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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철영의 말에 중인들은 그 말이 옳다고 생각했다. 상황을 본다면 그의 생각이 정확했다. 그래서 손을 쓰되 죽이지 않은 것이다. 죽인 것과 부상을 입힌 것에는 차이가 많다. 한번 죽으면 다시 살아 올 수 없다. 분타주가 죽었다면 개방에서 그냥 물러설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하지만 부상을 당했다면 이야기는 틀려진다.

“하분타주의 상세는 심한 편이 아니오?”

풍철영의 물음이 이어졌다. 걱정되어 묻는 것 같지만 풍철영은 무언가 감을 잡은 모양이었다.

“최소 두달 정도는 동냥하러 다니지 못할껄.”

홍칠공의 말에 풍철영은 고개를 끄떡였다. 예상한 대로라는 의미였다.

“당분간 구파일방의 눈과 귀를 더디게 하자는 의미도 있었군. 역시 육능풍다운 생각이야…."

풍철영의 뇌까리는 말에 일행들은 모두 깨달았다. 철혈보는 하필 왜 하강을 대상으로 하였을까? 일단 신검산장을 주위로 벌어지는 일에 대한 정보는 모두 분타주의 손에 취합된다. 그것은 개방의 총타에서 내려 온 인물들이 있어도 마찬가지다. 분타주가 일을 못 본다는 것은 마비가 되는 것은 아니더라도 정보 수집에서 취합, 선별 등에 이르기까지 많은 문제를 야기 시킬 수 있다. 또한 정보의 생명은 신속이었고, 그 점에서 치명적인 결함을 드러낼 수 있었다.

그렇다고 왜 분타주를 공격했느냐고 따질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분명한 것은 구파일방의 무학에 의해 철혈보의 인물들이 죽었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모든 증거를 가지고 있을 터였다. 결과야 어떻든 구파일방의 무학에 의해 철혈보의 인물들이 죽었다면 구파일방의 제자가 아니라고 아무리 변명해도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풍철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그 일로 이곳에 온 것은 아니다. 풍철영 역시 갈유에게 은근한 기대를 가지고 있느니만큼 시급하게 처리할 일이 있었다.

“이제 가 보기로 하시지요.”

그의 말에 실내에 있던 사람들 모두 일어서자 풍철영은 뒷문을 통해 내원으로 이어지는 난간 쪽으로 걸어갔다. 그 난간은 연못을 가로 질러 놓인 오장 정도 길이의 목교(木橋)와 연결되었는데 그 목교는 풍취 있게 뻗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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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이미 누렇게 변해버린 연못의 갈대숲에서 지하로 연결되는 환기구를 찾은 것은 신검산장에 들어와 칠일 동안 한군데도 놓치지 않고 조사한 결과였다. 그리고 그곳을 따라 지하에 들어 온지 벌써 이틀하고도 한나절이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석로(石路)는 그들을 수십 번이나 지나온 길을 다시 걷게 하는 고생을 시켰다. 그리 크지 않을 것이란 예상을 깨고 신검산장의 지하는 오히려 지상의 전각보다 훌륭했다.

청강석으로 만들어진 지하는 어두웠지만 시야를 가릴 정도는 아니었다. 곳곳에 불을 밝힐 수 있는 화대(火臺)가 있었지만 불을 켜지 않아도 움직이는 데는 지장이 없었다. 야명주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어디에선가 교묘하게 햇빛이 들어오고 있다는 증거는 밤이 되면 앞을 전혀 볼 수 없을 정도로 캄캄해진다는 점에서 알 수 있었다.

더구나 지하는 대개 습기가 차게 마련이었다. 자연통풍이 되지 않는다면 습기로 인해 곰팡이도 피어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것이 전혀 없었고, 습기를 느낄 수 없었다. 그것은 이곳 지하를 설계한 자가 토목지학(土木之學)의 달인(達人)이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들은 최대한 조심했다. 본래 야행(夜行)과 잠입(潛入)에 있어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그들이었다. 보통사람이라면 바로 앞에 있어도 그들을 알아보지 못할 터였다. 그들은 들어 온지 하루 만에 병기고(兵器庫)를 발견했다. 각종 병기가 진열되어 있는 그곳은 그들이 찾는 곳이 아니었다. 아마 신검장주가 수집한 신병이기를 보관하는 곳인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름난 신검이나 기병(奇兵)이 없는 것으로 보아 그리 중요한 곳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또 다른 곳이 있을 터였다. 일단 그들은 지하의 중심부로 들어가고 있다는 생각을 했고, 이틀이 지나면서 통로 끝에 있는 석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사방 아홉자 크기의 좁은 석실이었는데 그 안의 석탁(石卓) 위에 관(棺)이 하나 놓여 있음을 발견한 그들은 가슴이 맹렬히 뛰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그들이 지금껏 찾아 헤매던 물건(?)이었다.

