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숙소에서 바라본 아리조나의 피닉스, 멀리 다운타운이 보인다.
숙소에서 바라본 아리조나의 피닉스, 멀리 다운타운이 보인다. ⓒ 배우근
이곳은 거의 매년마다 오다 보니 나즈막한 건물과 그 뒤로 펼쳐진 사막의 냄새가 고향처럼 익숙하게 느껴진다. 아리조나에는 박찬호가 몸담고 있는 텍사스 레인저스의 스프링캠프가 있는 곳이고 김병현과 최희섭도 이곳에서 훈련을 했었다. 또한 한국의 프로야구팀도 전지훈련을 오는 곳이기 때문에 미국의 다른 곳에 비해 자주 취재를 왔었다.

경험은 마음을 여유있게 만들어준다. 이국땅이지만 눈에 익은 도로와 주변의 풍광을 아늑하게 즐기며 콜로라도 로키스와 아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의 경기가 열리는 피닉스의 뱅크원 볼파크로 향했다.

에피소드 #15

알폰조는 무척 친절한 사람이다. 나와는 살아온 환경과 언어가 다르지만 우리는 형식적인 몇 마디 대화만으로도 친밀한 감정을 공유했다. 날씨 이야기를 하고 사는 곳을 묻고, 이름을 묻는 정도의 간소한 절차만을 거쳤지만 서로의 마음을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알폰조가 아이들과 함께 이닝이 바뀔 때마다 그라운드로 올라가 안전을 확인하고 있다.
알폰조가 아이들과 함께 이닝이 바뀔 때마다 그라운드로 올라가 안전을 확인하고 있다. ⓒ 배우근
아마도 알폰조가 순수한 사람이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는 혀를 통해 공중에 흩어지는 말보다 가슴에 와닿는 진실함이 배어나는 눈으로 대화하는 사람이었다. 알폰조는 아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의 홈경기장인 뱅크원 볼 파크(Bankone Ball Park)의 안전요원이다. 오늘은 두 명의 어린 부하(Kid security)를 거느리고 경기장의 안전을 지키고 있다.

야구장 필드에서 일하는 직업을 가진 나 같은 경우는 안전요원과 부딪힐 일이 많은데 이해심이 많고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알폰조는 내가 편안하게 일할 수 있게끔 최선을 다해 도와주었다. 야구장에서 김병현을 취재하느라 분주했지만 그를 만난 것은 큰 기쁨이었다.

에피소드 #16

콜로라도 로키스의 유니폼으로 갈아입은 잠수함 김병현이 친정팀인 다이아몬드백스를 상대로 무실점 호투한 경기를 취재하고 한국식당인 서울정으로 식사를 하러 갔다.

서울정은 한국에서 전지훈련을 오는 프로야구팀도 식사를 하는 곳이며 시애틀 매리너스의 이치로도 자주 오는 곳으로 유명하다. 재작년에 나도 옆 테이블에서 이치로와 등을 맞대고 식사를 한 적이 있다.

서울정에는 이치로와 관련된 일화가 있다. 한 한국인 유학생이 식사를 하러 온 이치로에게 사인을 요청했는데 옆에 있던 매니저가 제재를 하며 사인요청을 거절했다. 그렇지만 유학생은 몇 번이나 계속 사인을 해달라고 부탁을 했고 그때마다 매니저에게 번번히 퇴짜를 맞았다. 하지만 끈기의 그 유학생은 십 분 이상 사인요청을 했고 결국 이치로에게서 사인을 받아냈다고 한다.

서울정의 매니저 박민수씨, 항상 웃음이 가득한 얼굴로 손님들을 맞는다
서울정의 매니저 박민수씨, 항상 웃음이 가득한 얼굴로 손님들을 맞는다 ⓒ 배우근
그런데 목적을 달성한 그 유학생이 힘들게 얻어낸 사인을 이치로 앞에서 천연덕스럽게 조각조각 찢어버렸다고 한다. 팬의 요청을 무시한 이치로와 그의 매니저에게 불편한 심기를 표출한 것이다. 이 이야기는 나도 누군가에게 들은 풍문이라서 서울정의 매니저인 박민수씨에게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냐고 직접 확인해 봤다.

박민수씨는 자신도 그 이야기를 들었는데 사건의 발생지가 서울정이 아니라 야구장이었다고 한다. 아니땐 굴뚝에 연기가 나지는 않는 법! 장소가 어디였던지 간에 그런 일이 실제로 있긴 있었나 보다. 그 유학생의 살뚱맞은 방식이 올바르지는 않았지만 자존심을 세운 행동이 통쾌하게 느껴진다. 자꾸 웃음이 나오는 그 일화를 옴씹으며 맛깔난 식사를 했다.

덧붙이는 글 | 홈페이지 www.seventh-haven.com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