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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2 장 암습(暗襲)

"철혈보와의 약속은 반드시 지켜져야 하네. 물론 그들의 의도를 사전에 차단한 것은 잘한 일이지만 자칫 철혈보를 적으로 돌릴 수도 있는 일이라네."

풍철영과 담천의는 신검각에서 차를 마시고 있었다. 풍철영에게 복안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너무나 쉽게 지광계 부부를 넘겨주겠다는 담천의의 약조에 그는 내심 담천의가 너무 성급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사람의 일이란 어떻게 변화될지 알 수 없다. 젊다는 것은 확실히 경솔한 면이 있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 없다.

"약조는 반드시 지켜질 것이오. 장주께서 생각해 놓으신 것과 소제가 생각하는 것이 다르지는 않을 것이오."

담천의는 걱정을 하지 않는 듯 했다. 더구나 자신의 생각과 같다니…. 그는 담천의에게 자신의 생각까지 말해 준 바는 없었다.

"어떻게?"

"그들이 가지고 있는 본래 의도대로 움직여 주면 될 것이라 생각했소. 그들은 굳이 그런 자리를 마다하지 않을 것이오."

그의 말에 풍철영은 그가 의도하는 바를 알 수 있었다. 그의 말대로 그것은 그가 생각했던 것이기도 했다. 다만 그 일에는 꺼림칙한 문제가 있었다.

"어쩌면 그것은 무림에서 중요시하는 도의나 신의를 저버리는 일이 될 수도 있네."

그것 때문에 풍철영은 아직까지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다만 경고만 했을 뿐이었다.

"명분을 만들면 가능하오. 그리고 그들은 분명 장주께 명분을 줄 것이오."

어찌 저렇게 확신을 하는 것일까? 풍철영은 아까 보여주었던 반당과의 논검에서 보여준 능력만큼 그의 사고도 깊고 치밀하길 바랐다. 이미 이 안에서 일어나는 일과 자신이 취했던 조치 등에 대해서는 모두 알려 주었다. 그리고 지켜보고 있었다. 일이 틀려진다면 그 때 자신이 나서도 될 것이었다.

풍철영은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넘겼다. 담천의가 그를 바라보고 있다가 불쑥 물었다. 이런 기회는 자주 오는 것이 아니고, 이미 적지 않은 죽엽청을 마신 탓에 호기를 부려볼 만도 했다. 더구나 황원외의 사부라는 노인이 했던 말이 떠오르자 그는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소제의 부친은 어떤 분이셨소?"

기습적인 그의 물음에 풍철영은 차를 다시 한 모금을 입에 넣었다가 뱉을 뻔 했다. 언젠가는 물어 올 것이라 생각하지 않은 바는 아니었다. 조금 빠르다고 생각했지만 그 시기는 어느 때가 되었던 마찬가지였다. 어차피 대답할 말은 준비된 게 없었다.

"노부는 자네의 부친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네. 다만 훌륭한 장군이라고 들었네. 단기 오천(五千)을 이끌고 적군 삼만(三萬)의 적을 초토화시킨 분이셨다지…? 아마 대리(代理)에서의 그 전투는 대명전쟁사에 기록될 대단한 전과였다고 하네."

풍철영 역시 들은 소리였다. 몇 번 만나 본 적은 있었다. 짧은 구레나룻에 강인한 인상의 담명장군은 그리 말수가 많은 사람이 아니었고,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위엄과 풍모를 갖추고 있었다.

"왜 낙향하셨을까요?"

중얼거림이기도 했고, 지나가며 묻는 말이기도 했다. 그 사연이야 풍철영이 알고 있긴 하지만 그 정도 아는 것만으로 그 안에 숨겨진 이유를 설명해 줄 수 없었다. 만박거사도 대답하지 못하는 것을 자신이 어찌 대답할 수 있으랴.

"관직을 그만 두셨으니 낙향하신게지."

풍철영은 비껴나가고 있었다. 자신이 알고 있는 한도 내에서 자신의 생각을 말할 수는 있지만 그것은 오히려 그에게 혼란만 가져다 줄 것 같았다. 담천의는 또 다시 벽에 부닥친 것을 알았다. 분명 무언가 알고 있는 것 같은데 더 이상 대답하기를 꺼려하고 있다.

"장주께서는 분명 왜, 누가, 무슨 이유로 관직을 그만두고 낙향한 부친을 죽여야만 했는지 아실거라 생각하오만…?"

직설적이었다. 그는 종래 참고 있었던 질문을 마침내 꺼냈다. 또한 그것이 그가 알고 싶은 전부였다. 그리고 그 사실을 풍철영은 알고 있을 것이다.

풍철영은 담천의를 바라보았다. 분명히 알려 줄 필요는 있을 것이지만 그것을 어떻게 잘 설명해야 오해의 소지가 없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그는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그는 이 순간 만박거사 구효기를 원망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은 그에 비해 훨씬 못 미쳤다. 그럼에도 그가 말해주지 않고 자신에게까지 이런 질문이 오게 한 것은 잘못된 일이었다. 그는 천천히 다시 또 찻물을 입안에 머금었다. 그는 망설이고 있었다. 자신도 담명장군의 죽음에 대하여 다 알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의 질문에 뭔가는 대답을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마침내 그는 입을 열었다.

