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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발달과 예상되었던 가판신문의 몰락

퇴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오후 5시30분, 서울 광화문 동아일보사 건물 앞 보도 앞에 가면 막 나온 따끈따끈한 가판신문을 사기 위해 서 있는 기업체 홍보실 직원들을 만나기 쉽다.

다음 날짜의 가판 신문을 입수하여 자사에 악영향을 줄 수 있는 관련기사를 미리 검토, 신문에서 빼내는 기사 로비 또한 기업 홍보에 있어서 상당히 중요한 업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풍경도 이제는 보기 힘들어지게 됐다.

2001년 10월 가판을 폐지한 중앙일보를 시작으로 올해 3월 7일 조선일보가 가판신문 발행을 폐지한다고 선언한데 이어 지난 4월 1일 경향신문, 2일 동아일보, 4일 한겨레로 가판발행이 중단되었다.

이러한 가판신문의 몰락은 인터넷환경의 발달로 어느 정도 예상해오던 일로 오히려 진작 폐지되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늦은 감도 있다.

가판신문이란 가정에 배달되기 전날 저녁 주로 서울 시내 가두판매용으로 발행되는 초판신문을 일컫는 말이다. 이름은 분명 가판(街販)신문이지만 거리에서 파는 신문의 의미보다는 임시로 찍어내는 신문의 성격이 강했다. 신문사들은 다음날 배달 신문에 앞서 경쟁신문사의 신문과 비교한 다음 거를 것은 거르고 채울 것은 채워나가기 위해서인 반면, 정부나 기업체의 입장에서는 좋지 않은 뉴스를 배달판 전에 발견하고 로비를 통해 삭제시키거나 축소시키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이런 요인 외에도 가판신문은 가판을 낸 후 각 신문들이 서로 비교해보는 과정에서 ‘베끼기’가 관행화되면서 종이신문의 몰개성화를 초래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이러한 복합적인 이해가 모여 가판시장은 오랫동안 호황을 누려왔다.

그러나 인터넷의 등장으로 달라진 미디어 환경은 오랫동안 호황을 누려오던 가판신문의 존재가치를 단번에 잠식하는 등 커다란 위협이 되어버렸다. 실시간으로 신속하다 못해 무섭게 올라오는 포털의 각 신문사 인터넷 기사들 덕분에 이미 보도내용을 충분히 접한 사람들에게 있어서 하루 전날 신문의 내용을 미리 볼 수 있다는 가판신문의 매력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이다. 여느 종이신문의 운명과 마찬가지로 구문(舊聞)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더불어 가판신문의 가장 중요한 고객이었던 정부마저 현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가판구독을 금지하고 인터넷으로 각 신문사 기사를 체크하게 되면서 가판 신문 발행으로 인한 비용 대비 경제적 효과도 사라진지 오래이다.

그러고 보면 가판신문이야말로 디지털 정보화시대에 한참이나 뒤떨어진 정보수집 방법이었다. 가판 신문의 존재 자체가 마치 밀실 담합하는 것처럼 조용하게 걸러지고 수정되고 채워지기 위한 것이므로 개방적이라기보다는 폐쇄적인 성격이 짙기 때문이다.

가판신문의 폐지는 종이신문의 위기 극복을 위한 자성의 결과

이런 점에서 각 신문사의 가판발행 폐지는 지금까지의 타성에서 벗어나 종이신문의 위기를 극복하려는 자성의 결과라고 생각된다.

비록 가판신문은 사라졌지만 가판신문의 폐지는 종이신문의 생존을 위한 필연적인 선택이다. 이는 잉크 냄새가 채 가시지 않은 막 인쇄된 싱싱한 종이신문의 냄새가 더 이상 추억 속으로 사라지지 않게 하기 위한 신문사들의 뼈를 깎는 체질 개선과 사고의 변화, 행동의 개혁을 위한 한 단계 진전이라고 볼 수 있다.

디지털 미디어 혁명이 진행되고 있는 이 세상에서 종이신문이 사라지지 않고 인터넷을 포함한 새로운 미디어와 공존해서 살아갈 길은 자신만의 특성을 극대화시키는 길뿐이다. 가판신문이라는 존재를 없앤 과감한 선택을 한 신문사들의 다음 행보가 기다려진다.

좋건 나쁘건 한 시대를 풍미했던 가판 신문의 몰락을 조문하며 가판신문의 폐지를 계기로 조만간 신문사마다의 고유한 색깔을 지닌 독창적인 신문편집과 인터넷으로는 볼 수 없는 깊이 있는 분석과 전문성이 살아 있는 기사를 볼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덧붙이는 글 | 아날로그형 인간의 디지털 분투기 51번째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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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업을 그만두고 10년간 운영하던 어린이집을 그만두고 파주에서 어르신을 위한 요양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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