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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저, 희라예요.'
이렇게 시작하는 희라의 편지는 달콤한 오수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저를 또 행복하게 하였습니다.
희라. 아직 얼굴도 한 번 본 적 없는 동생입니다. 충북 청원군의 시골마을에 살고 있는 희라와는 우연하게 월간지 하나로 인연이 되었습니다. 희라뿐만이 아니라 전남 해남의 땅끝 마을에도 그 연유로 인연을 맺게 된 목사님이 한 분 계십니다.
그 월간지란 건, 매달 기업은행에서 무료로 배포하는 <여성시대>라는 책입니다. 희라가 사는 곳은 시골이라서 기업은행에 가기가 쉽지 않기에 누군가 다 본 <여성시대>를 좀 보내줄 수 없냐는 사연을 우연히 MBC '여성시대' 게시판에서 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연을 올린 건 희라 본인이 아니라 바로 그녀의 남편이었습니다. 책을 좋아하는 아내를 위하여 그 책을 구해주고 싶다는 남편의 글. 그 글을 읽는 순간. 짜르르 하는 감동이 순간 제 온 몸을 훑고 지나갔습니다.
저는 바로 전화수화기를 들었고 그녀의 남편과 통화를 하고 주소를 적었습니다. 그리곤 곧바로 자전거를 타고 우체국을 향해 바람처럼 달렸습니다.
제가 사는 곳도 시골이긴 마찬가지지만 얼마 전 기업은행이 들어 왔기에 매달 10일이면 저는 자전거를 타고 가서 그 책을 가져와서 보았고 다행스럽게도 그 글을 읽었을 땐 마침 그 달치 것을 다 본 후이기에 저는 망설임 없이 곧바로 충북 청주의 시골마을로 그 책을 보내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시작된 희라와의 인연은 매달 10일이면 어김없이 저를 기업은행으로 향하게 하였고 또 2,3일이 지나면 우체국을 향해 자전거 페달을 신나게 밟게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희라에게 책을 보내기 시작하고 나서 두 달인가 지난 어느 날이었습니다. 난데없이 <좋은 생각>이라는 월간지가 배달되어 왔습니다. 희라가 고마움의 표시로 내 앞으로 정기구독을 신청한 것입니다.
봉투의 '기증'이라는 두 글자가 한참을 기쁨과 감동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그 후 우리는 가끔 메일을 주고받으며 서로 소식을 전하였고, 사는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우리는 서로 언니 동생이라는 살가운 호칭으로 자매가 되었습니다.
희라는 충북 청원군의 한 시골마을에서 시어머니를 모시고 남편과 셋이서 살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아직도 나무로 불을 지피고 사는 산골마을을 자신이 사는 곳이라며 소개를 해주기도 하였고 작년 겨울 함박눈이 내렸을 땐 저랑 함께 그 눈을 보고 싶다고 하기도 하였으며,
가끔 비라도 내리는 날엔 왠지 울적하다며 때 아닌 쓸쓸함에 우울해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희라가 정말 피붙이처럼 살갑게 느껴져 이런저런 수다로 답을 해주기도 하였습니다.
전남 해남의 땅끝 마을에 사시는 목사님과의 인연도 그와 비슷한 이유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전혀 여과되지 않은 세상 사는 이야기가 그대로 수록된 그 책이 목사님의 목회 생활에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은데 역시나 목사님께서 사시는 그곳도 기업은행이 없어서 참 아쉽다는, 그래서 누군가 다 보았다면 좀 보내 주십사 하는 사연에 저는 또 오지랖 넓게도 책을 보내 드렸고 그런 연유로 목사님과도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물론 목사님 역시도 지금껏 얼굴 한번 본 적 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희라가 메일로 소식을 전하는 반면, 목사님은 가끔 문자메세지로 소식을 전하십니다.
그리고 지난 여름. 목사님은 그 유명하다는 땅 끝 마을의 밤고구마를 고마움의 표시로 한 박스나 보내주셨습니다. 고구마 철이 되면 밥도 거른 채 고구마만 먹어대는 고구마 귀신인 제겐 정말 감사한 선물이었습니다. 그리고 목사님은 우리 가족 모두 올 여름 휴가를 땅끝 마을로 오라고 작년에 이미 이른 초대를 해주셨습니다.
충청도에 사는 희라와 전라도에 사시는 목사님과 우연한 계기로 그렇게 인연을 맺은 것이 벌써 한 돌을 향해 아장아장 걸음마를 떼고 있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은 아침 저녁 늘 얼굴을 맞대고 사는 이웃도 아니건만 오랜 친구처럼 새록새록 고운 정이 그들에게서 느껴지는 건 무엇 때문인지. 어쩌다 소식이 뜸할 때면 그들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가 하는 염려로 조바심을 치는 저 자신을 발견할 때면 그 사이 그들에게 깊은 애정을 갖게 되었다는 것을 느낍니다.
그래서 저는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희라나 목사님과 저는 애초에 서로 계산된 그 무엇도, 아무런 조건도 굳이 필요치 않은 그저 마음으로 인연을 맺었기 때문이라 전 결론을 내렸습니다.
아내를 사랑하는 남편의 고운 마음과 여과되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의 희로애락이 목회 활동에 도움이 될 것 같다는 목사님의 따뜻한 마음이 우리들 인연의 전부였으니까요.
그렇게 생각해보니 우리네 사는 것이란 게 크고 작은 인연들로 하나하나의 점을 만들고 그것들이 또 연결고리가 되어 끝내는 인생이라는 동그라미를 만드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마도 그 동그라미가 커질수록 우리네 삶도 더욱 더 풍요로워지는 건 아닐는지.
그런 생각을 해보니 갑자기 제가 큰 부자가 된 것 같습니다. 오늘 또 한 가지 삶의 지혜를 배웠습니다. 결코 돈이 아니더라도 부자가 되는 방법 말입니다. 요즘처럼 모든 것이 힘들 때 이렇게 마음이라도 한번 큰 부자로 살아 보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