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의민족> <자랏골의 비가> <녹두장군> <은내골 기행> 등 주로 민족분단과 오월 광주 그리고 동학농민혁명 등 우리 근대사를 소설로 써온 그로서는 마을 정자나무 아래 쉬어가는 마음으로 쓴 글들을 모은 것이다.
모두 4부, 18편의 산문으로 묶여진 산문집은 마을이라는 사람살이의 기본 단위를 통해 소설로 못 다 쓴 우리 역사를 더듬어 간다. 거기에는 권력에 시달리면서도 자신의 삶을 오롯이 지켜낸 강인한 민중들의 생활상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1부는 옛날 우리 겨레가 살아온 모습과 산골 사람들보다 더 소외되었던 섬사람들 이야기, 권력에 시달리며 살아온 이야기와 처음 유럽에 가서 받았던 충격 등 <내일을 여는 작가> 지에 연재했던 글들을 모았다.
지주와 양반들의 견제수단이 되어왔던 두레 공동체, 정보 교환장소였던 시골장터와 주막집 등을 통해 공동체적 행복을 추구했던 우리 조상들 생활 철학을 보여준다.
일제가 가장 두려워한 것은 두레의 공동체 정신
그는 어딜 가나 동네마다 후레자식이 하나쯤 있는데 후레자식도 정자나무처럼 일정한 기능을 하는 동네의 구색이라고 말한다. '본받지 말라'는 자식 교육의 기회가 생기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일 삼아서 이 집 저 집으로 말을 물어나르는 입이 잰 여자나 익살꾼, 좀 모자란 반편이까지도 마을을 이루는 구성원으로 빠져선 안 될 사람들이라고 본다.
장에 대한 얘기 가운데 재밌는 것은 중장에 대한 이야기였다. 중장이란 절에서 소용되는 봉이, 붓, 차, 향, 불경 같은 것을 파는 장인데, 전국에 경상도 상주와 전라도 나주 이 두 군데만 섰다고 한다.
그는 "일제가 조선을 침략한 뒤 가장 역점을 두었던 게 마을 공동체인 '두레'를 무력화시키는 것이었다"고 말한다. 두레정신이 반일·민족주의로 이어지는 걸 경계했기 때문이었다. 어렵게 살아남은 두레를 또 다시 파괴한 것은 박정희 정권의 새마을운동이었다. 농촌 노인들의 말대로 '내 것 없으면 죽는 세상'이었다. 두레의 파괴는 따뜻한 공동사회를 살벌한 이익사회로 바꿔버렸던 것이라고 비판한다.
국민교육헌장에 담겨져 있는 국가주의 이데올로기
'붉은악마와 국가주의 시비'라는 글에서는 우리 민족의 건강한 열정과 도덕적 잠재력을 긍정하면서도, '국가주의적 광기'나, 지나친 '민족주의적 열기' 지적과 관련해서는 박정희 정권의 교육이념이었던 '국민교육헌장'에 담긴 이데올로기에 주목한다.
국민교육헌장에 나오는 '나라의 융성이 나의 발전의 근본임을 깨달아'라는 국가주의 이념을 극명하게 표현한 구절이며 '능률과 실질을 숭상하고'라는 구절을 통해 인권이나 사회정의보다 능률을 종교적 절대가치처럼 떠받들고 있다고 분석한다.
'섬, 섬 사람들'이라는 글에서는 암태도의 진도아리랑, 소안도 등 도서지역 항일투쟁 등을 소재로 섬 이야기를 들려준다. 소설가답게 그는 진도아리랑의 자유분방한 가락 속에서 사전에도 올라 있지 않은 표현을 찾아낸다.
'산천의 맹감은 볼받을라 말라"는 구절에서 맹감은 청미래 열매인데, '볼받다'라는 말은 볼이 보일락 말락하게 발그레한 상태를 표현한 말이라고 한다. 참으로 감각적인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 초록색
2부의 '자잘한 이야기'는 이런 저런 에피소드를 모아놓은 글들이다. 징역을 살면서 겪었던 일화를 쓴 '모란과 배추와 나비와'에서 그는 운동시간에 포플러와 푸른 하늘을 보다가 사람 사는 세상이 이렇게 아름다운 것인가 새삼 느끼며 그 심정을 이렇게 담아낸다.
