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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 프란체스카> 포스터
ⓒ MBC
세상이 글로벌해지다 보니 이제 한국 땅에서 거리를 활보하는 외국인들의 모습에도 무심해지던 어느날, 루마니아 태생 흡혈귀들이 몰려왔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그것도 일본으로 피난 가려다가 배를 잘못 타서 재수없게 한국으로 오게 된 뱀파이어들의 좌충우돌 한국 적응기를 공중파 TV의 시트콤의 형태를 빌려서 전국적으로 방송하겠다는 겁니다.

피보다 생존에 굶주린 허약한 뱀파이어

왠 황당한 시츄에이션? 포스터 분위기를 보니 "이거 또 미국의 <아담스 패밀리>(The Addams Family, 1991)를 카피했군"하는 생각이 번쩍 들었습니다. 과연 이 흡혈귀 이야기가 월요일 밤시간에 사람들을 TV로 끌어들일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솔직히 반신반의했습니다.

그런데 전혀 루마니아인 같이 생기지 않은 뱀파이어 네 마리는 엄청난 적응력을 지닌 대단한 놈들이었습니다. 마늘도 십자가도 햇빛도 무서워하지 않는 돌연변이에다가 앙드레 대교주인가 뭐라는 뱀파이어의 흡혈 금지령 때문에 사람의 피도 마시지 않는 족속입니다. 게다가 식성들은 어찌나 게걸스러운지…. 꼭 며칠 굶은 식충이가 배 안에 들어 있는지 매일 먹는 타령이랍니다.

이들은 한국에 적응해서 살아가기 위해 인간 한명을 물어 뱀파이어로 만들었는데 하필이면 그 대상이 너무나 평범하고 볼품없는 소시민 '두일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서울 땅에서 이름 뿐인 가족이란 어색한 구성원으로 기생해서 살아가는 것 자체가 만만치 않은 시츄에이션입디다. 마찬가지로 애인에게 차이고 어찌어찌 재수없게 뱀파이어가 된 두일이에게는 피를 빨린 만큼 더욱 더 힘든 일이구요.

명색이 아내 역할을 하는 '프란체스카'란 뱀파이어는 시도 때도 없이 도끼를 들고 설치지 않나, 입에서 나오는 말이라고는 정이 뚝뚝 떨어질 만큼 인신공격적이고 폭력적이며 냉랭함 그 자체입니다. 그뿐입니까? 아들 역할을 하는 '켠'이라는 덜 떨어진 뱀파이어는 얼굴은 멀쩡한 '얼짱'인데 하는 짓이라곤 나사 하나가 풀린 식충이입니다.

딸 역할을 하는 '소피아'라는 뱀파이어는 얼굴은 어린애라도 뱀파이어 중 가장 나이를 많이 먹은 왕고모라 모든 뱀파이어의 머리 위에 앉아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군림하고 있지요. 그나마 가장 상태가 나은 처제역의 '엘리자베스'는 부티크에서 종업원으로 일하지만 심한 공주병 증세에 사치스러운 성격이라 집안 살림에 별 보탬이 되지 못하고 있지요.

한마디로 말이 가족이지 두일이라는 능력없는 평범한 샐러리맨의 피를 빨아 먹으며 철저하게 기생하며 살고 있는 끔찍스럽다 못해 처절한 콩가루 집안이지요. 또 한명 어쩌면 뱀파이어보다 더 뱀파이어처럼 보이는 인간 집주인 안성댁의 비정상적인 허풍과 과장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이구요.

뱀파이어의 시선으로 바라본 가족의 모습

문제는 이처럼 끔찍스럽고 냉랭한 피의 자손들의 만만치 않은 실수 연발 한국 적응 과정이 이상하게도 남의 일 같지가 않다는 겁니다. 만만치 않은 세상살이를 실감하고 있는 우리들에게 그 흡혈귀도 조금씩 조금씩 따스한 마음을 지닌 인간으로 느껴지면서 도저히 미워할 수 없는 족속이 되더라는 겁니다.

역설적이긴 하지만 오히려 겉으로는 화목해 보이나 속으로는 지나친 이기심으로 물 위의 기름처럼 아버지는 아버지, 어머니는 어머니, 자식은 자식대로 따로 돌며 급속하게 해체되어 가고 있는 현대 가족들보다 더욱 끈끈한 가족애가 살아있습디다.

그뿐인가요? 평소 우리들이 쉽게 인식하지 못했던, 아니 알고는 있으나 쉽게 긍정할 수 없었던 우리의 치부를 냉랭하지만 미워할 수 없는 피의 가족들의 시선과 행동,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대사 한마디 한마디를 통해 철저히 객관화시켜 투영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도 판타지적인 독특한 상상으로 대상을 최대한 과장하거나 비틀어 버리다 보니 '유치하거나 엽기적인 것'과 '그럴 듯하거나 있을 수 있을 법한 것'에, '냉소'와 '정'을 넣어 뒤섞어 버무려 넣는 형태가 오히려 낯설기는 하지만 강한 웃음과 설득력을 안겨주더이다.

생활비가 떨어졌다며 쥐꼬리만한 월급 탓을 하다가 돈도 못 번다는 두일이의 핀잔에 발끈해서 여러 가지 아르바이트 전선에 나섰다가 비참해지기만 하는 프란체스카의 모습은 영락없는 한국의 보통 주부 모습입니다.

그뿐인가요? 고스톱에 미쳐 반상회를 전전하다가 그도 저도 안되니까 게임방에 가서 온라인 고스톱 폐인이 되고 나중에는 게임방 알바로 게임비를 충당하며 "즐겜하셈"을 부르짖는다거나, 사기 당해 전셋값을 몽땅 날려 하루 아침에 온 가족이 노숙자 생활을 전전하기도 하고 생업을 위해 포장마차를 하다가 단속반에 걸리는 모습은 영락없는 우리 시대의 일그러진 모습들입니다.

물론 이 뱀파이어의 일그러진 모습들은 다소 유치하고 과장스럽고 비논리적이기는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부족한 대로 제자리를 찾아가며 서로에게 남겨진 상처를 불완전하게나마 치유하려 노력합니다. 그 냉랭하지만 그렇다고 감정 과잉으로 치닫지 않으면서 스스로 제자리를 찾아가는 어설픈 과정이야말로 바로 안녕 프란체스카만의 독특한 미덕이라고 하겠지요.

그리고 또 하나, 드라마의 배경 음악을 빼놓을 수 없겠지요. 오, 내사랑 배경 음악! 르네상스풍도 아닌 것이 묘하게 미스테리적이며 아트적이기도 하지만 어쩔 때는 '뽕짝'스럽기도 한 여러 배경 음악들이 골고루 뒤섞여 극의 분위기를 상승시키는 데 일조하고 있습니다.

하여간 <안녕 프란체스카>란 엽기적인 시트콤은 이제 앙드레 대교주의 출현으로 25일 방송으로 1부가 끝나고 5월 2일부터 앙드레 대교주와 함께 루마니아가 아닌 또다른 서울에서 새롭게 2부가 계속 진행될 예정입니다. 그들이 그려갈 새로운 피의 자손들의 얘기가 타성에 젖지 않고도 따스한 엽기라는 드라마 자체의 코드를 더욱 살릴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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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업을 그만두고 10년간 운영하던 어린이집을 그만두고 파주에서 어르신을 위한 요양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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