을 고해바친 게 틀림없네.”
“그게 누군지는 몰라도 우리에게 해로운 일을 한 자는 아닌 듯하이.”
“그걸 어찌 아나? 고해바친 놈이 이상하게 말했는데 임금님께서 현명하게 하교하신 일일 수도 있네.”
아침을 먹고 나서 장판수와 시루떡은 어영청의 부름을 받고 또다시 차출되어 갔고 그 곳에는 역시 한기원과 그 일행들이 모여 있었다.
“젠장, 이젠 아예 노골적으로 해보자는 것이구만!”
장판수는 기가 막힌다며 한탄했지만 한기원은 그런 장판수를 다독거렸다.
“어영청의 병사들은 내가 익히 아는 바이오. 어제 일이 잘 풀렸고, 오늘 출전은 전하께서 친히 호궤(군사들을 위로함)하신다니 내 꼭 할 말을 해야겠소이다.”
잠시 후, 4백여 명의 병사가 도열한 가운데 인조가 나왔고 병사들은 긴장된 표정으로 땅에 엎드려 왕을 맞아 들였다.
“모두 일어나라. 대오를 갖추라. 출전하는 마당에 어찌 찬 바닥에 병사들의 무릎을 상하게 할 수 있다더냐.”
병사들이 조용히 일어서자 인조는 느린 어조로 말을 이어갔다.
“어려운 때에 용사들의 충절이 종묘사직을 보전케 할 뿐이나 딱히 호궤하여 베풀 것은 없도다. 다만 적을 무찔러 포획한 물건은 그대로 되돌려 주어 호궤할 것이며 그 공을 자손 대대로 치하할 것이니라.”
인조가 짧게 말을 마치고 들어가려는 순간 한기원이 대오에서 옆으로 천천히 나와 땅에 엎드려 말했다.
“전하!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비단옷 입은 사람을 장수로 정하면 자기는 성 밑에 앉아 있으면서 병사들만 나가 싸우게 하니, 오히려 사기를 위해서 있느니만 못합니다. 그러하니 대오 중의 사람을 장수로 정하여 출전하도록 하소서!”
한기원을 끌어내고자 내관이 나서려 했지만 인조는 태연히 이를 만류하고 한기원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네가 생각하는 장수감이 누구인가?”
한기원은 머리를 푹 숙인 채 답했다.
“대오에 초관 장판수라는 인물이 있사옵니다. 그를 장수로 삼으시옵소서!”
장판수는 그 말에 놀랍고 당혹스러웠지만 자리가 자리인지라 함부로 나서 이를 만류하기도 어려웠다. 답변을 기다리며 기대에 차 있는 한기원에게 인조는 실망스런 말을 남겨 두고서는 자리를 떠났다.
“그런 일은 내게 직접 하지 말고 너희 대장에게 하는 것이 옳지 않겠느냐?”
인조가 간 뒤 어영대장 이기축이 달려와 엎드려 있는 한기원에게 발길질을 해 대었다.
“네 이노옴! 네 놈이 조정의 대신들을 능멸하려 드느냐! 이놈!”
이기축이 아예 칼까지 빼어들려 하자 병사들은 앞 다투어 이를 말렸는데 그 눈치와 기세가 심상치 않았다. 병사들의 분위기를 눈치 차린 이기축은 못 이기는 척 칼을 집어넣고 소리쳤다.
“그래 너희들이 원하는 데로 한번 해보아라! 초관 장판수가 누구인지 이리로 나와 보아라!”
장판수는 내키지 않은 표정으로 앞으로 나섰고 이기축은 그의 손에 검을 쥐어주었다.
“이 검이 너를 장수로 삼는 징표라 여기고 어디 나가 힘껏 싸워 보거라! 이번 싸움은 기습이 아니니 만만치 않을 것이니라!”
검을 받아 든 장판수는 병사들을 뒤돌아보았고 그들의 눈빛이 새로운 기대에 가득 차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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