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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동네 골목길을 지나갈 때였다. 일고여덟 살쯤 돼 보이는 사내 녀석이 양손을 있는 대로 쫙 벌리고는 제 또래로 보이는 계집아이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었다.
"못가, 이 씨벌년아!"
얼굴은 멀쩡하게 잘 생긴 녀석이 함부로 욕을 내뱉는 게 아닌가. 아따, 저 녀석이 저대로만 커서 장차 국회에라도 진출한다면 혹 법안 통과 저지 때 싸움닭 노릇을 톡톡히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녀석의 길을 막아선 기세는 맹렬하기 짝이 없었다. 필시 "개구장이라도 좋다. 튼튼하게만 자라다오!"라는 TV에 나오는 선전을 과잉 시청한 녀석이리라.
야단치고 싶어 근질근질한 입을 겨우 진정 시켰다. 대신 여차하면 이 세기의 분쟁에 끼어들 태세를 갖추고 사태의 추이를 예의주시하였다.
그러나 사건은 도통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여자 아이가 이리 길을 돌아가려고 하면 재빨리 이리 와서 막고 저리 돌아가려고 하면 그리로 와서 번개 같이 막아서질 않나 점점 점입가경이었다. 마침내 녀석의 행패 때문에 견디다 못한 여자 아이가 대갈일성을 터뜨렸다.
"저리 안 비킬래! 이 '꼬추' 같은 놈아!"
갑자기 하하 웃음이 터져나왔다. 화를 내야 마땅할 사내 녀석도 덩달아 키득거렸다. 아니, 그걸 욕이라고 한 거야? 욕이 그렇게 점잖아도 되는 거야? 여자 아이가 워낙 착하고 소심하다 보니 욕 같지도 않은 욕을 하고만 것이다.
내가 대신 사내 녀석을 농담처럼 나무랐다.
"너, 왜 길을 막아서고 그러냐? 정 사귀고 싶으면 말로 해야지. 안 그래?"
사내아이가 그제서야 마지 못해 길을 내주고 여자 아이는 가던 길을 갔다. 나는 앞으로 그 여자 아이가 과감하게 분노할 줄 아는 사람으로 커나갔으면 싶었다.
나 자신도 아이들을 키우면서 때때로 너무 순하고 착하게만 키우다 보면 아이들이 자기방어 능력도 없을 뿐더러 사회적 불의에 대한 정당한 분노를 표시해야 될 순간에마저 머뭇거리는 소심한 아이로 크지 않을까 걱정하곤 했다.
그 어린 소녀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었다. 아이야, 욕을 해야 할 때는 과감하게 해야 한단다. 분노해야 할 때 제대로 분노할 줄 아는 것도 큰 능력에 속한단다. 앞으로 누군가 너의 정당하고 의로운 길을 방해할 적엔 크게 소리쳐 욕을 하거라!
"저리 안 비킬래? 이 자슥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