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우선 신부집에서 예식을 마친 후 3일 후에 신랑집으로 오는 것도 비슷했고 돌아오는 동네 어귀에서 풍악을 울리면서 신랑집으로 향하는 것도 어릴 적 봤던 우리의 전통결혼식과 매우 비슷했습니다.
신랑집에서는 공터에 큰 천막을 치고 소를 잡아 음식을 마련하여 손님을 맞이하고 있었는데 이 또한 그랬습니다. 천막 아래에는 큰 탁자를 일렬로 펴놓고 하객들은 여기에서 신랑 신부와 함께 식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와 다른 것이 있다면 수저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손은 밥 먹기 전 깨끗이 씻으니 항상 깨끗하고 손으로 음식을 먹으면 맛이 있다는 이유로 이 사람들은 집에서는 손으로 음식을 먹는다고 했습니다.
어떻게 할까 망설였지만 이왕 현지의 관습을 경험하려 했으면 같이 행동하자고 마음 먹고 손으로 음식을 먹었습니다.
그런데 손으로 음식을 먹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손가락으로 밥도 생선도 깨끗하게 잘도 먹는데 저는 밥알이 손바닥 가득히 붙기만 할 뿐 입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별로 없었습니다. 꼭 철없는 어린애들이 손으로 밥을 먹는다며 온 얼굴에 밥풀만 칠하는 것과 흡사했습니다.
이런 저를 보고 저에게만 스푼과 포크를 가져다 주어 무사히 식사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손 씻는 물을 마시다
이렇게 식사를 마치고 하객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향신료가 강한 음식을 먹은 탓인지 물이 먹고 싶었습니다. 환타와 비슷한 음료수가 제공 되었으나 너무 달아서 물이 자꾸만 먹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이리저리 살펴보니 저쪽 탁자 위에 화려하게 생긴 물병이 눈에 띄었습니다. 아라비안나이트에 등장하는 요술램프처럼 생긴 큰 병이었는데 물병이라고 불리기에는 아까울 정도로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저 아름다운 물병에는 얼마나 시원한 물을 담아 두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물을 컵에 따른 다음 제자리로 돌아와 꿀꺽꿀꺽 마셨습니다. 생각과는 달리 물맛이 좋지도 않았고 그리 시원하지도 않은 그냥 미지근한 물이었습니다.
이렇게 물을 마시고 있는데 신랑이 손짓으로 물을 마시지 말라는 듯한 신호를 열심히 보내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물은 종교지도자들이나 어른들이 먹는 물이라 아무나 마시면 안되나 보다'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래도 눈치는 보였지만 이왕 따른 물이니 마시자는 생각으로 찔끔찔끔 마셨습니다. 제가 이렇게 계속 마시는 것을 본 신랑이 도저히 참을 수 없었는지 저에게로 왔습니다.
"물을 마시지 말라는데 왜 자꾸 마셔요?"
이 말을 들은 저는 좀 불쾌했습니다. 설사 어른들이 마시는 물이라고 해도 이왕 따른 것 버릴 수도 없는 일이라 마시는데 그걸 가지고 일부러 주의까지 주고있으니 말입니다.
"이왕 따른 것이라 마십니다."
그래서 저도 불쾌하여 좀 퉁명스럽게 이야기했습니다. 제 이야기를 들은 신랑이 저를 물끄러미 쳐다보며 한참을 웃더니 의외의 대답을 하는 것이었다.
"이 물은 마시는 물이 아니라 손 씻으려고 담아 둔 물입니다."
그리고 보니 음식을 손으로 먹은 사람들이 손은 어떻게 씻었을까 궁금하기도 했었습니다. 저는 손수건 하나를 다 버리며 닦았는데 말입니다.
이 말은 들으니 갑자기 카레로 양념한 닭고기를 먹은 탓인지 조금씩 거북했던 속이 갑자기 거품이 부글거리는 듯한 느낌이 전해졌습니다.
신랑과 나누는 우리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다른 하객들도 그때서야 웃고 난리였습니다. 그 사람들도 뭘 모르는 외국인인 제가 손 씻는 물을 마시는 모습을 보고 있었으나 말을 못하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이 일 때문에 얼굴이 달아오른 저는 항공사 승무원으로 근무 중이라는 아름다운 그의 둘째 부인의 모습을 제대로 보지도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그 동네 주민들에게는 제가 잘 알려져 신랑에게 지금도 저의 안부를 묻는 사람이 많이 있고 그의 둘째 부인은 물론 스포츠 센타의 다른 사람들도 저의 안부를 묻는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