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4ㆍ19혁명 묘소에 추모 화환을 바쳤다. 혁명 45주년을 맞아 '4ㆍ19 민주이념을 계승한' 대한민국 제1야당의 대표로서 응당 해야 할 일이었다.
그런데 뒤이어 묘소를 찾은 재야단체 참배객 가운데 곽태영 '박정희기념관반대국민연대상임공동대표'가 박 대표의 화환을 내동댕이치고 발로 짓밟는 사건이 일어났다.
왜 이런 사건이 일어났을까? 왜 대한민국 제1야당 대표가 바친 화환이 그런 수모를 당했을까? 물론 박 대표가 4ㆍ19혁명을 무참히 짓밟고 권력을 잡은 박정희 전대통령의 딸이란 점과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의 죄를 딸에게 묻는 것은 굳이 연좌제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온당하지 못한 처사임을 곽 대표도 모를 리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딸' 이외의 다른 이유가 있음이 분명한데 그 이유가 무엇일까. 무엇이 곽 대표를 그토록 격분토록 했을까.
박근혜 대표의 과거사 관련 말들
"(박정희 전 대통령을) 조사할 테면 해 보라. 자신 있다…친일진상법 개정안은 악법을 넘어서 정치적 이용 의도가 있다…(유신독재에 대해) 이미 사과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24년 전부터 했다" - 2004.7.25 <연합뉴스>와의 전화통화
"일제시대 어떻게 나라를 뺏기게 됐는지, 6ㆍ25 때 누가 침략을 지켜냈으며, 그때 만행으로 누가 피해를 봤는지 밝혀내고, 공산주의와 자유민주주의 대립 시기에 누가 국가안보를 지켜냈고, 누가 국가안보를 위협했는지 공정하게 규명해야 한다" - 2004.8.19 한나라당 상임운영위 회의
"과거의 잘못을 사과할 만큼 충분히 사과했다. (사과 요구를 거듭하는 것은) 순수한 의도가 아니라, 헐뜯기다…(인혁당 사건 등에 대해) 법적으로 전부 결론난 사항들이다…(유신시대에 대한 평가는) 역사학자와 국민의 몫이다" - 2004.8.29 한나라당 의원 연찬회
"현정권이 추진하는 과거사법 등 4대 법안은 국론분열을 조장하고 있고, 이런 식으로 대한민국의 체제까지 무너뜨리면 민생을 살리는 일은 더욱 불가능하다" - 2004.10.27 국회교섭단체 대표연설
수유리에 간 박 대표, 먼저 여의도에서 할 일 있다
결국 과거사법은 지난해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박 대표와 한나라당의 반대가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그런데 이 법은 아직도 국회에 묶여 있다. 여야가 합의한 4월 임시국회 내 처리도 확실하지 않다. 게다가 과거사법을 무용지물로 만들 수 있는 독소조항이 포함되어 있어 법이 통과되더라도 문제가 많다는 지적도 있다.
현재 국회 본회의에 계류 중인 과거사법은 법원의 확정 판결을 받은 사건에 대해서, 현행 민사ㆍ형사 소송법상 매우 까다롭게 규정해 놓은 '재심 요건'을 충족시키는 경우에만 조사를 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 2002년9월 고문으로 조작된 사건으로 결론난 인혁당 사건의 경우도 지금껏 재심청구가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는 점에서도 알 수 있듯이 현재의 과거사법이 그대로 통과되면 조사가 상당히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그런데도 한나라당은 이 조항의 변경 또는 삭제를 반대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민주화를 가장한 세력' 등을 조사대상에 추가해야 한다며 과거사 조사를 낡은 이념 대결의 장으로 만들려는 의도를 보이고 있다. 그들의 목적이 과거사의 진실 규명에 있지 않고 과거사 조사의 불가능에 있다는 의구심을 지울 수가 없다.
진정한 사과는 행동이 뒤따라야
대한민국 제1야당의 추모 화환이 짓밟힌 사건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그것도 20여 년 동안이나 사과해 왔다는 박 대표의 화환이고 보면 안타까움이 더하다. 하지만 25년의 사과가 받아들여지지 않는 데는 사과의 진정성에 문제가 있지 않을까. 박 대표가 고민해 보아야 할 일이다.
일본은 우리의 진정한 사과 요구에 대해 '정권이 바뀔 때마다 사과하라고 하느냐'며 할 만큼 했다는 불평을 털어놓는다. 사실 일본의 사과는 여러 번 있었다.
하지만 우리나라 국민 가운데 누구도 그 사과들을 진심으로 받아들인 사람은 없을 것이다. 왜 그런가. 사과에 뒤따르는 행동이 없기 때문이다.
군위안부 문제를 부인하는 것은 물론 A급 전쟁범죄자들의 위패가 있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전쟁 반대 평화 애호의 의지를 다지기 위함이다'라는 억측 주장으로 강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표도 거듭된 사과에도 불구하고 그 진정성을 의심받는 이유가 사과에 부응하는 행동이 뒤따르지 않았기 때문임을 알아야 한다. 박 대표는 '이미 사과했다' '법적으로 결론 났다'라는 말만 되풀이하지 말고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과거사법을 제대로 만들어 빨리 통과시키는 데에 전력해야 한다.
그렇게 한다면 그의 진정성을 의심할 사람은 없을 것이며 앞으로 수유리는 물론 그 어떤 곳에서도 박 대표의 화환이 박대 받는 일은 없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안태준님은 참언론대구시민연대 언론모니터팀장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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