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일간지 <데일리 텔레그래프>는 4월 28일자 1면에 '모두 총살시켜라(Kill them all)'라는 섬뜩한 헤드라인을 뽑았다. 마약사범을 극형에 처해야 한다는 인도네시아 경찰의 주장을 인용한 것. 인도네시아에서 마약사범은 대개 총살에 처해진다.
<데일리 텔레그래프>에 의하면, 18~29살의 호주청년 9명은 4월 17일 발리 덴파사르(Denpasar) 국제공항과 MBB호텔에서 인도네시아 경찰에 의해 체포됐다. 5명은 접착테이프를 사용해 마약을 몸에 부착한 상태로 비행기에 탑승하려다가 체포됐고, 나머지는 마약을 소지한 상태로 호텔에 머무는 도중에 체포됐다.
이들 '발리 나인'은 헤로인을 무사히 시드니까지 운반해주면 그 대가로 1만 호주달러(약 8백만 원)를 받기로 약속하고 이같은 일을 감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도네시아 경찰에 따르면, 그들은 선불조로 5백 호주달러를 받기도 했다.
<에이에이피(AAP) 통신>은 마이크 페란 호주 연방경찰의 발언을 인용, 호주경찰당국이 수개월 전부터 이들의 동태를 파악했으며 수집된 정보를 인도네시아, 태국 등의 해당국가에 제공했다고 보도했다.
그는 채널7 TV와의 인터뷰에서 "이번에 발각된 마약은 태국내륙에서 제조되어 여러 경로를 거쳐서 발리의 운반책에게 전달된 것으로 보인다"면서 "체포된 9명 중 일부는 운반책으로 동원된 것으로 추정되지만 한두 명은 호주 마약신디케이트의 하이 랭커(High Ranker)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호주외무당국은 사건이 발생하자마자 변호사 선임과 통역관 알선 등의 편의를 제공하는 등 자국민보호 차원에서 발 빠른 움직임을 보였다. 그러나 발리 주재 호주영사관은 피의자들이 공정한 재판을 받을 수 있도록 도울 뿐 재판에 영향을 미치는 활동은 일절 삼가고 있다.
피의자들 "강요에 의한 것" 주장, 그러나...
사건 발생 초기, 호주 언론은 이들 9명이 제3의 주동자의 협박에 의해 '마약 밀반입을 강요당했을 것'이라며 총살형은 면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었다. 피의자 9명도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No Choice)"고 주장했다.
그러나 수사가 진전되면서 '발리 나인' 전원이 그동안 가짜여권 등을 이용해서 발리를 드나든 사실이 밝혀지자 상황이 급변했다. 당시 시드니여권사무소에 근무하던 수쿠마란이 이들의 여권을 위조해주면서 사건을 진두지휘한 것으로 사건의 가닥이 잡혀가고 있는 것.
이제 '발리나인'중 한 명이라도 총살형을 피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이는데 그들이 단순 가담이나 강요에 의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인도네시아 경찰은 4월 27일 "범인 전원이 발리를 수시로 드나들면서 범행을 모의하고 실행했기 때문에 모두 처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채널 10TV는 "인도네시아 경찰이 4월 28일 오전, 이번 사건에 연루된 것으로 보이는 범인 한 명을 체포하던 중 사살했다"고 보도하면서 "이번 사건이 '발리 나인'이 아니라 '발리 텐'일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호주경찰당국은 발리와 연계된 호주마약 신디케이트를 뿌리 뽑겠다고 벼르고 있다. 인도네시아 경찰과의 공조수사를 통해서 호주뿐만 아니라 동남아 일대에 포진된 커넥션을 와해시키겠다는 강한 의지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젊은이들이여, 유혹에 빠지지 말라
'발리 나인'은 현재 재판을 기다리고 있으나 범죄 증거가 확실해 총살형을 당할 것이 거의 확실시 된다.
현재 호주의 여론은 순간의 실수로 사형까지 당하는 것은 지나치므로 정부가 나서서 외교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의견과 상대국가의 법을 존중해 '일벌백계'의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는 의견으로 나뉜 상태다.
