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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신문>9월 13일. 의문사진상규명위에서 '인혁당은 중정의 조작'이라고 발표했지만, <매일신문>은 이를 연합뉴스를 인용 1단 기사로 편집했다
<매일신문>9월 13일. 의문사진상규명위에서 '인혁당은 중정의 조작'이라고 발표했지만, <매일신문>은 이를 연합뉴스를 인용 1단 기사로 편집했다

"問=검찰에서 피고인을 고문하면서 허위자백을 권유하였나.
答=그렇지 않고 자유분위기였습니다."(1975년4월8일 대법원 판결문)


2005년은 '사법살인'으로 일컬어지고 있는 인혁당 사건이 일어난 지 꼭 30년이 되는 해이다. 하지만 인혁당 사건에 대한 대한민국 사법부의 공식 입장은 1975년4월8일 이후 단 한 걸음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다.

2002년9월에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직권조사로 인혁당 사건은 고문으로 조작된 사실이라고 밝혀졌고, 또 당시 사건을 수사했던 중앙정보부의 후신인 국가정보원에서 진실 규명 조사를 벌이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인혁당 사건의 유족들이 제기한 재심 청구는 몇 년째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고, 또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 국가권력에 의해 저질러진 불행한 사건들을 종합적으로 다룰 과거사법은 아직도 국회의 벽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드러나듯이 인혁당 사건을 비롯한 과거사 문제의 처리에 국민들의 관심 또한 높지 못하다.

이유가 무엇일까? 1987년 6월 민주화운동 이후 18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의 진전이 이토록 더딘 이유는 무엇일까?

어려운 경제 사정을 그 이유로 꼽는 이들이 적지 않다. 물론 직접적 연관은 없다고 하더라도 '먹고 살기도 어려운데…'하는 식의 정서적 영향력은 상당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중요한 이유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경제가 어렵거나 가난한 나라는 과거사 문제를 다룰 수 없다는 법칙이 있다면 또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이것이 근본적 이유라고 할 수 없다. 오히려 경제불황을 빌미로 과거사 처리에 딴죽을 걸고, 진실 규명을 위한 보도에는 인색했던 언론의 태도가 더 근본적인 문제라 할 수 있다.

<한겨레> <경향> '인혁당 30주년' 집중 보도

영남일보 4월 6일 27면
영남일보 4월 6일 27면
이번 인혁당 관련 보도도 예외는 아니었다. 인혁당 사건 발생 30주년의 의미를 되짚어보고 진실규명과 피해자의 명예회복 등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며 그 이유가 무엇인지를 깊이 있게 보도한 신문은 <한겨레>와 <경향신문> 정도였다.

<한겨레>는 "2심 군법회의는 사실심리를 전혀 하지 않은 채 피고인들에게 사형 등 중형을 선고했다"는 이일규 당시 대법원 판사의 말을 4월8일자 1면 탑으로 크게 보도했다. 또 같은 날 3면 전체를 할애해 '인터뷰/서도원씨 맏아들 동훈씨'와 '경북대ㆍ영남대 추모비 철거맞서 비석투쟁' 등의 기사를 보도했다.

<경향신문>은 인혁당 사건 당시 "이 사건은 고문 및 공판기록 변조 등으로 조작된 사건"이라고 고발하고 "구속 기소된 8명의 가족들과 함께 이들의 구명운동을 펼쳐 결국 75년4월말 미국으로 추방"당했던 제임스 시노트 신부와의 인터뷰 기사를 4월8일 1면 톱으로 보도했다. 또 다음 날 "우리 치욕의 과거부터 바로잡자"는 인혁당 관련 기사를 사회면 톱으로 보도했다.

반면에 <조선일보>는 4월7일자 대구ㆍ경북(A12)면에 2단 크기로 "인혁당 사건 30주기 추모행사를 대구지역에서 한다"는 내용을 간략히 소개한 것이 전부였다. 또 <중앙일보>도 4월9일자 12면에 "남편(하재완) 잃은 부인 이영교씨" 관련 기사를 2단 크기로 보도하는 데 그쳤다. <동아일보>도 4월9일자에 사설과 <책갈피 속의 오늘>에서 이 문제를 잠시 언급했을 뿐이다.

