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커에서 청아한 대금 소리가 들린다. 나는 이 음악을 들으면서 한없이 빠져든다. 그런데 이 소리는 대금산조도 아니고, 그 어려운 정악이란 느낌도 없다. 그럼 어떤 음악이고, 누가 연주했을까?
음반설명서를 뒤적이던 나는 깜짝 놀란다. 분명 연주되는 이 곡은 정악 영산 회상의 일종인 '평조회상'이다. 그런데 어찌 이리도 어렵다는 느낌을 주지 않고, 마음을 차분하게 침잠시키는 마력을 뿜어낼까? 이 음악을 듣던 내 아내는 한이 서렸지만 그 한을 조용히 삭이는 느낌을 준다고 말한다.
대금을 연주한 이는 스님이다. 그런데 깜짝 놀랄 일이 있다. 스님이 한 손으로 연주한 것이다. 어떻게 한 손으로 연주할 수 있다는 말인가? 사연인즉 교통사고를 당해 한 팔을 잃은 이삼 스님이 연주를 놓을 수가 없어 많은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한 손으로 연주할 수 있는 대금을 만든 것이다
이삼 스님의 전화번호를 알아내어 연락했다. 만나보지 못하고는 밀려드는 궁금함을 어찌할 수가 없다. 경기도 광주 퇴촌에 기거하는 스님은 마침 서울에 대금 재료를 구하러 나온 길이라며 자신의 차를 타고 퇴촌에 들어가자고 한다.
차를 타니 스님이 직접 운전을 한다. 한 손을 쓸 수가 없지만 운전은 전혀 문제가 없는 듯이 보인다. 장애가 있는 사람들에 대한 흔한 편견을 깨는 광경이다. 퇴촌까지 가면서 많은 얘기를 나눈다.
불가에선 괴짜로, 국악계에선 기인(奇人)으로 알려진 이삼 스님은 20살 어느 날에 우연히 길가는 스님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신선한 충격을 느껴 출가하였다. 본디 성품이 호탕하고, 음률을 좋아하여 행자 시절 직접 만든 목탁을 장단 맞춰 두드리며 유행가를 부르다 주지 스님에게 혼난 적이 있을 정도였다.
그런 스님이 불경 공부를 하다가 우연히 삶에 회의와 무료함을 느껴서 생을 포기하고 싶은 생각도 하며 옛날에 했던 피아노와 색소폰을 공부했지만 마음에 와 닿지 않았다고 한다.
스님은 우리 음악의 한 부분인 염불과 접하다 우리 음악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먼저 단소를 공부한 다음 독학으로 대금을 배웠다. 그러다 스님은 무형문화재 제20호 대금정악 보유자 김성진 선생을 찾아갔다. 이때부터 17년 동안 아버지처럼 모신 선생의 가르침과 채찍질이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이 스님의 소회다.
스님은 80년대 중반까지 생존해 있던 '이왕직 아악부' 출신의 궁중 정악의 대가들에게도 두루 배웠다. 85년에는 국악경연대회에 출전해 금상을 타기도 했다. 그런데 인생은 늘 행복할 수만은 없는 것인가? 스님은 89년 큰 교통사고를 당해 석 달간 입원 치료를 받게 된다. 그러나 입원치료에도 불구하고 오른팔을 다시는 쓸 수 없게 됐다. 이로 인해 대금과의 인연은 끊어졌다. 삶의 기쁨이 사라지는 듯했다.
- 사고 났을 때의 심경이 어땠습니까?
"다 부서져도 좋으니 악기를 연주해야 하는 손만은 온전하기를 바랐습니다. 무릎이 완전히 부서지고, 목 부분은 심하게 파였지만 걱정하던 손이 문제였습니다. 오른손을 움직일 수가 없으니 그저 죽고만 싶었습니다."
- 그런 좌절을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병원에 입원해 있으면서 팔순 노인이 재활을 위해 열심히 운동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육체에 매인다면 재활한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인연이 닿아 손이 나으면 좋겠지만 낫지 않는다고 절망할 게 무엇이란 말인가?'하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어려움을 당했을 때 의연하게 대처하는 것과 몰두와 고민에 빠지는 것은 그 결과가 크게 다릅니다. 모든 것은 자연에서 비롯되기에 순리에 따라야 할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고가 난 뒤 1년쯤 지났을 때 그는 다시 대금을 잡았다. 그에게 대금을 뺀 삶이란 사는 것이 아니었다. 왼손밖에 쓸 수 없기에 대금의 여섯 개 구멍 중 고음을 내는 세 개의 구멍만 이용해 연주했고 낮은 도는 높은 도로 바꿔야 했다. 당연히 음역은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하지만 각고의 노력 끝에 텔레비전에서만 보던 인생역전이 일어났다. 그 절반의 음역을 가지고 10년을 씨름한 끝에 스님은 한 손으로도 연주할 수 있는 대금을 고안했다. 오른 손가락으로 짚어야 하는 세 곳의 구멍에 키를 달아 이를 왼손으로 짚을 수 있게 한 것이다. 스님은 '세상에 오직 하나뿐인' 이 대금에 '여음적(餘音笛)'이란 이름을 붙였다.
스님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공방을 차려놓고 한 손으로 가야금·거문고·아쟁·해금·장구 등의 악기를 직접 만들었다.
지난 해 3월 대구에서 독주회를 열고 각종 행사에 참석해 '외팔 연주'를 선보인 스님은 19일 자신의 대금 연주곡을 담은 첫 음반을 냈다.
