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김종철 교수님의 녹색평론 토요모임이 있었어요. 연세가 지긋하신 교수님 몇 분이 모인 자리였는데, 만나서 우연히 호랑이 이야기를 했어요. 호랑이 눈썹을 뽑아서 자기 눈썹에 심으면 전생이 보인다 해서 호랑이 눈썹 뽑으러 간 인산 김일훈 선생님의 이야기며, 장에 갔다가 고양이를 팔고 있던 바구니 속에 섞인 호랑이 새끼를 데리고 온 할머니의 이야기도 나왔지요.
제가 아는 노스님께 듣기로는 기도를 하면 법당 앞에 호랑이가 개처럼 어슬렁거리면서 염불을 듣다 가곤 했대요.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직접 보고 느꼈던 호랑이와 여우들이 다 어디로 갔는지에 이야기가 이르자 분위기가 일순 공허해져 버렸어요. 박수까지 쳐가며 화기애애하게 이야기 하던 입을 다물고 방바닥만 물끄러미 쳐다볼 뿐이었지요.”
최근까지도 친할머님이 살아계셔서 어렸을 적에 가장 많은 동물들의 이야기를 친구들에게 들려줬다는 스님. 신화와 전설을 잃어버린 우리의 아이들은 불행하다고 했다.
“어떻게 하면 운동 속에서 생명을 불어 넣을 수 있을까. 정부에게 요구를 하고 투쟁을 하기 이전에 이 땅에 기도나 바람의 문화로 자리 잡게 할 수 있을까. 계속 고민하고 있는 중이에요.”
스님의 편안한 분위기에 기자는 용기를 내어 수행자로서 극단적인 방법을 택해야 했던 이유를 물었다.
“몇 번씩 약속을 파기하는 상황에서 생겼던 분노, 원망 때문이었을 겁니다. 절망감, 고발의 표현이었죠. 지금은 그 이유들이 다 잊혀졌어요. 나를 위하는 도반들뿐만 아니라 정부 측 입장을 대변하는 분들조차도 이시대의 아픔을 같이하는 도반이라는 생각, 둘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지요.”
40여명의 도룡뇽 친구들이 지난 23일부터 24일까지 보성 대원사 템플스테이에 1박 2일로 참가했다. 서울, 부산, 마산 등지에서 전라도 산골짜기로 모여든 것이다. 부모님을 따라온 네 살짜리 꼬마부터 50대 여교사까지 연령도 직업도 다양하다.
저녁공양(식사)와 예불을 마친 후 수련원에 모여 앉았다. 무릎이 맞닿을 정도로 붙어 앉아 지율스님의 이야기를 들었다. 스님은 '초록의 공명'이 더 이상 사회 운동이 아니고, 생명과 평화의 문화를 만들어 나가는 창구로서 역할을 담당하고 싶다고 했다.
인도 음악가 박양희씨가 스님을 생각하면 늘 입안에서 맴돌았다는 노래 <그가 나를 변화 시켰네>를 불렀다. 인도 시인 타고르가 쓴 시에 음을 붙인 것이란다.
노래가 끝나자 소원을 적은 작은 연꽃 초를 손에 들고 참가자들은 연지 못으로 자리를 옮겼다. 연꽃초를 물 위에 띄우고 합장을 한다. 조그마한 연못 위에 하얀 연꽃 등불이 수를 놓는다. 도룡뇽 노래패인 '아콤다'의 노래가 달빛을 타고 흘렀다.
“웃는곰 집으로 가네 / 비닐하우스 강을 건너 / 웃는곰 집으로 가네 / 검정 굴다리도 지나 / 웃는곰 집으로 가네 / 깜깜한 파밭을 날아 / 웃는곰 집으로 가네 / 진우의 트럭을 타고 / 웃는곰 집으로 가네“
마지막 남은 벛꽃 잎이 부는 바람에 살랑 내려앉는 밤. 달빛과 음악에 취한 산사의 나그네들은 봄속을 걸었다. 먼 데서 들리는 소쩍새 우는 소리. 자연을 온몸 가득 받아들이며 소중함을 재확인하는 시간이다.
“자연은 신화의 다른 모습”이라는 스님의 말씀과 “우리가 항상 올바른 길로 갈 수 있도록 해 주세요”라고 연꽃등에 적혀있던 소원 한 구절의 의미를 발걸음마다 새겨 본다. 생명 평화의 길 위에 서 있는 스님 그리고 도룡뇽 친구들과 함께하는 이 시간이 자연만큼 아름답다는 것도.
덧붙이는 글 | 정혜자 기자는 보성 대원사에서 템플스테이 일을 맡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