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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실직고하지 못하겠느냐!"
눈을 가린 채 형틀 의자에 묶인 도사공 이만근을 향해 우포도청 부장 조필두가 되우 물었다.
그러나 이만근은 상처투성이 얼굴을 천천히 들어 조필두를 올려다 볼 뿐 말이 없었다. 노름방 울바자에서 누군가에게 맞아 정신을 놓은 이래로, 제 발로 걸었는지 누구에게 부축을 받았는지 모르는 채 이곳에 끌려와 계속 같은 문답만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벽에 난 작은 창으로 서늘한 기운이 스미고 있으니 아마 새벽 가까운 시간이리란 것만 짐작할 뿐 눈이 가려져 있는 터라 정확한 때를 짐작하기도 어려웠다.
바닥이 흙으로 이루어져 있고 두터운 벽으로 가려진 장소란 것은 알겠으나 이곳이 포도청인지, 전옥서의 형옥인지, 어느 민가의 헛간인지조차도 분별할 도리가 없었다.
"바른대로 대거라. 사실만 말한다면야 그깟 투전노름쯤 눈 감아 주지 못할 게 무엇이냐. 그 자가 누구냐?"
이번엔 조필두가 이만근 앞으로 바짝 다가와 은근하게 물었다.
"말씀드리지 않았소. 그 선다님은 그 날 처음 본다고… 그저 짐을 운선해 달라는 청에 삯을 받고 배를 부렸을 뿐이오. 그리고 투전을 한 죄로 잡아왔으면 법대로 처벌을 하면 될 것이지 어째 이리도 사람을 괴롭히는 것이오."
도사공이 겨우 목을 가누고 힘없이 말했다.
"그게 그리 간단치가 않네. 투전도 투전이지만 자네가 심각한 일에 연루되어 있어. 자네 그 자의 짐바리를 살펴봤는가?"
"그건 쇠가죽이었다 하지 않았소."
"그게 인삼이란 걸 본 자가 있어."
"말도 안 되오!"
"그럼 사주전이었나?"
"어림없는 소리 하지 마시오. 분명 쇠가죽이었다니까!"
"그래 쇠가죽이라 치자. 자넨 그 쇠가죽 짐바리의 주인이 누군지, 어디에 있는지만 말하면 돼. 자네들에겐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을 걸세."
조필두 부장은 집요하게 채근했다.
"분명 그 날 나루터에 쫓아왔던 그 왈짜패 놈들의 발고가 있었겠지요? 전부 그놈들이 지어낸 이야기요. 그자들과 대질하게 해 주시오."
"그건 자네가 참견할 몫이 아니네. 난 개인적으로 자네의 배에 타고 있던 그 자들 모두가 출중한 무예를 가진 자들이라 하던데? 그런 자들이 단순히 쇠가죽만을 거래하는 자들이라?"
"아, 글쎄 우린 모른다지 않소. 그들의 무예가 출중하든, 용모가 수려하든 알게 무에요? 긴소리 말고 노름죄로 처분을 하시든지 마시든지 하고, 그런 소릴 물으시려거든 여각의 차인행수나 송 주인께 가서 여쭈시오. 우리네야 시키는 대로 할 뿐이지 한낱 사공놈 주제에 실은 것이 무엇인지 탄 놈이 누구인지 어떻게 안단 말이요."
도사공 이만득은 제법 거칠게 대거리를 했다. 눈에 보이진 않으나 직접 심문을 맡을 정도면 상대가 포도청의 지체 있는 직급임을 짐작할 수는 있었으나 갯바닥 출신 뱃심에다 목소리의 주인공이 자기보다 한참 아래 연배로 보여서 굽히지 않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믿는 것은 자신이 천하의 송 여각네 도사공이란 점이었다. 한양 내에서 마포 송 여각네 도사공 투전 따위의 죄목으로 얽어 어찌할 수 없으리란 건 자명했다.
