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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인현으로 가는 길은 좁았다. 큰 도로로 빠져나와 일부러 인적이 드문 비포장 길을 택했다. 차는 험한 길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다. 엔진이 거칠게 떨면서 굉음을 토해 내는 것이다. 하지만 김 경장은 속도를 떨어뜨리지 않고 심하게 굽은 경사로를 거침없이 나아갔다.

나방들이 전조등 불빛에 정신을 잃고 맹렬히 달려들었다. 탁탁. 그것들은 차창에 부딪치고 퉁겨 나가는 소리가 엔진의 소음과 구별되어 정확히 들렸다. 원심력을 받아서 차가 계곡으로 튀어나갈 듯했고, 경계가 희미한 반대 길로 넘어가기도 했다. 마주 오는 차가 있었다면 영락없이 충돌했을 것이다.

고개를 몇 개쯤 넘었을까? 문득 길이 편편해지며 캄캄한 어둠 속에서 키 큰 나무들이 머리를 풀어헤치고 불빛에 드러났다가 사라지곤 했다. 길은 포장이 된 완만한 상태로 변했고, 작은 촌락이 보이기 시작했다. 포장도로지만 요철이 심해 둘은 몇 번이고 천장에 머리를 박았다.

"차라리 시내로 들어가지 말고 이런 작은 마을에 머무는 게 더 안전하지 않을까요?"

김 경장이 차를 멈추며 물었고, 채유정이 잠시 생각을 해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여기에 있을 줄 상상하지 못할 거예요."

둘은 차를 돌려 마을 입구로 향했다. 그러자 채유정이 "잠깐만요."하는 소리와 함께 차를 멈추게 했다.

"작은 마을일수록 우릴 의심할 가능성이 많아요."

"그럼 어떻게 하죠?"

채유정은 대답 대신 차에서 내려 주위를 살폈다. 앞이 잘 보이지 않자 플래시로 사방을 비추었다.

"이런 마을이면 별장 한 개쯤은 있기 마련이죠."

주위를 유심히 살피던 채유정이 낮게 소리 쳤다.

"저길 보세요."

길에서 한참이나 물러앉은 곳에 불이 꺼진 작은 집이 보였다. 지붕이 뾰족하고 창문이 넓은 게 일반 가정집처럼 보이지 않았다. 주위의 산세도 수려해 별장으로 딱 알맞아 보였다.

"저쪽으로 가보죠."

김 경장은 길 한 옆, 나무로 가려진 곳에 차를 대어 놓고 채유정 뒤를 따랐다. 좁은 길을 걸어가자 이내 넒은 마당이 나타났다. 마당 한가운데로 포석이 깔려 있었지만 잡초들이 무성하게 웃자라서 흔적만 겨우 보일 뿐이었다. 포석의 끝에는 담쟁이가 뒤엉킨 목책이 보였고, 그 주변의 잡초들은 긴 타원형을 그리며 스러져 있었다.

집안을 살폈으나 인기척은 들리지 않았다. 집으로 들어오는 입구와 건물이 심하게 훼손되어 있어 사람이 살고 있지는 않는 듯했다. 둘은 용기를 내어 천천히 현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후텁지근한 공기 속에 먼짓내가 풍겼다. 신발을 신은 채 올라서서 라이터를 든 손을 앞으로 뻗어 주위를 살폈다. 바닥은 마루였고, 한켠으로 돗자리가 깔려 있었다. 전기 스위치를 눌러보았으나 불은 들어오지 않았다.

천천히 걸음을 옮기자 마룻장이 삐걱거리는 소리가 커다랗게 울렸다. 두 개의 방문은 모두 굳게 잠겨 있었다. 손잡이를 잡았던 손으로 콧등의 땀을 문지르자 흙 냄새가 났다.

거실에 면한 벽면을 모두 더듬고 모퉁이를 돌자 격자 무늬 칸막이로 가려진 방이 나왔다. 그 방 한가운데 벽난로가 보였다. 타다 남은 장작이 잿빛 먼지를 뒤집어쓰고 흩어져 있었다. 벽난로로부터 먼지가 뽀얗게 내려앉은 마룻장 위로 작은 동물의 발자국이 흐릿하게 찍혀 있는 게 보였다.

"확실히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인가 봐요."

"아니면 주인이 오랫동안 별장을 비워놓았을 겁니다."

둘은 안심을 하고는 그 벽난로 옆에 가방을 내려놓았다. 집은 반듯한 직사각형 구조였다. 외벽과 내벽 모두 질이 좋지 않은 퍼석퍼석한 붉은 벽돌이었다. 마루를 사이에 두고 벽난로와 마주보고 있는 벽에는 큼지막한 창문이 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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