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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온조왕에게 제사를 지내자니, 전란 중에 그런 전례가 있는가?"
"그러하옵니다. 전하! 옛사람은 군사작전을 벌이며 주둔할 때에 반드시 그 지방 신에게 제사를 지냈습니다."
김상헌의 말에 인조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 일을 시행하도록 하교했다.
김류가 직접 지휘한 출진에서 사망한 이만 300여명이나 되는 큰 패배이후 의기소침해진 비변사에서는 지휘관의 책임을 뒤로 덮고 인조에게 사상자가 40명뿐이라고 허위로 고한 후 전투에 패한 이를 벌한다며 엉뚱한 사람들에게 곤장을 내렸다. 이로 인해 성안의 인심은 날로 나빠져 갔으며 대신들은 이를 무마할 방도를 찾기에 급급했다. 그 중 하나가 온조왕에게 제사를 지내자는 말이었는데, 이미 김상헌이 이를 주청한 적이 있었으나 이번에는 예조의 주관으로 왕이 직접 행차할 것을 바라는 뜻이었다.
"이런 판국에 귀신에게 제사 지내는 게 다 뭐란 말인가. 자네는 다쳤는데도 여기에 끌려나와 일을 하는구먼."
시루떡은 왕의 행차가 오기 전에 수축해야 한다며 이리저리 병사들이 뜯어낸 서까래에 앉아 그 말에 한숨을 쉬었다. 그의 어깨에는 흰 천이 질끈 동여매여 있었다. 성 밖에서의 싸움에서 간신히 살아 온 후 시루떡은 마치 벙어리가 된 듯 했다. 시루떡을 비롯한 병사들은 일을 하는 둥 마는 둥이었지만 일일이 나서서 이를 탓하는 자는 없었다. 병사들에게는 낯선 일꾼들이 이리저리 흩어져 일을 하고 있었는데 자세히 살펴보면 이상한 점이 있었다. 마룻바닥까지 뜯어내어 무엇인가를 살펴보는 모양새였고, 집을 새로이 만들거나 제사를 위한 치장을 하는 노력은 거의 하지 않았다.
"저 놈들 뭘 하는 거야?"
"놔둬. 임금이 와서 절을 하던 대성통곡을 하던 마음대로 하라지."
병사들은 양반들이 들으면 불경스럽다고 펄쩍 뛸 말들을 내뱉었지만 그 말투가 예전만큼 활기차게 들리지는 않았다. 불합리한 명령에 따른 한 차례의 싸움에 그들과 바로 옆에서 싸우며 지휘했던 갑사들은 모조리 전사했고, 용감한 병사들 역시 성안으로 돌아오지 못했기에 그들이 절망감은 상당히 컸다.
"우리 일은 이제 거의 끝난 거 아닌가? 뜯어낼 것만 뜯어내면 다른 사람들이 온다고 하지 않았나? 가세나!"
의욕 없는 병사들을 보다 못한 부장 김돈령의 말에 모두들 기다렸다는 듯이 일어섰고 시루떡도 천천히 웅크려 앉아있던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때 깔고 앉았던 서까래가 소리를 내며 갈라졌고 시루떡의 눈은 잠시 갈라진 틈새에 머물렀다.
'이게 뭔가?'
시루떡의 눈에 갈래진 틈새로 무엇인가 보였다. 시루떡은 틈새로 손을 넣어 그것을 꺼내었는데 작은 서책이었다. 글을 읽지 못하는 시루떡이었기에 안에 대체 무슨 내용이 적혀 있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안 오고 뭐하나?"
김돈령의 말에 시루떡은 서책을 품속에 넣고 일어섰다. 병사들이 떠난 지 오래되지 않아 좌의정 홍서봉이 목수들을 데리고 와 사람들에게 넌지시 물었다.
"혹시 뭔가 이상한 것을 찾은 게 없는가?"
"디딤돌까지 뒤집어 보았지만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홍서봉은 '커험' 소리를 내며 헛기침을 한 후 목수들에게 제를 올릴 단을 꾸미라 일렀다. 그 때 시루떡이 품속에 넣고 간책은 이시백에게로 전해졌다.
"일을 하다가 주운 것 이온데 무엇인지는 모르오나 저 같은 것이 가질 물건은 아닌 듯 하옵니다."
이시백은 시루떡에게 상처에 대해 몇 마디 위로의 말을 하며 내 보낸 후 혼자 책을 펼쳐 보았다. 몇 장을 들쳐보던 이시백은 그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한숨을 쉬었다.
'허! 어찌 이런 일이… 이를 어쩌면 좋단 말인가!'
이시백은 책을 든 후 한참을 망설이다가 소매 속에 이를 숨겨 넣고서는 밖으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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