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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승만
일본군이 세계2차 대전 당시인 1940년대에 일본군 전투기들의 은폐 장소로 사용되다가 출동 할 때는 곳 바로 자연 활주로를 이용해 이륙 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일본군의 비밀공군기지였다. 벙커 비슷한 곳은 일본군 카미카제 전투기의 격납고다.
일본군이 세계2차 대전 당시인 1940년대에 일본군 전투기들의 은폐 장소로 사용되다가 출동 할 때는 곳 바로 자연 활주로를 이용해 이륙 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일본군의 비밀공군기지였다. 벙커 비슷한 곳은 일본군 카미카제 전투기의 격납고다. ⓒ 현승만
이곳은 일본군이 2차 세계대전 당시인 1940년대에 일본군 전투기들의 은폐 장소로 사용하던 곳인데 출동할 때는 곧바로 자연 활주로를 이용해 이륙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일본군의 비밀 공군 기지였다. 사진에서 보이는 벙커 비슷한 곳은 일본군 카미카제 전투기의 격납고로 사용된 콘크리트 건물로 50년이 지난 지금도 상당히 견고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벙커는 납작한 모형을 하고 있으며 가로 15m, 세로 10m, 높이는 3m 정도로 과거 가미가제 특공대가 사용했던 전투기 한대가 간신히 들어갈 수 있는 크기였다.

모슬포 뒤편 하모1리 논에는 이러한 격납고가 20여개 정도 만들어져 있다. 또 적의 공격에 대응할 수 있는 대공화기 참호도 간간이 눈에 들어 왔다. 당시 이 군사 시설과 활주로를 만들기 위해 제주도민들을 강제 동원해 공사를 진행했다.

1926년 알뜨르 비행장 건설이 시작되면서 모슬포의 아픔은 시작된다. 10년간 계속된 1차 공사는 중국 대륙 침략을 위한 일본 해군 항공대 전진기지로 제주를 만드는 데 있었다. 1945년 패망이 목전까지 이르자 일제는 최악의 발악을 제주에서 준비한다. 본토를 사수하기 위한 '옥쇄' 지역으로 제주가 선택됐다. 일제는 제주도를 '결전 7호 작전' 지역으로 선포, 일본 정예부대 7만여명을 제주에 주둔 시킨다. 알뜨르 비행장 확장 공사에 매일 같이 5000명에 달하는 제주민들이 강제 동원되는 생지옥의 경험을 하게 된다.
- <제민일보> 2004년 2월 26일자


모슬포 일대는 당시 최적의 군사 요충지였다. 당시 제주도 주둔 일본군이 작성한 '제주도병력기초배치요도'에는 적이 침입할 예상 접근로로 모슬포가 유력하게 그려져 있을 정도로 전략상의 요충지였다. 따라서 모슬포 곳곳에는 군사 문화의 흔적이 여기저기 남아 있다.

기자에게 제보한 마승범(33·자영업)씨는 "평소에 역사에 관심이 많아 어른들에게 물어 보니 하모1리 이곳은 당시 일본군들의 비행장 건설에 많은 사람들이 강제로 끌려가 노동에 시달려야 했다 "고 증언했다.

마씨는 또 "육지의 역사적인 발굴은 그나마 빠르게 진행되지만 제주도는 너무 더딘 것 같다. 제주도는 관광지지만 한국 역사에서 매우 민감한 지리적 요충지였다. 일본군도 당시 침략 전쟁의 교두보로 제주도를 많이 사용했으며 특히 전투기의 중간 보급소로 많이 활용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기자를 더욱 긴장시킨 것은 1950년 8월 20일 모슬포 섯알오름 부근 일제 시대 탄약고 터에서 집단 학살된 132명의 집단 묘역이었다. 6·25 발발 이후 예비 검속에서 학살된 양민들이 묻힌 이곳의 이름은 '백조일손지묘(百祖一孫之墓)'. '백 할아버지의 한 자손'이라는 뜻이다. 이곳에서 숨진 이들의 시신은 6년 8개월이 지난 1957년 4월에야 유족들에 의해 수습될 수 있었다.

ⓒ 현승만
기자가 이곳을 찾았을 때 전투기 벙커에는 남제주군에서 설치한 표지판을 볼 수 있었다. 표지판에는 '이곳은 1940년대 일본침략전쟁의 군사 시설물로 문화관광자원화 될 계획이다'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하지만 표지판의 노후된 상태로 봤을 때 1년 동안은 그대로 방치된 것 같았다.

마씨의 증언에 따르면 "아직도 이곳 인근 야산에서는 사람의 뼈가 많이 발굴된다. 1950년 당시 학살 당했던 사람들의 유해도 아직 발굴되지 않은 상황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한다.

당시 일본군이 파헤친 진지동굴
당시 일본군이 파헤친 진지동굴 ⓒ 현승만
주로 오름 일대에 만들어진 진지동굴은 현재까지 파악된 것만도 113개다.
주로 오름 일대에 만들어진 진지동굴은 현재까지 파악된 것만도 113개다. ⓒ 현승만
모슬포 뒤쪽에 있는 비행장뿐만 아니라 모슬포 분화구 옆쪽 바닷가에서 볼 수 있는 여러 개의 구멍들은 일본군이 대륙 침략 전쟁 당시 폭격을 피하기 위해 파놓은 것이다. 이러한 구멍을 진지동굴이라고 하는데 성산 일출봉과 제주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주로 오름 일대에 만들어진 진지동굴은 현재까지 파악된 것만도 113개다.

기자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일본과 과거 우리 정부가 우리들에게 남기고 간 상처를 봤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강제 노역에 시달렸을 것이며 또 얼마나 많은 우리들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무참하게 죽어갔는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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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터사이클 저널리스트이며 영상감독. 2019년 중앙일보 [더 오래] 모터사이클 객원 필진 2021년 서울시 ‘배달라이더 안전교육’ 교재집필, 메인강사역임. 2023년 부천시 '배달라이더 안전교육' 교재집필, 교육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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