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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선생님, 그럼 저는 내일부터 어떻게 해요?"
"글쎄, 어떻게 해야하지. 아직 급식비지원 대상자가 선정되지 않았는데 말야."
"…"
"내가 다시 한 번 알아볼테니 나중에 다시 얘기해 보자."

엊그제였나요. 아침에 4월 급식비 납입고지서를 나누어주고 난 뒤에 우리반 학생이 저에게 찾아와서 나눈 대화입니다. 이 학생은 가정형편이 어려워 이미 급식비지원신청을 해 놓은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아직 급식비 지원 대상자 발표가 나지 않아서 당장 내일부터 점심 식사를 어떻게 해결해야할지 난감한 모양입니다.

물론 우리반에는 이 학생보다 가정형편이 더 어려운 생활보호대상자 학생들이 있는데 이 친구들은 다행히 급식문제가 이미 해결된 상태라 그나마 한 시름 놓고 있습니다. 문제는 그 위에 분포하는 극빈가정의 학생들입니다.

이 친구들은 가정환경조사서를 바탕으로 해당 동사무소에서 재산이나 소득 내역을 조사해서 학교에 통보하면 학교에서는 담임선생님 추천서와 이를 바탕으로 해서 정해진 인원 수만큼 급식비지원 대상학생을 선정할 수 있는데 여기에 선정되어야만 급식비지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행정실이죠? 급식비 지원학생 선정하려면 시일이 얼마나 걸리나요?"
"동사무소에서 아직 조사한 내용이 오지 않았습니다. 그게 와야 되거든요."
"네, 알겠습니다."

서둘러 우리반 학생이 살고 있는 동사무소에 연락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곳 동사무소에서는 이미 조사한 내용을 학교측에 알렸다고 그럽니다. 다시금 행정실로 연락을 했습니다.

"이미 학교에 보냈다고 그러는데 그게 도착하려면 시간이 좀 걸리는 모양이지요?"
"아, 그래요? 그 학생 주소지가 어디입니까?"
"송정동입니다."
"송정동에서는 이미 와 있습니다. 다른 동사무소에서 아직 오지 않은 것들이 있어서 심사를 못하고 있지요."
"그럼 언제쯤 오죠?"
"글쎄요. 지금 계속 재촉을 하고 있으니 조만간 오겠죠."

다음 수업을 마치고 다시 그 학생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지금 일이 어떻게 되어가는지 설명을 해주었지요. 그런데 설명을 다 듣고 난 이후에도 이 학생 얼굴에는 어둠이 남아 있는 듯합니다.

"그래 내일부터 넌 어떻게 할거니?"
"다이어트나 해야할까봐요."
"어떤 식으로?
"그냥 굶는거죠 뭐?"
"…"

그 학생을 교실로 올려보내고 다시금 행정실로 인터폰을 연결했습니다.

"뭐 뚜렷한 방법이 없을까요? 당장 내일부터 4월이 시작되잖아요."
"글쎄요."
"그냥 일단 급식은 받고 이후에 면제받을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럼. 일단 급식비는 납입하고 급식을 받도록 하는게 어떨까요. 그리고 나중에 급식비지원대상학생으로 선정되면 그때는 납입한 금액을 다시 돌려주거든요."

다시 학생을 불렀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겠어?"
"예."

그러나 대답이 영 시원치 못합니다.

"미리 급식비를 납입할 수 없어도 일단 학교 급식은 받도록 해라."

난 아주 확고한 어조로 다짐을 받고자 했으나 끝내 대답은 듣지 못했습니다.

학생을 돌려보내고 잠시 생각에 잠겼습니다. 아니 잠시 침울한 심정에 휩싸였다고 말하는 게 더 정확하겠죠. 저 역시 학창시절에 교납금 때문에 고통받고 자잘한 학교 납입금 때문에 학교에 갈까 말까 하는 갈등을 수없이 겪었던 터라 웬만큼 어려운 학생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만 그 문제가 또다시 이렇게 현실로 다가오니 평소의 여유는 오간데 없고 그저 착잡한 마음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퇴근을 하고 저녁 뉴스를 얼핏 보았습니다. 뉴스 첫 꼭지에 학교 선생님이 두루 촌지를 받고 있다는 기사가 나옵니다. 조금 자세하게 보고 싶어서 컴퓨터에 앉아 <오마이뉴스>에 접속해 보았습니다. 역시 첫 화면에 촌지 수수를 당연하다고 말하는 사람과 관련된 기사가 버티고 있습니다.

순간 의문이 들었습니다. 촌지수수가 교직 사회에서 그렇게 일반적인 현상일까요. 10년 남짓한 교직 경력을 갖고 있는 내가 그동안 받은 촌지가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첫 발령지에서 우리반 실장 부모님이 보내온 5만원짜리 상품권을 받고 돌려 줄까 말까를 망설이다 결국 받고 말았던 경험이 있습니다.

그리고 학교를 옮기고 또다시 상품권 10만원 짜리를 받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망설임없이 돌려드리면서 제 뜻을 전달했지요. 우려했던 것과는 다르게 그 학부형님도 제 뜻을 잘 헤아려 주셔서 이후로 촌지에 대해서는 무조건 돌려보낸다는 원칙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후 단 한번도 나의 원칙을 내세울 기회가 없었습니다.

나 같은 경우는 교직사회에서 아주 독특한 사례일까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내 주위의 선생님들을 둘러 봅니다. 그분들 역시 평소 학부형님들이 간혹 가져오는 음료수 한 병에도 당황한 빛이 역력한 분들입니다.

그리고 저의 이런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해서 한가지 바람을 가져봅니다. 대다수 교사들을 위해서도 촌지관련 보도는 조금 더 신중했으면 하는게 그것입니다. 물론 그러면서도 교직사회에서만큼은 촌지 수수가 절대 발붙이지 못하도록 우리 사회가 함께 노력해야 한다는 마음 역시 간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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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만 들어도 가슴이 벌렁거리는 '기자'라는 낱말에 오래전부터 유혹을 느꼈었지요. 그렇지만 그 자질과 능력면에서 기자의 일을 수행할 수 있을까 하는 자신에 대한 의구심으로 많은 시간을 망설였답니다. 그러나 그런 고민끝에 내린 결정은 일단은 사회적 목소리를 들으면서 거기에 대해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내생각도 이야기 하는 게 그나마 건전한 사회를 만들어 가는 데 필요치 않을까, 하는 판단이었습니다. 그저 글이란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진솔하고 책임감있게 표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 있는 글쓰기 분야가 무엇인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일상의 흔적을 남기고자 자주 써온 일기를 생각할 때 그저 간단한 수필정도가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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