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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가 모이면 숲을 만들어진다. 사람들이 모이면 시장이 들어선다. 말하자면 시장은 사람이 만든 숲인 셈이다.
대전 구 도심인 중교 다리 위에선 지금 임시 나무 시장이 열리고 있다. 해마다 4월 한 달 동안 열리는 이 나무 시장에는 멀리 옥천 등에서 나무를 사러 모여든다. 휴일에는 차가 지나다니기 어려울 정도로 나무를 사러 사람들이 몰려든다. 나무가 모여드니 자연스럽게 사람 숲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곳에서는 각종 나무들이 새로운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나이 지긋한 아저씨들이 주로 찾는 나무는 정원에 키울 나무나 유실수, 그리고 조상의 묘소를 단장할 측백나무나 황금측백나무 같은 것들이다.
아주머니들이 찾는 것은 나무 보다는 아기자기한 화초 종류가 대부분이다. 그 중에서도 공기정화식물로 각광받고 있는 산세베리아의 인기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다. 산세베리아는 일반인들에게 공기정화식물로 널리 알려져 있는 벤자민, 스킨, 관음죽 등 보다 10~30배 이상의 음이온이 발생하며 키우기도 그리 어렵지 않다고 한다.
나무 시장에서 이 나무 저 나무를 기웃거리다 보니 눈에 확 들어오는 색다른 나무가 있다. 노란 모란. 백모란이나 적모란은 봤지만 황모란은 머리털 나고 처음인지라 나무 주인에게 물으니 개량종이라 한다.
지난해 겨울 볼 일 보러 서울에 올라갔다가 대학로 앞을 지날 때였다. 우연히 들여다 본 꽃집 화분 속에서 녹색꽃을 본 적이 있었다. 잎이 품고 있는 녹색과 꽃이 품고 있는 녹색이 확연히 구분되지 않는 꽃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잎과 꽃의 색이 구분되지 않는 꽃이란 얼마나 슬픈 것인가를 생각하며 우울해했던 기억이 난다.
봄철 꽃 가운데 가장 화사한 꽃 중의 하나인 영산홍은 진달래과에 속하는 관목이다. 얼핏보면 진달래나 철쭉과 겉모습이 비슷하다. 그러나 영산홍은 이들에 비해 붉은 빛이 더 선연하다.꽃이 질 때면 벚꽃처럼 꽃 이파리가 하나 둘씩 바람에 흩날리는 것이 아니라 동백꽃처럼 모가지 채 떨어지는 것이 일품이다.
분홍빛 영산홍, 담홍색 대왕영산홍, 하얀 영산백, 자주색 자산홍 등 종류도 많다. 순천 선암사는 매화로도 유명한 곳이지만 고려 영산홍과 자산홍도 화려함의 극치를 달린다.
꽃의 생김새로 보아 매화 종류가 분명해 보이는데 이름을 도통 짐작할 수 없는 분홍 꽃이 있었다. 나무 주인에게 물으니 호주매화라고 한다. 우리 나라 매화처럼 뜨락에 심기 보다는 화분에 심는 것이 좋다고 한다.
매화 백매, 홍매, 강매, 납매, 녹엽매, 중엽매, 원앙매 등 종류도 매우 다양하다. 수양매는 능수버들처럼 가지가 늘어졌다 해서 능수매라고도 부르는데 수형(樹形)이 매우 특이하다.
일반적으로 백매 보다는 홍매가 추위에 강하기 때문에 북쪽에서 사는 사람들은 홍매를 심는 것이 좋다. 백매를 심었다간 자칫 개화 도중에 추위를 만나게 되면 꽃이 채 피지도 못한 채 사그라질 염려가 있기 때문이다.
이 나무 시장에서는 일반 나무 뿐만 아니라 분재도 많이 나와 있다. 소사나무나 매화나무 느티나무 등 갖가지 종류의 분재가 저마다 맵시를 뽑내고 있지만 우리의 눈길을 잡아끄는 것은 실제 소나무만한 크기의 소나무 분재들이다. 주인에게 물으니 산에서 채취해서 30년을 기른 것들로서 시가 300~450만원을 호가한다.
산을 오르다보면 종종 큰 소나무 뿌리 주위를 빙 둘러가며 흙을 떠놓은 풍경을 보거나 작은 나무를 살짝 다듬어 놓은 것을 볼 수가 있는데 이는 나무를 캐가거나 분재를 하기 위한 사전 정지 작업이라고 보면 틀림없다.
소나무 뿌리를 살짝 떠놓고 기다리는 것은 소나무의 식생이 까다로워 단번에 캐갔다간 죽기 십상이기 때문에 미리부터 적응을 시키는 것이다.
이맘때쯤 꽃이 피어 진한 향기를 발하는 나무 중엔 천리향이 있다. 꽃의 가운데는 흰색 바깥이 홍자색인 천리향의 본래 이름은 서향인데 향기를 강조하다보니 보통 천리향이라 부르는 나무다.
습기 있는 그늘에서 잘 자라는 늘 푸른나무이며 아파트에서는 한 겨울에도 짙은 초록색의 윤기나는 잎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이 나무가 가진 미덕이다.
꽃을 구경하며 다리의 양끝에 이르면 천변에 죽 늘어선 꽃집들이 나온다. 겨울꽃으로 인기있는 시크라멘은 아직도 꽃집의 맨 앞에 앉아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우리 나라 꽃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 중에 속하는 하늘매발톱이 벌써 나와 있다. 본래 4~5월에나 피는 꽃이다.
야생화를 키우다 보면 아파트에선 제 아무리 신경을 써도 꽃을 고사시키는 일이 허다하다. 내 개인적인 경험에 따르면 야생화를 키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야생화가 자라는 곳을 눈여겨 봐뒀다가 가을에 씨앗을 받아 키우는 것이다.
식물은 싹이 움트는 곳이 고향이다. 고향에서 움터야 환경에 가장 잘 적응하는 법이니 사람살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사람으로 치면 꽃집에서 산 꽃은 아파트가 타향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몸살을 앓다가 결국은 죽고 마는 것이다.
올해도 연례 행사처럼 식목일이 지나갔다. 나무를 심고 가꾸는 것은 반짝 사랑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숲이 망하면 지구가 망하고 사람도 살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