"그 분을 누가, 무슨 이유로, 왜 살해했는지는 노부조차 그 내막을 자세히 알지 못하네. 다만…."

그는 목이 타는지 다시 찻잔을 들어 차를 마셨다. 담천의의 시선은 풍철영의 입에 고정되어 있었다.

"아무도… 자네 주위에 있는 그 누구도, 자네를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포함해서 자네 부친의 죽음에 대해서는 자유롭지 못하네. 노부조차도 말일세. 노부가 해 줄 수 있는 말은 이말 뿐이네."

풍철영은 하기 어려운 말을 했다. 아마 그 말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대답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듣는 담천의에게는 더욱 혼란만 가중시키는 일이었다. 자신을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부친의 죽음과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연관이 있다는 말이었다. 어떠한 일이 개입되어 있는 것일까?

그는 풍철영을 바라보았지만 풍철영은 더 이상 말할 생각이 없는 듯 했다. 이 정도만 말한 것도 그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뭔가 알고 있어도 말해주지 못하는 것을 일부라도 말을 해준 것만으로도 고맙다고 생각해야 할 일이었다.

"……!"
"……!"

그 순간이었다. 풍철영의 눈과 담천의의 눈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미세하나마 밖에서 누군가가 조심스럽게 움직이고 있음을 감지한 것이다. 담천의가 소리 없이 일어섰다. 헌데 그 순간 가까운 곳에서 병장기 부닥치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병장기 부닥치는 소리와 그들이 감지한 움직임과는 달랐다.

두 사람은 서로 눈짓을 교환하고는 풍철영이 신검각의 창문 쪽으로 다가가 병장기 부닥치는 곳을 응시할 때, 담천의는 조용하게 문을 열고 나왔다. 그리고는 어둠 속에서 은밀하게 움직이는 그 누군가를 찾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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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검각이 보이자 관외이흉은 더 이상 가까이 접근하지 말 것을 무형의 기세로 보여준 어둠 속의 그림자를 향해 다짜고짜 공격해 갔다. 그것은 되도록 신검각 가까이에서 소란을 피어달라는 중의에 의한 부탁을 들어주는 일이기도 했다. 그들의 손에는 각기 다른 병기가 들려 있었다. 첫째의 손에는 폭이 좁고 한자 반 정도의 길이의 짧은 쌍검(雙劍)이 들려 있었고, 둘째의 손에는 손가락 마디 크기의 쇳덩이를 이어 만든 철편(鐵鞭)이 들려 있었다.

더 이상 접근하지 말도록 경고를 보내던 인물은 관외이흉의 느닷없는 공격에 황급히 안령도(雁翎刀)로 쏘아오는 그들의 병기를 쳐냈다.

따--다--- 당---!

관외이흉은 병기가 부닥치면서 팔에 느껴지는 충격으로 상대가 만만치 않은 고수임을 알았다. 하지만 병기를 회수함과 동시에 틈을 주지 않고 재차 상대의 좌우를 파고들었다. 쌍검은 접근 전에 유리한 병기였고, 철편은 일정 거리를 두고 공격하는 무기였다. 관외이흉의 공격은 마치 한 몸처럼 교묘한 배합을 이루고 있어 상대를 곤란하게 만들고 있었다.

"타--앗---!"

그 인물의 입에서 맑은 기합소리가 터져 나오며 철편을 쳐내는가 싶더니 신형을 돌려 쌍검을 든 관외이흉 중 첫째를 향해 쾌속하게 도를 찔러갔다. 한줄기 빛살 같은 도기가 어둠을 가르자 그것은 마치 도가 한자나 길어진 듯한 착각을 들게 했다. 쌍검을 교차시키며 급히 신형을 비틀어 그의 공격범위를 벗어나려 했다. 하지만 끈질기게 자신의 미심혈을 노리며 쏘아오는 도를 떨쳐버리기 어려웠다. 만약 둘째가 급히 철편으로 위맹하게 상대의 허리와 등을 노리고 쓸어가지 않았다면 그의 미심혈은 구멍이 났을 터였다.

"빌어먹을… 네놈은 누구냐!"

가까스로 위험에서 벗어난 첫째가 바닥에 침을 뱉으며 외쳤다. 그는 내심 위험했던 그 순간을 떠올리며 호흡을 가다듬고 있었다. 쉽게 상대할 자가 아니었다. 갑작스럽게 눈앞에서 뻗어오던 도기는 그의 혼을 빼놓기 충분했다.

"실망이군. 그러면 상대도 모르고 공격을 한 것인가? 그런 놈들이니 벌레만도 못한 나가 놈의 발등이나 핥아대는 짓거리나 하고 있겠지."

"그러고 보니 네놈이 황원외?"

그 순간 관외이흉은 기이한 느낌이 들었다. 자신들은 토끼몰이에 있어 몰이꾼이었다. 목표물을 직접 잡는 사냥꾼이 아니었다. 뭔가 일이 틀어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은 상관없었다. 자신들의 목적은 오직 이 자를 잡기 위해 왔으니까. 더구나 그는 혼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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