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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단에서 발견한 샛노란 민들레
화단에서 발견한 샛노란 민들레 ⓒ 한성수
첫날시험이 끝난 저녁, 나는 딸아이에게 시험에 대해 물었습니다. 아내는 ‘당신이 그렇게 관심을 가지니까 스트레스를 받는다’며 면박을 줍니다. 딸애의 학교는 고사장에 2학년과 3학년을 한 줄씩 섞어 앉히고, 감독관도 두 명씩이나 배치를 한다고 합니다. 시험부정을 막기 위한 학교측의 조치이겠으나 나는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가뜩이나 시험에 주눅든 아이들에게 갑자기 변한 낯선 환경과 믿고 따라야 할 선생님들의 감시의 눈초리는 아이들에게 상처를 줄 것이 틀림없습니다. 선생님과 학생이 서로 믿고 감독관 없이 시험을 치르는 것은 정말 이룰 수 없는 꿈일까요?

둘째 날인 어제 아침도 딸아이는 ‘속이 울렁거린다’며 밥을 먹지 못합니다. 나는 다시 ‘아버지는 너의 시험결과가 나쁘다고 해도 질책하지 않을 테니 마음을 쓰지 마라’고 타일렀습니다. 그제야 딸애는 마지못해 밥을 두어 숟가락 떠먹습니다. 학교로 가는 차 안에서도 나는 ‘시험을 치르기 전에 심호흡을 하고 마음을 편하게 가질 수 있도록 자기최면을 해 보라’고 권합니다.

오후에 딸애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나는 시험에 대해 말을 아낍니다. 어제 저녁, 술에 취한 나는 아파트 입구에서 딸애를 밖으로 불러내었습니다. 우리는 팔짱을 끼고 동네를 한 바퀴 돌았습니다. 딸애는 ‘낮에 전화하면서 아버지가 시험에 대해 물어주지 않아서 더 스트레스를 받았다’며 웃습니다.

우리는 오래 전에 함께 읽었던 <권정생 선생님의 강아지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눕니다.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정확한지 모르지만 딸애는 가만히 들어줍니다.

똥개 한 마리가 들판에다 똥을 누었지요. 그 근처에 새들이 뽀르르 날아 앉았지요.
“아휴! 지독한 냄새, 견딜 수가 없네. 저리 가자"

개미들도, 개구리도 모두 개똥이를 외면했지요.
"아! 나는 정말 필요 없는 존재인가보다. 나는 왜 이리 더러운 존재로 태어났을까!"
하루가 가고, 이틀이 가고...... 비가 오고, 바람이 불고.......

꽃이 지고 홀씨가 되기전
꽃이 지고 홀씨가 되기전 ⓒ 한성수

그런 어느 날이었지요. 넋을 놓고 있던 그에게 그의 몸 안에서 말을 거는 이가 있었지요.

"고맙습니다. 당신이 있어 나는 태어날 수 있고, 예쁜 꽃을 피울 수도 있습니다."

"당신은 누구 신가요?" 기력이 쇠잔해진 그가 물었어요.
"저는 민들레랍니다."

그 날부터 개똥이는 민들레를 위하여 자기를 죽이기 시작했어요. 몸을 잘게 부수고 독성을 없앴어요.
그리고는 뿌리를 통하여 민들레와 하나가 되었지요.

노오란 민들레꽃이 피었어요. 아이들이 활짝 웃었지요. 개똥이인 민들레도 행복했답니다. 그리고 꽃이 시들자 민들레는 홀씨가 되어 또 다른 행복한 개똥이가 있는 곳으로 날아갔지요.


홀씨가 되어 날아가고
홀씨가 되어 날아가고 ⓒ 한성수

“사랑하는 딸! 네가 지금 치르고 있는 시험이라는 것은 너를 완성하기 위한 여러 과정 중의 하나일 뿐이란다. 그러므로 시험성적이라는 것도 그 과정을 점검하는 수단에 불과한 거란다. 그러니 그 결과에 연연하지 말거라. 지금 네게 필요한 것은 많은 책을 읽어서 지식을 받아들이는 거란다. 그건 너를 꽃피우기 위한 자양분이 되겠지.

아버지는 참으로 행복한 개똥이란다. 너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샛노란 민들레로 피어나서 너를 보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렴. 오늘은 시험 마지막날이구나. 그 동안 시험 치르느라 정말 고생이 많았다. 아버지가 저녁에 피자 한 판 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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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변에 있는 소시민의 세상사는 기쁨과 슬픔을 나누고 싶어서 가입을 원합니다. 또 가족간의 아프고 시리고 따뜻한 글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글공부를 정식으로 하지 않아 가능할 지 모르겠으나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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