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안개에 잠긴 섬자락 오솔길을 따라 올랐습니다. 산 정상을 휘감고 도는 안개속에서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몽환적인 분위기에 사로잡히고 말았습니다.
중의무릇을 비롯하여 복수초, 노루귀, 변산 바람꽃, 꿩의 바람꽃, 현호색, 산자고, 붉은 대극 등이 새벽 안개 속에서 아름다운 자태를 피워내고 있었습니다.
야생초 찾아 나선 지 2년 밖에 되지 않은 새내기가 이렇게 집단으로 서식하고 있는 군락을 본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꽃사진을 찍을 때는 꽃의 특성을 잘 보여주기 위해 근접촬영을 하지만 오늘은 야생화 군락 전체를 화면에 담았습니다. 그 이유는 바람꽃, 현호색, 애기중의무릇이 함께 어울려 핀 꽃을 근접 촬영으로 보여주면 "이것은 야생화 군락지에서 찍은 사진이 아닌 화원이나, 수목원 등 재배단지에서 촬영한 조작된 사진"이라는 오해를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변산바람꽃이 해풍에 휘날리는 오솔길을 따라 정상에 오르자 복수초와 꿩의바람꽃, 현호색이 저마다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으며 떨어진 솔방울 틈새에 노루귀가 그 예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산과 들녘의 야생화는 같은 종류끼리 집단으로 모여 살지 다른 종들과 어울려 사는 것을 본 적이 없었는데 이 섬의 야생화들은 너와 나를 가리지 않고 상생하고 있었습니다,
전날 보았던 '중의무릇'이 누군가의 손에 의해 통째로 파헤쳐져 보이지 않았습니다. 함께 했던 탐사 일행은 지자체에서 야생화 보호를 위한 어떤 조치를 취하기 전까지는 야생화 군락지 지명을 인터넷을 통해 공개하지 않기로 굳게 약속했습니다.
이 섬에서 태어나 45년을 살았다는 최기복씨에게 "언제부터 이 섬에 야생화 군락이 있었느냐" 고 묻자 "이름은 모르지만 사시사철 어김없이 노란꽃, 하얀꽃, 분홍색 꽃들이 피어나 그 꽃 속에서 뛰어놀며 자랐다"고 대답했습니다.
누가 나에게 그 섬에서 무엇을 보고 왔느냐고 묻는다면 자연생태의 보고 '야생초의 성지'를 보고 왔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섬은'바람의 섬'이라고만 말할 수 있을 뿐 더 이상의 구체적인 지명은 공개하지 않을 것입니다.
꽃을 사랑하지 않고 탐하는 무리들의 발길에 짓밟히고 그들의 손에 채취당하지 않게 말입니다,
바람의 섬에서 만난 야생초 친구여! 초여름이 시작되면 또다른 야생초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다시 돌아오리라.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부천타임즈(www.bucheontimes.com)에도 실렸습니다. 양주승 기자는 <부천타임즈> 기자이며 정치개혁 및 바른 언론과 환경보호를 위한 홈페이지(www.interko.net)를 운영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