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배우근
경기는 잘 될 때도 있고 안 풀릴 때도 있지만 다음 경기에서는 타자를 삼진 잡는 모습으로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길 바란다. 김병현을 보면 많은 사람들의 기대가 그의 왜소한 체구를 짓누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프로선수라면 피하지 않고 스스로 극복해야 하는 부분이다. 이곳 사람들은 김병현을 통해 한국을 본다.

에피소드 #24 항공기 박물관에서 만난 아이들

경기가 끝나고 나니 텍사스의 달라스행 비행기를 타기까지 3시간 정도가 남는다. 자투리 시간이다. 옷을 만들 때 남는 옷감은 가위로 잘라버리면 그만이지만 시간은 그렇게 버릴 수 없고 또한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

어떻게 하면 보람찬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 고민을 하는데 계륵처럼 여기던 네비게이션이 그 문제를 간단히 해결해 주었다. 자동차에 달린 네비게이션의 기능 중에 인근 관광지를 알려주는 장치가 있었다. 단추 몇 개만 누르니까 목록이 음식점 메뉴처럼 일목요연하게 나온다.

자동차를 빌리면서 네비게이션을 옵션으로 부착해 보기는 처음이었다. 편할 것 같아서 추가 요금을 지불하고 자동차에 달았는데 사용해보니 정말 편리하다. 인공위성으로부터 전송된 데이터는 목적지까지의 길을 상세히 알려주었고 길을 잘못 들면 되돌아가거나 다른 길을 알려주었다. '네버 로스트(Never Lost)'라는 이름값을 톡톡히 해냈다.

그런데 문제는 며칠 동안 야구장과 숙소를 출퇴근하듯이 다녔는데도 불구하고 오가는 길이 매일 새롭게 보였다. 낯설었다…. 지도를 가지고 있다고 그 곳 지리를 안다고 할 수 없는 것처럼 네비게이션이 있다고 해서 다니는 길이 익숙해지는 것은 아니었다.

기계가 알려주는 대로 맹목적으로 따라가다 보니 자신의 눈을 통해 도로를 익히지 못했다. 그래서 몇 번 사용해 보고는 전원을 꺼버렸다. 자신의 머리와 기억 속에 덴버의 길과 주변 풍경이 남겨지지 않는다면 내가 여기 왔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 배우근
그랬던 네이게이션이 자투리시간을 소중하게 보낼 수 있게 도와주는 훌륭한 참모로 변신했다. 네비게이션이 소개한 수십 개의 관광지 중에서 '항공기 박물관'을 선택해 출발했다.

네비게이션은 옆자리에 가이드가 앉은 것처럼 신속정확하게 방향을 일러주고, 남은 거리도 계산해 알려준다. 문명의 이기에 나 홀로 탄복한다! 항공기 박물관까지는 전혀 길을 헤매지 않고 30분만에 도착했다.

2차대전 때 사용한 듯한 거대한 비행기 한 대가 나를 맞이한다. 차에서 내려 'US. Air Force'라는 로고가 찍힌 비행기를 만져보고 박물관 입구를 향하는 데 문이 닫혀 있다. 개관시간이 끝나 있었다.

케네디....
케네디.... ⓒ 배우근
박물관 구경을 못한 채 네이게이터가 알려주는 길을 따라 공항으로 향했다. 아쉬움이 남아서일까, 공원이 보이자 자동차를 세웠다. 그곳에는 서너 명의 아이들이 새살거리며 그네를 타고 있고 부모들은 다붓하게 앉아 지켜보고 있었다.

아이들이 탄 그네는 탄력을 받아 하늘로 치솟고 있었다. 박물관 앞에 전시된 비행기는 날지 못하는 고철덩어리였지만 아이들이 탄 그네는 어슬어슬 깊어지는 하늘을 향해 자유롭게 날고 있었다. 저뭇해지는 공원이 아이들의 맑은 웃음소리로 가득 찼다.

제시카....
제시카.... ⓒ 배우근
아~ 이대로 시간이 머물면 좋으련만…. 아이가 가지고 있는 순수함은 시간의 흐름과 함께 소멸한다. 그리고 그 순수함이 사라지는 만큼 인간은 늙어간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하얗게 빛나던 눈망울도 누렇게 탁해지고 생기 있던 피부도 주름지고 거무튀튀해진다. 나이가 드는 것은 피할 수 없다. 하지만 아이의 순수함을 소중히 가꿔나간다면 운명을 극복할 수 있다. 적어도 추악해지지 않고 곱게 늙을 수 있다.

해지는 콜로라도 산맥....
해지는 콜로라도 산맥.... ⓒ 배우근
아이들을 보느라 늦었다. 깊은 하늘에 악을 쓰며 날아가는 쇳덩이로 만든 비행기를 타러 서둘러 출발했다. 콜로라도의 깊은 산맥으로 잦아드는 태양은 순간이지만 노을이 남아 떠나는 나를 어루만져 준다. 깊은 여운이 전해진다.

아이들은 집으로 돌아갔으려나? 아이들은 사진을 찍는 내게 고맙다고 했다. 하지만 정작 고마운 것은 나인데… 케네디, 제시카… 고마웠다. 그 말은 내가 너희들에게 했어야 하는 말이다. 너희들이 전해준 순수한 마음을 간직하고 간다. 안녕….

덧붙이는 글 | 홈페이지 : www.seventh-haven.com  (일곱번째 항구랍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