"네 놈이 지금 대단한 착각을 하고 있는 모양이구나. 이곳은 포도청이 아니야. 네 놈과 같이 투전하던 놈들은 헐장금(歇杖金: 범인을 체포, 인치하는 경우에 범인으로부터 쌀이나 돈을 받는 것)이나 차사례(茶事禮: 범인으로부터 재물을 징수하는 규정으로 수사관의 신분에 따라 차액을 둠) 따위나 좀 뜯기고는 한 이틀쯤 뒤에 방면되겠으나 네 놈은 사정이 달라. 너는 노름방 울바자를 뚫고 진즉에 달아난 것으로 되어 있느니라.
얘긴즉은 예서 네 목숨이 사라져도 이 자리에서 죽은 것이 아니란 얘기지. 네 생각대로 내가 함부로 송 여각을 뒤적거릴 형편이 못 되는 것은 사실이야. 허나 네 목숨 하나쯤 감출 능력은 능히 된다고 보는데…."
이만근은 눈이 가려져 있었으나 떨림이 없는 상대의 잔인한 음성만은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이 자의 협박은 거짓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런 무서운 협박을 서슴지 않으면서까지 왜 이토록 평안도 서방님에 집착하는가?'
단 한 번도 평안도 서방님에 대해 들은 바가 없으나 그가 실로 중요한 인물임은 알 수 있었다. 감히 고개를 들고 눈을 맞추지 못하는 자신들의 주인 송인석 조차도 그를 친아들처럼, 그러면서도 상전처럼 대우하고 있음을 익히 알고 있는 터였다.
서해를 거슬러 올라가 청천강 하구에서 짐바리를 풀고 그 일행을 내려놓았음을 얘기 못할 것은 없었다. 그러나 왠지 그 작은 단서가 큰일을 불러올 것만 같은 불안감이 일었다. 굳이 이만근이 모르쇠로 일관하며 버티는 까닭은 그 불안감 때문이었다.
"이놈이 안 되겠구나. 학춤을 추게 해라. 네 놈이 그래도 입을 다무는지 보자."
조필두가 좌우의 포졸에게 명령했다.
포졸 둘이 도사공 이만근을 의자에서 일으켜 학이 춤을 추듯 두 팔을 뒤로 비튼 채 천장의 들보에 매달았다.
"아아아악-"
체중이 팔에 실리며 팽팽해지자 이만근이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다.
"얼마나 입을 다물고 있는지 한 번 보자. 이놈을 밥을 내어서라도 끝을 봐야겠다."
조필두가 두 포졸에게 고문을 해서라도 입을 열도록 명령했다.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회초리를 집어 든 두 포졸이 이만근의 몸을 가격했다.
[짝]
"악!"
[짝]
"으악!"
작렬하는 매에 자지러지는 외마디 신음이 계속 이어졌다. 뒤로 꺾인 채 매달린 팔의 고통도 고통이었지만 상하반신에 연신 와 닿는 매의 통증이 신경을 압박했다. 통증에 대한 방어본능인지 비명을 지르면서도 조금씩 조금씩 의식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9
"벗이 있어 먼 길을 찾아주니 또한 즐겁지 아니하겠는가."
대문간까지 나와 오경석과 유홍기를 기다렸던 권병무가 이를 함빡 드러내며 반겼다.
"별 말씀을 다 하십니다요. 어르신. 마땅히 찾아뵈어야 했사오나 그간 소식을 접할 길이 없었기로 이리 되었습니다. 우선 인사부터 받으시지요."
대청마루에 오른 오경석과 유홍기가 권병무에게 큰절을 올렸다.
"그래 댁내 두루 평안하고? 작년 병인년 양요 때부터 지금까지 자네가 중국에서 해냈던 업적은 익히 들었네. 노고가 많았겠구먼."
권병무가 오경석을 보고 물었다. 실로 몇 해만의 해후임에도 오경석의 최근 근황까지 알고 있다는 투였다.
"다 어르신의 가르침 덕입니다."
"무슨 소린가 이 사람. 내가 터럭만치라도 자네들에게 도움이 된 바가 있기나 했던가. 외려 이 늙은 몸이 누가 되지 않았다면 다행이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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