그 관은 남수(南壽)로 만든 것이었다. 이렇듯 좋은 관은 값이 많이 나가 웬만큼 사는 사람들도 쓸 수 없는 관이었다. 우아한 나무결과 은은한 향은 분명 남수만이 가질 수 있는 특징이었다. 그들은 확신했다. 관에는 나무못이 열여섯 군데에 박혀 있어 이미 대렴(大斂, 입관하는 의식)이 끝난 모양이었다.

‘또 하나는 어디 있을까?’

석실 전체를 머리카락 한 올 들어갈 틈까지도 샅샅이 뒤졌던 사내의 말에 여인은 고개를 흔들었다.

‘아직 살아 있는 게 아닐까요?’

그럴 가능성은 희박했지만 배제할 수는 없었다. 일단 하나를 찾긴 했지만 또 하나를 찾아야했다. 사내는 단단히 묶여진 소매 끝에서 거미줄처럼 가는 실을 뽑아 여자에게 건넸다.

‘암와(巖蛙). 너는 여기에 있어라. 우리 모두 다른 하나를 찾다가 이곳마저 잃어버리면 안 된다. 하나가 있는 것으로 보아 또 하나는 가까운 곳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

암와라 불린 여자는 그의 생각이 옳다고 생각했다. 이 신검산장의 지하는 너무나 복잡했다. 자칫하면 길을 잃을 수 있는 미로였다. 그들은 기억력이 비상했지만 이곳에서는 모두가 비슷해 아무 소용이 없었다. 더구나 실은 그들을 연결해 주는 요긴한 것이었다. 그들 사이에는 이 실로 대화를 할 수 있었다. 한 쪽에 무슨 일이 발생하면 곧바로 대처할 수 있었다.

그녀는 기다렸다. 한시진 정도 지났음에도 그녀의 손끝에 잡힌 실에 아무런 반응이 없는 것으로 보아 비류(飛流)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러다 문득 미세한 진동을 느끼자 그녀는 석벽에 귀를 대고 미세한 소리를 들었다. 돌로 만들어 진 곳은 하나의 특징이 있었다. 아무리 설계를 잘 했더라도 석재의 특성 상 흙이나 목재로 만든 곳보다 그 진동과 소리는 멀리 울려나가게 되어 있다. 분명 누군가가 이곳 지하로 들어 온 것 같았다. 그리고 느껴지는 진동으로 보아 어제나 그제와 달리 한사람이 아니었다. 적어도 열명 이상이었고, 발자국 소리도 예사롭게 느껴지지 않았다.

‘비류가 위험할 수 있다.’

그녀는 실을 잡아 진기를 주입한 후에 두 번 짧게 당겼다. 그러자 곧 바로 자신의 손에 줄이 한번 당겨지는 느낌이 왔다. 그것은 그가 돌아온다는 신호였다. 그 역시 누군가가 이 지하 석실에 들어 왔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그녀는 일단 관이 놓여져 있는 석실을 나섰다. 너무 좁은 곳이기 때문에 누군가가 들이 닥친다면 몸을 은신할만한 장소가 없었다. 그녀는 실을 감으며 비류가 가까이 다가옴을 느꼈다. 연락이 없었던 것으로 보아 비류는 또 하나의 물건을 찾지 못했다. 하지만 하나만 가지고 이곳을 빠져 나가는 것이 옳을 것이다. 관을 들고 나가려면 어두워져야 한다. 그러려면 적어도 세시진 이상을 기다려야 했다. 그녀는 비류와 함께 이 근처 어딘가에 세시진 이상 몸을 숨기고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제38장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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