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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 사랑의 본질을 묻다
- 무라카미 류 연애소설 <마이 퍼니 발렌타인>


ⓒ 랜덤하우스중앙
스포츠 매니지먼트 사업을 하는 유능하고 젠틀한 사내가 있다. 최고급 호텔에서 근사한 와인에 프랑스정식을 먹으며 밤마다 여자를 갈아치우는 한량. 뉴욕 마사지하우스의 중국여성과 동경의 고급매춘부, 건설회사의 여비서 사이를 전전하던 이 사내. 어느 날 고교 동창에게 전화 한 통을 받는다. "있잖아. 요시하라 미에가 포르노배우가 됐더라고."

미에는 주인공 사내의 첫사랑이다. 학창시절, 도시락을 싸들고 함께 식물원을 드나들던. 그녀가 출연한 '부인의 슬픈 성태(性態), 그리고 우연한 만남'이란 제목의 포르노필름을 일부러 구해보는 사내. 그리곤, 이렇게 혼잣말로 묻는다. "그녀는 나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짤막한 사랑과 연애의 이야기를 묶은 무라카미 류의 <마이 퍼니 발렌타인>(랜덤하우스중앙)에는 위와 같이 기이하면서도, 가슴 한 구석을 아리게 자극하는 작품들이 다수 수록됐다. 흘러가는 대로, 마음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살아가면서도 언제나 무언가의 결핍에 시달리는 사람들. 무라카미 류는 현대인의 방탕한 일상을 좇으면서도 거기서 '방탕' 이외의 무언가를 찾아낸다.

앞서 언급한 이야기는 수록작 중 하나인 '그리고 우연한 만남'의 줄거리다. 혹, 이 무국적의 일본작가는 '포로노배우가 된 동창생'을 바라보게 함으로서 스스로와 독자들에게 이렇게 묻고 있는 건 아닐지. "사랑에 대해 아주 잘 안다고 생각하는 당신, 당신이 알고 있는 것이 과연 사랑의 본질일까요?"

곰곰 생각해보면 자신의 모든 것을 드러내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세상을 만든 우리 모두가 형태를 달리한 포르노배우일지도.

그녀는 왜 섹스 후에 하늘의 별을 봤을까?
- 임동헌 작품집 <별>


ⓒ 문이당
1985년 등단이래 장편 <민통선 사람들> <기억의 집> 등을 상재하며 활발한 작품활동을 보여온 임동헌이 두 번째 중·단편집을 묶었다. 이름하여 <별>(문이당). 장편을 제외한 작품집은 이번이 10년 만이라 반갑고 귀하다.

소설집 <별>은 그 제목만큼 낭만적이진 않다. 표제작은 도무지 정체를 파악하기 힘든 한 여성이 증권사 투자분석가 출신의 사내를 개인 자가용 운전사로 고용해 몸을 섞은 후 망연히 밤하늘의 별을 바라본다는 다소 '해괴한' 이야기다.

작가는 이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싶었던 것일까. 삶의 덧없음 혹은, 이해 불가능한 인간 내면의 지도를 보여주려 한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드문 연애담이 주는 대리만족? 책을 덮는 순간까지의 의문이다. '좋은 소설은 해석의 여지를 남겨준다'는 말이 새삼스럽다.

책의 마지막에 실린 '누나의 섬'도 매력적인 작품이다. 고아원이라는 '작은 사회'의 온갖 부정과 복마전을 보여줌으로써 구제불가능 한 '큰 세상'을 조롱하는 임동헌의 문체가 깔끔하다. 최근 소설을 읽으면서 이만한 감칠맛을 느껴본 것도 오랜만이다.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살려면'...
- 이상건의 <부자들의 개인도서관>


ⓒ 랜덤하우스중앙
한국에서의 자본주의 발달이 원체 왜곡되고, 불평등하게 진행된 탓에 이 땅에선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죄악시돼온 측면도 없지 않다. 그러나, 착취와 탄압이 아닌 능력개발과 개발된 능력의 적절한 사용으로 부를 축적하는 것은 단언하건대 죄가 될 수 없다.

불황일수록 우수죽순처럼 쏟아져 나오는 실용경제서들. 이 책들의 머리에는 근사한 카피가 수없이 붙어있지만 결국 이런 류의 책을 내고 읽는 목적은 하나다. "어떻게 하면 깨끗하게 많은 돈을 벌어들일 수 있을까'. 책 사이의 변별성을 찾기 힘들다.

최근 출간된 <부자들의 개인도서관>(랜덤하우스중앙)은 이런 출판관행에서 비껴나 있어 주목된다. 저자인 이상건은 이렇게 말한다. "부와 구원을 약속하는 상인이나 종교인 치고 사기꾼이 아닌 사람이 없다. 이는 역사가 말해주는 사실이다. 자극적이고 일회적인 재테크보다는 역사상 위대한 투자가들의 말에 귀 기울이는 게 현명한 처사다."

저자는 "황금을 모으는 수단은 주식이나 복권, 부동산이 아니라 지식"이라는 독특한 주장을 내놓음으로써 사람들의 독서욕을 자극한다.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 금융·경제팀장 출신의 이상건은 '부자들'이 읽은 책을 나름의 방식으로 재해석해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버는 기본원리'를 알기 쉽게 들려준다.

이상건은 이미 지난 2001년 재테크 가이드북 <돈 버는 사람은 따로 있다>를 출간해 자신의 이론과 노하우를 15만 독자들에게 알려준 바 있다.

한줄 이상의 의미로 읽는 신간들

ⓒ필맥
아이작 도이처의 <무장한 예언자 트로츠키>(필맥)

레닌이 영국 망명시절 발행하던 '이스크라(불꽃)'에 '페레'라는 필명으로 공산주의 사회건설의 당위성과 전망을 설파하던 저술가, 1917년 볼세비키 혁명의 주도자, 그리고, 망명지 멕시코에서의 허망한 죽음.

아이작 도이처의 트로츠키 전기는 불꽃과 변혁의 시대를 살다간 한 명민한 인간의 생애와 사상을 담고 있다. 부유한 유태인 지주의 아들인 그를 '불세출의 혁명가'로 만든 것은 무엇이었을까.

김수열 산문집 <섯마파람 부는 날이면>(삶이 보이는 창)
'제주의 작가' 혹은 '제주도의 시인'으로 불리는 김수열의 산문모음집. 숨길 수 없이 편편마다 드러나는 그의 '제주사랑'이 눈물겹다.

<식인문화의 풍속사>(이룸)
'사람이 사람을 먹는 풍습'이 단지 "잔인하다"는 힐난만을 받아야할 악덕인가? 카니발리즘에 대한 비난은 혹, 유색인종에 대한 백인들의 또 다른 폭력이 아닐지.

박시백 만화 <조선왕조실록>(휴머니스트)
'한겨레신문'에서 만평을 그렸던 박시백이 도전한 필생의 과업. 조선왕조사의 만화적 복원. 그 의미 있는 시도가 완성돼 가는 과정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의미 또한 만만찮다.

김규동 시집 <느릅나무에게>(창비)
한국문단 '원로 중의 원로' 김규동 (80)이 14년만에 선보이는 신작 시집.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 있을까. 독자들에겐 존경과 흠모를 바치는 일만이 남았다.

마이 퍼니 발렌타인

무라카미 류 지음, 양억관 옮김, 랜덤하우스코리아(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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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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