9명의 피의자들은 사형제도가 없는 호주에서 재판을 받게 해달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국제법상 불가능 한 일이다.
이에 대해 알렉산더 다우너 외무장관은 "범죄가 발생한 곳에서 재판을 받기로 한 두 나라의 협정을 존중해야 한다"면서 "동남아시아의 마약관련 법이 엄중하기 때문에 호주청년들은 절대로 유혹에 넘어가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 베트남, 태국, 말레이시아, 필리핀 등에서도 마약범죄는 중벌로 다스려진다. 또 해외여행객들에게 짐을 맡긴다거나 여행객들의 가방에 몰래 마약을 집어넣어 이를 해외로 밀반입하려는 경우도 종종 발생해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한편 중국과 일본에 이어서 그리스를 방문 중인 존 하워드 호주총리는 4월 28일 아테네에서 가진 호주국영 ABC-TV와의 인터뷰를 통해서 "호주정부는 범인들이 사형만을 면하도록 모든 방법을 강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인도네시아 발리의 마약퇴치 담당 경찰인 밤방 수기아르토 경감은 4월 28일 호주A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도 "그들이 유죄로 판결된다면 사형이 집행될 것이다"라고 말해 일체의 희망적인 가능성을 일축했다.
'발리나인'의 운명은 점점 더 어두워지고 있다.
| | "누군가 내 가방에 마리화나를 넣었을 뿐" | | | 7개월째 발리교도소에 수감중인 샤펠 코비의 호소 | | | | '발리나인' 사건에 앞서 지난해 발생한 '샤펠 코비 마리화나 밀반입 사건'은 다른 각도에서 호주국민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는 경우다.
지난해 10월, 퀸즐랜드 골드코스트 미용학교에 재학 중인 샤펠 코비(27)는 인도네시아 발리로 서핑여행을 떠났다가 마리화나 4.1kg을 밀반입했다는 이유로 공항에서 체포돼 지금까지 7개월째 수감돼 있다. 문제는 코비가 무죄를 주장하고 있는 것.
코비는 최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공판에서 검찰에 의해 종신형을 구형받았다. 당초 총살형이 예상됐다가 종신형으로 낮춰지긴 했으나 감형이 허락되지 않는 종신형이기 때문에 총살형보다 더 가혹하다는 호주여론도 있다.
그녀는 그동안 담당변호사와 호주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서 "나는 아무 것도 모른다. 누가 내 서핑보드 가방에다 나 모르게 마리화나를 넣은 것이다"라고 강하게 주장하면서 "호주공항의 수화물 취급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검찰이 인정해야한다"고 말해왔다.
실제로 지난 3월 시드니 공항에서는 수화물을 취급하는 직원이 승객의 수화물에서 모피 등을 꺼내 걸치고 다니는 장면이 감시카메라에 찍힌 사실이 있어 담당변호사는 코비의 주장이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하고 있다.
4월 28일, 발리법정에서 열린 공판에서 법정진술을 가진 코비는 "신이 나의 증인이다(God is my witness)"라면서 "나의 잘못은 수화물가방을 잠그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이어 "내 가방의 무게가 출발지인 브리즈번 공항에서의 무게와 다르다는 게 내 무죄를 입증하는 명백한 증거"라면서 "나는 단지 마약밀매조직의 희생자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호주의 전 TV가 녹화 방송한 코비양의 진술은 대부분의 시청자들을 안타깝게 만들었다. 그녀가 겁에 질린 얼굴에 눈물까지 흘리면서 "지금 나의 목숨은 당신들의 손에 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당신들의 가슴에 있기를 바란다"고 세 명의 재판관에게 말했기 때문이다.
한편 호주 2Day-FM에 출연한 코비의 어머니는 "내 딸은 전과가 전혀 없고 마리화나는커녕 담배와 술조차 즐기지 않았는데도 7개월 동안 수도시설조차 없는 감옥에서 억울한 수형생활을 하고 있다"고 항변했다.
그러나 이후 진행될 재판에서 그녀의 감형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그녀의 운명은 5월 26일에 열린 선고공판에서 판사 세 사람에 의해서 결정된다. / 윤여문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