대구지역신문, 단출하게 행사만 소개
<매일신문>, '인혁당 30주년 의미' 연합뉴스 인용뿐


매일신문 4월 8일 3면. '인혁당 30주년' 기사를 편집했지만, 이는 연합뉴스를 그대로 인용했을 뿐이다.
매일신문 4월 8일 3면. '인혁당 30주년' 기사를 편집했지만, 이는 연합뉴스를 그대로 인용했을 뿐이다.
대구ㆍ경북지역과 인혁당은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다. 인혁당 사건으로 사형을 당한 8명 대부분이 대구ㆍ경북에 생활 근거지를 두고 있던 사람들이었다.

시쳇말로 '고향 사람들'이었다.

때문에 그 어떤 지역보다도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보도해야 할 신문이 우리 지역의 신문들이다.

하지만 <영남일보>는 "추모행사가 대구에서 대대적으로 열린다"(4월6일), '인혁당 사진전'(4월8일 사진), "묘역 참배에는 김근태 보건복지부장관이 참석, 눈길을 끌었다"(4월9일)는 등 행사를 소개하는 위주의 보도에 그쳤다.

<매일신문>도 "진상규명ㆍ명예회복과 정신계승을 위한 증언 및 강연회가 열렸다"(4월8일), "김근태 장관이 참석해 유족과 관계자들을 위로했다"(4월9일)는 등 행사 소개 기사를 주로 실었다.

다행히 4월8일자 '희생자 명예회복 아직 감감'에서 "국정원의 우선조사 사건으로 선정되어 다시 주목…2002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조작사건임을 공식 인정…그러나 명쾌한 결론이 나오지 않고 있다. 명예회복과 보상심의가 미뤄지고 있다"라며 인혁당 30주년을 되짚어보고 있다.

하지만 이 기사는 연합뉴스를 그대로 인용한 것이었다.

<매일신문> 기자는 100여명이 넘을 것인데, 지역과 깊은 연관을 가진, 대표적 인권유린 사건을 자체적으로 취재하기보다는 통신사 뉴스를 지면에 옮겨놓는 것에 대해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특히 <매일신문>은 2002년9월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 '인혁당 사건은 중정의 조작'이라고 한 직권조사 발표를 단신(9월13일)으로 처리했고, 또 올해 2월 국가정보원에서 우선 조사대상으로 인혁당 사건을 선정했을 때 기존의 사법부의 주장만 싣고 유족과 시민단체들의 주장은 싣지 않았다(2월3일).

過去史는 過去之事가 아니다

최근의 과거사 논란에서 우리가 얻은 교훈은 무엇일까. 다른 점은 몰라도 과거사가 단순한 과거의 일만은 아니라는 점은 모두가 인식했을 것이다. 과거가 현재는 물론 미래와도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는 것은 이제 상식이 되었다.

작게는 피해자와 가해자의 보상과 처벌에서, 크게는 우리 사회 전체의 정체성을 규정하고, 더 나아가서는 우리 사회의 미래를 가늠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과거사는 과거의 일만은 아닌 것이다.

우리는 요즈음 과거사를 단순한 과거의 일로만 여기고, 뼈저린 반성을 하지 않으면 어떤 결과를 낳게 되는지 이웃 나라인 일본을 통해 똑똑히 지켜보고 있다. 하지만 우리도 반면교사의 자세로 우리들 내부의 과거사를 잘 처리하지 못하면 일본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크다. 사회의 공기인 언론이 과거사 문제에 앞장서야 하는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덧붙이는 글 | *<대구경북 오마이뉴스> 바로가기→dg.ohmynews.com

*안태준님은 참언론대구시민연대 언론모니터팀장 입니다.
자세한 문의 : 053-423-4315/http://www.chammal.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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