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나의 안부를 묻는 희라의 반가운 메일.
나의 안부를 묻는 희라의 반가운 메일. ⓒ 김정혜
'언니 저, 희라예요.'

이렇게 시작하는 희라의 편지는 달콤한 오수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저를 또 행복하게 하였습니다.

희라. 아직 얼굴도 한 번 본 적 없는 동생입니다. 충북 청원군의 시골마을에 살고 있는 희라와는 우연하게 월간지 하나로 인연이 되었습니다. 희라뿐만이 아니라 전남 해남의 땅끝 마을에도 그 연유로 인연을 맺게 된 목사님이 한 분 계십니다.

그 월간지란 건, 매달 기업은행에서 무료로 배포하는 <여성시대>라는 책입니다. 희라가 사는 곳은 시골이라서 기업은행에 가기가 쉽지 않기에 누군가 다 본 <여성시대>를 좀 보내줄 수 없냐는 사연을 우연히 MBC '여성시대' 게시판에서 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연을 올린 건 희라 본인이 아니라 바로 그녀의 남편이었습니다. 책을 좋아하는 아내를 위하여 그 책을 구해주고 싶다는 남편의 글. 그 글을 읽는 순간. 짜르르 하는 감동이 순간 제 온 몸을 훑고 지나갔습니다.

저는 바로 전화수화기를 들었고 그녀의 남편과 통화를 하고 주소를 적었습니다. 그리곤 곧바로 자전거를 타고 우체국을 향해 바람처럼 달렸습니다.

제가 사는 곳도 시골이긴 마찬가지지만 얼마 전 기업은행이 들어 왔기에 매달 10일이면 저는 자전거를 타고 가서 그 책을 가져와서 보았고 다행스럽게도 그 글을 읽었을 땐 마침 그 달치 것을 다 본 후이기에 저는 망설임 없이 곧바로 충북 청주의 시골마을로 그 책을 보내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시작된 희라와의 인연은 매달 10일이면 어김없이 저를 기업은행으로 향하게 하였고 또 2,3일이 지나면 우체국을 향해 자전거 페달을 신나게 밟게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희라에게 책을 보내기 시작하고 나서 두 달인가 지난 어느 날이었습니다. 난데없이 <좋은 생각>이라는 월간지가 배달되어 왔습니다. 희라가 고마움의 표시로 내 앞으로 정기구독을 신청한 것입니다.

봉투의 '기증'이라는 두 글자가 한참을 기쁨과 감동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그 후 우리는 가끔 메일을 주고받으며 서로 소식을 전하였고, 사는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우리는 서로 언니 동생이라는 살가운 호칭으로 자매가 되었습니다.

희라는 충북 청원군의 한 시골마을에서 시어머니를 모시고 남편과 셋이서 살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아직도 나무로 불을 지피고 사는 산골마을을 자신이 사는 곳이라며 소개를 해주기도 하였고 작년 겨울 함박눈이 내렸을 땐 저랑 함께 그 눈을 보고 싶다고 하기도 하였으며,
가끔 비라도 내리는 날엔 왠지 울적하다며 때 아닌 쓸쓸함에 우울해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희라가 정말 피붙이처럼 살갑게 느껴져 이런저런 수다로 답을 해주기도 하였습니다.

전남 해남의 땅끝 마을에 사시는 목사님과의 인연도 그와 비슷한 이유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전혀 여과되지 않은 세상 사는 이야기가 그대로 수록된 그 책이 목사님의 목회 생활에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은데 역시나 목사님께서 사시는 그곳도 기업은행이 없어서 참 아쉽다는, 그래서 누군가 다 보았다면 좀 보내 주십사 하는 사연에 저는 또 오지랖 넓게도 책을 보내 드렸고 그런 연유로 목사님과도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물론 목사님 역시도 지금껏 얼굴 한번 본 적 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희라가 메일로 소식을 전하는 반면, 목사님은 가끔 문자메세지로 소식을 전하십니다.

그리고 지난 여름. 목사님은 그 유명하다는 땅 끝 마을의 밤고구마를 고마움의 표시로 한 박스나 보내주셨습니다. 고구마 철이 되면 밥도 거른 채 고구마만 먹어대는 고구마 귀신인 제겐 정말 감사한 선물이었습니다. 그리고 목사님은 우리 가족 모두 올 여름 휴가를 땅끝 마을로 오라고 작년에 이미 이른 초대를 해주셨습니다.

충청도에 사는 희라와 전라도에 사시는 목사님과 우연한 계기로 그렇게 인연을 맺은 것이 벌써 한 돌을 향해 아장아장 걸음마를 떼고 있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은 아침 저녁 늘 얼굴을 맞대고 사는 이웃도 아니건만 오랜 친구처럼 새록새록 고운 정이 그들에게서 느껴지는 건 무엇 때문인지. 어쩌다 소식이 뜸할 때면 그들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가 하는 염려로 조바심을 치는 저 자신을 발견할 때면 그 사이 그들에게 깊은 애정을 갖게 되었다는 것을 느낍니다.

그래서 저는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희라나 목사님과 저는 애초에 서로 계산된 그 무엇도, 아무런 조건도 굳이 필요치 않은 그저 마음으로 인연을 맺었기 때문이라 전 결론을 내렸습니다.

아내를 사랑하는 남편의 고운 마음과 여과되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의 희로애락이 목회 활동에 도움이 될 것 같다는 목사님의 따뜻한 마음이 우리들 인연의 전부였으니까요.

그렇게 생각해보니 우리네 사는 것이란 게 크고 작은 인연들로 하나하나의 점을 만들고 그것들이 또 연결고리가 되어 끝내는 인생이라는 동그라미를 만드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마도 그 동그라미가 커질수록 우리네 삶도 더욱 더 풍요로워지는 건 아닐는지.

그런 생각을 해보니 갑자기 제가 큰 부자가 된 것 같습니다. 오늘 또 한 가지 삶의 지혜를 배웠습니다. 결코 돈이 아니더라도 부자가 되는 방법 말입니다. 요즘처럼 모든 것이 힘들 때 이렇게 마음이라도 한번 큰 부자로 살아 보렵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왜 기자회원이 되고 싶은가? ..내 나이 마흔하고도 둘. 이젠 세상밖으로 나가고 싶어진다. 하루종일 뱅뱅거리는 나의 집밖의 세상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곱게 접어 감추어 두었던 나의 날개를 꺼집어 내어 나의 겨드랑이에 다시금 달아야겠다. 그리고 세상을 향해 훨훨 날아보아야겠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