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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성 밖을 나가 크게 싸운다면서?”
한기원을 비롯한 병사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삼삼오오 모여 앞으로의 일에 대해 불안한 마음을 덜기 위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성 밖으로 나가 싸운 일은 처음이 아니었지만 이번 싸움을 지휘하는 이가 무관이 아닌 영의정이자 체찰사인 김류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병사들의 동요는 커졌다.
“거 앉아서 공자 왈 맹자왈이나 읊어대는 늙은이가 싸움을 알겠냐고?”
“그래도 임금을 갈아 치울 정도로 담이 큰 자들이었는데 두고 봅세다.”
병사들의 의견은 이리저리 갈렸지만 한기원을 위시한 갑사들은 이번 일에 의문을 가졌다.
“소문을 듣자하니 이제야 성 밖에 팔도에서 온 근왕병들이 모여들고 있다하오. 사람을 보내기도 했으니 서로 약속을 정하여 동시에 안팎으로 치면 청나라 오랑캐들이 앞뒤를 돌아보기에 바빠 패전할 것인데 어찌하여 이리 서둔 단 말이오?”
한기원의 말에 모두들 이번 일에 의문을 표시했지만 김류는 2천명의 병사를 선별해 북문에 집결시켰다. 김자점이 보낸 원군은 황해도 토산에서 청군의 기습을 받아 패한 후 후퇴했으며 충청감사 정세규 역시 청군의 기습으로 전군이 패몰한 후 쫓겨나 버리고 말았다. 조정에서는 이러한 사실을 모른 채 단지 원군이 도착했다는 전갈만 받고서는 서둘러 성 밖으로 나갈 싸움을 준비한 것이었다. 하지만 시작부터 병사들은 뒤숭숭해지기 시작했다.
“이거 뭐요? 어서 화약을 주시오!”
“화약을 줘야 싸울 거 아니오!”
대부분이 포수인 병사들은 이구동성으로 화약을 요구했으나 김류는 어찌된 일인지 화약을 지급하지 않았다.
“성 밖으로 총통을 쏘아라!”
김류의 명령에 가까이에 있던 한기원은 들으라는 듯 불만의 소리를 높였다.
“아니 적에게 알리고 공격하자는 것인가? 이대로 성문을 열고 진을 쳐 적을 맞이해야 옳지 않은가?”
“네 이놈! 무엄하다!”
김류의 곁에 있던 장수하나가 눈을 부라렸지만 한기원은 콧방귀를 끼었다.
“어디 병사들이 누구 말을 듣는지라 보라고.”
한 차례 포 소리와 함께 조선군은 기세등등하게 나가 진을 쳤다. 성 주변에 있던 소수의 청군은 그 기세에 눌려 서둘러 도주하기 시작했다.
“하하하하하! 오랑캐들의 도망가는 모습을 보아라!”
김류는 마치 싸움에 다 이기기라도 한 듯 크게 웃었지만 이미 청군과 전투를 벌인 바 있는 조선군은 꺼림칙함을 느꼈다.
“저 오랑캐들은 처음부터 이런 식으로 싸움을 피하지 않는데, 뭔가 속임수가 있다.”
병사들이 그렇게 웅성거렸지만 김류는 이를 가볍게 무시했다.
“모두 산등성이를 내려가 적진을 바라보며 평지에 진을 친다!”
“불가합니다! 적의 기병이 달려온다면 당해 낼 수 없을 것이옵니다!”
한기원의 말에 김류는 눈을 부라리며 깃발을 쥐어 주었다.
“앞으로 너는 내 명에 따라 깃발만을 흔들도록 하라! 그리고 비장에게는 이 환도를 내릴 것이니 명에 따르지 않는 병사들을 군율로 다스려라!”
한기원은 환도를 받아든 비장을 바라보았고 그는 한기원과 평소에 낯이 익지 않은 자였다. 평지에 진을 친 조선군은 청군이 몰려나오기를 기다렸으나 한시진이 지나도록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기를 든 채 무료하게 서 있던 한기원은 무리한 싸움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김류는 뜻밖의 명령을 내렸다.
“기다리지 말고 모두 나아가 적을 친다! 총은 둔 채 창을 들고 환도를 빼어들어라!”
김류의 말에 병사들은 웅성거렸다.
“오랑캐들이 무서워하는 게 우리의 조총인데 화약은 주지도 않고 환도로 말을 타고 달려들 적을 치라니?”
“저 영감탱이가 실성을 했나?”
병사들이 머뭇거리며 불만의 소리를 터트렸고 뒤에서 기를 든 한기원도 볼 맨 소리로 김류에게 외쳤다.
“어찌 이리 무모하오이까! 이는 불가하오! 적도는…, 아악!”
한기원은 채 말을 마치지도 못한 채 어깨와 등으로부터 선혈을 내뿜으며 쓰려졌다. 뒤에 환도를 들고 서 있던 비장이 그를 단칼에 베어버렸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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