뭉게구름을 띄운 초여름 하늘도 아름다웠지만 그 초록색이 나무도 아름다워 나는 운동시간 20여 분 동안 내내 넋 나간 사람처럼 포플러만 건너다보고 있었다. 당장 징역을 몇 년 받을지 모르는 따분한 형편이었지만, 그런 처지는 까맣게 잊고 포플러와 푸른 하늘에 넋이 나가 있었다. 나는 사람 사는 세상이 이렇게 아름다운 것인가 새삼스럽게 감탄을 하며 교도관을 따라 복도로 들어서다가 다시 한번 뒤를 돌아보았다. 그 체험을 바탕으로 나중에 단편을 쓰기도 했다.
사람은 오랜 세월을 자연 속에서 살아왔으므로 녹색 속에서 살아온 셈이다. 그러니까 녹색은 세상의 기본색깔인 셈이다. 그래서 그런지 사람 눈에 피로가 가장 적게 느껴지는 색깔도 녹색이라고 한다. 도로 표지판 바탕 색깔을 녹색으로 한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그런 색깔을 20여 일 동안 보지 못하고 살았으니, 나는 밥을 굶듯 초록색에 허기가 졌던 꼴이고, 그래서 더 아름답게 보였던 것 같다.
3부는 작품을 쓰면서 현장을 답사할 때 더러는 눈, 빗속을 지칠 줄 모르고 걸어 다니며 느꼈던 이야기들이다. 그 중에는 답사기 형식으로 된 글도 들어 있다. '비 나리는 호남평야'라는 글에서는 전라도 장성지역 설화를 통해 호남인 정치의식을 분석하고, 동학혁명과 호남평야의 인과 관계를 밝혀낸다. 그리고 호남 풍수사상에 관해 쓴 '풍수와 참언과 설화와'라는 글을 통해 운주사 천불천탑 설화, 고창 선운사의 미륵신화 등을 흥미롭게 펼쳐 보인다.
고은, 박현채, 황석영 등 지인들과의 에피소드
내가 가장 관심을 갖고 읽었던 부분은 고은 시인이 환속하기 전 스님 시절 이야기와 둘이 술 마시던 일화, '민족경제론' 저자인 고 박현채씨가 중3 때 빨치산으로 활동했던 때의 이야기, 소설가 황석영 씨의 방랑벽 이야기 등이다. 때로는 재미있기도 하고 때로는 마음을 뭉클하게도 만든다. 그 중에서도 송기숙은 박현채씨에 대한 추억이 가장 새롭다고 말한다.
송기숙과 박현채, 조정래 3인이 동행하여 박현채 선생이 광주서중 3학년 때 학교 선생을 따라 빨치산으로 입산해서 문화부 중대장으로 활동했던 백아산으로 여행을 갔던 때의 이야기 한 토막이다.
한 번은 박현채 선생이 총을 맞았는데 부상을 당하지 않았단다. 어머니가 주신 비상금을 간수하고 다녔는데 실탄이 돈을 뚫고 나가다 마지막 장에 멈춘 것이라고 박현채 선생은 설명한다. 송기숙은 그가 살아 있었으면 "야 임마, 이렇게 모두 까발리기야"하고 시비부터 걸 것이라고 했다.
고은과 송기숙이 술 마시던 일화도 읽는 재미를 더한다. 한길역사기행에 강사로 초청된 송기숙이 고은에게 한잔 하자고 꼬시지만 고은 시인이 손사래까지 치며 거절하더니 부인이 만들어 준 '금주'라 쓴 마름모꼴의 종이 목걸이를 보여준다.
그러나 결국엔 송기숙의 "딱 한잔만"에 넘어간 둘은 밤새 음주대장정을 펼치기도 한다. 송기숙은 고은을 두고 "정말 지독한 작자"라고 말한다. 고은 시인의 왕성한 창작력에 대한 존경의 표현일 것이다.
그런가 하면 송기숙은 보통사람 표리의 두께가 1cm라면 황석영은 1mm 두께도 안 될 것이라며 황석영을 가리켜 표리가 없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작가의 말'을 통해 그는 "여기 실은 글들을 추리면서 나는 소설 쓰기를 주업으로 살아온 걸 새삼스럽게 잘했다고 생각했다. 불행했던 우리 역사와 현실을 소설로 쓰면서 그만큼 고민하고 탄식했으며, 그 연장선에서 더러는 현실에 뛰어들었고, 지금도 그런 시각으로 우리 현실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인간 천연 기념물'이라 불리는 송기숙의 기교 없는 진솔한 진술을 통해 역사와 마을과 거기 사는 사람들의 숨결을 느껴보길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