음반사 '신나라'에서 내놓은 '여음적 대금정악'이란 이름의 이 음반은 '평조회상1' '수룡음' '취태평' 등 독주곡 10곡을 담은 1장과 정대석 한국방송(KBS) 국악관현악단장의 거문고와 병주한 '유초신지곡' 1장이다.
퇴촌 천진암 부근의 산기슭에 스님이 직접 지은 아담한 집에 들어가 보았다. 거실에는 역시 스님의 공방도구들이 있고 직접 만든 가야금들이 결려 있다. 에이브이(AV) 시설과 함께 소박한 실내는 스님의 성품을 얘기하는 듯하다. 거실 앞쪽에는 남향으로 커다란 창이 나 있다. 그 창으로 꽃이 보이고, 산이 보이고, 자연이 보인다.
- 정악을 연주하는데도 정악의 엄숙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까닭은 무엇인가요?
"정악이 엄숙하고 어렵다는 평은 잘못 알려진 것입니다. 저의 스승이신 김성진 선생님의 연주를 들어보면 물 흐르는 듯한 자연스러움이 있습니다. 그 분은 늘 그것을 강조하셨습니다. '정악'이란 말 그대로 '바른 음악'이지만 다르게 표현하면 탈속한 듯한 음악, 번잡하고 분주한 것이 아닌 편안하고 차분한 음악입니다. 들어서 마음이 포근해지고, 넉넉해지지 않으면 정악이 아닙니다.
신라 때 있었다는 만파식적(萬波息笛)은 '대나무를 베어서 피리를 만들어 부니 나라의 모든 걱정·근심이 해결되었다'고 합니다. 바로 정악이 그런 것 아닐까요? 정악을 연주하고 듣고 있다 보면 격함과 수심을 삭인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음악이기 이전에 살아가는 거름이라 생각합니다. 우리가 큰스님을 보면 꼭 아기 같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무르익어서 기교는 없어지지만 무언의 대화 속에 꾸밈없는 깊이와 편안함이 있는 것입니다."
- 어려움 속에서도 굳이 악기까지 직접 만드는 까닭은 무엇인가요?
"좋은 연주는 좋은 악기가 있어야 합니다. 좋은 악기란 자기에게 잘 맞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시중에 대량생산되어 나오는 악기로 연주해보니 3년을 못가는 것이 많았습니다. 울림이 끊기고, 음정이 잘 맞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내게 맞는 악기를 직접 만들게 되었습니다. 전통식으로, 수제품으로 만드는 악기는 시간이 갈수록 더욱 연주에 깊이가 생깁니다."
- '이삼(二三)'이란 법명이 독특한데 어떤 뜻인가요?
"이파삼성(二破三成)이란 말이 있습니다. 두 개를 깨뜨려 세 개를 이룬다는 뜻입니다. 스승 스님이 지어준 이름인데 지금껏 쓰고 있습니다."
- 중생들에게 해주실 말씀 한 가지만 들려주십시오.
"'만법귀일 일체유심조(萬法歸一 一切唯心造)'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무리 법이 많아도 마음 외에 딴 것 없고, 모든 것은 마음으로 짓는 것이며, 마음을 깨달으면 그게 끝이란 말입니다. 어려움이 잘 풀리지 않을 때는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을 찾아야 합니다."
스님은 악기를 만들고, 연주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정악의 악보를 정리하고, 가곡의 가사를 해설하는 작업을 꾸준히 해와 이제 마무리 단계에 이르러 출판을 목전에 두고 있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대금을, 가사를 쉽게 공부하도록 돕고 싶다는 뜻이다. 지금 일주일에 한두 번씩 퇴촌까지 공부하러 오는 몇 사람의 제자가 있다는데 강습비를 받지 않는다고 한다.
"승려가 돈을 받을 수는 없습니다. 그저 좋은 음악을 혼자 누리지 않고, 같이 나누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다만 강습비를 받지 않으니 나태해지고, 중간에 쉽게 포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어떻게 풀 것인지 생각하고 있습니다."
스님의 집 앞에는 옹달샘 물이 솟아 나온다. 산 중턱에 있는 옹달샘 물을 끌어온 것이라 한다. 수맥이 갑자기 끊겨 위로 솟아나오는 물이 옹달샘이라는 설명이다. 이 물로 우린 차는 달다. 참으로 깊이가 있다.
길가에 있는 한 고로쇠 수액을 파는 집 앞을 지나면서 스님이 한 마디 일갈한다.
"고로쇠 수액을 마시는 것은 피를 빨아먹는 것입니다. 인간이 욕심 때문에 자연을 파괴하는 한 모습입니다."
스님의 마음을 잠시 읽을 수 있는 대목이라는 생각이 든다. 곁에서 도와드리는 보살님이 한 가지 귀띔을 한다.
"스님은 악기를 만들 때나 연주할 때는 너무 몰두한 나머지 제가 죽는다고 소리쳐도 전혀 듣지 못하고 꿈쩍도 안 하십니다. 그만큼 집중력이 있었기 때문에 이루어낸 결과라 생각합니다."
한손으로 연주하는 대금을 만들고, 그 대금으로 연주한 스님의 내공을 짐작할 수 있게 하는 얘기다.
지난 20일은 장애인의 날이었다. 방송에서는 영화 <말아톤>의 주인공으로 자폐 겸 정신지체 장애인이지만 42.195km 마라톤을 완주한 배형진, 네 손가락만으로 피아노를 연주하는 이희아 등의 자랑스러운 장애 극복기가 소개된다.
이 즈음 우리는 한 손으로 대금을 연주하는 이삼 스님의 아름다운 연주를 들으며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았으면 좋겠다. 스님의 잔잔한 마음의 법문, 대금소리에 침잠해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