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과 국부라는 다소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콘셉트를 한 자리에 결합시킨 <음식국부론>(생각의 나무)이 지난 11일 출간됐다. 그간 개인적인 차원에서의 웰빙만을 강조하던 차원을 뛰어넘어 보다 구조적인 시각에서 우리의 식탁을 바라보자는 취지 아래 써내려간 이 책의 저자 우석훈은 아주 조그만 것부터 시작하자고 말한다. 이 인터뷰는 28일 우석훈 선생과 <음식국부론>을 놓고 얘기한 것을 정리한 것이다.
-책 내용을 말하기에 앞서서 선생님 약력을 보면 조금 독특합니다. 전에는 정부 정책 입안과 관련한 좋은 부서, 요즘 사람들이 동경해 마지않는 공직자셨는데 어째서 갑자기 환경운동 쪽으로 방향을 선회하셨나요?
“우리나라보다는 외국에 더 알려져 있었지요. 기후변화협약의 실무기구에 할도라는 아일랜드 의장이 선출되면서 개혁 성향의 개혁그룹으로 분과 의장까지 맡고 선출직 이사까지 되는 등 외국에서는 꽤 알려져 있었어요. 외국에서는 언젠가 서브스타(SBSTA)라고 하는 기후변화협약 실무기구의 의장까지 하게 될 거라고 전망하고 있었는데, 그만두게 되면서 아쉬웠던 건 서브스타 개혁의 끝을 보지 못하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그만두게 된 가장 큰 요인은 참여정부가 출범하면서 인수위원회 구성을 보면서 정말 절망했기 때문이었어요. 욕먹으면서도 지난 선거 때에는 노무현 대통령을 지지했는데, 인수위원회 면면을 보면서 앞으로 어떤 5년이 펼쳐질지 눈에 선하게 들어오더라고요. 그래도 안에서 누군가는 버티면서 싸워서 좀 중심을 잡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리는 동료들이 많았는데, 솔직히 두려웠어요. 나중에 부안사태 같은 거 보면서, 그냥 있었으면 마음고생 많이 했을 것 같더군요. 전문가보다는 좋은 학자가 되고 싶었어요.
미셀 푸코나 사르트르 같은 사람들도 다 이렇게 살았지요. 이론이라는 게 결국은 현장에서 나오는 거고, 좋은 이론을 만드는 사람이 좋은 학자 아니겠어요. 그런 면에서 지금은 행복하지요.”
-환경생태 운동을 하시는 분도 많고 음식을 환경과 생태의 측면에서 접근하는 분들도 많지만 정작 전체적인 어떤 조감도를 가지고 체계를 세워서 우리가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인 대안을 내놓는 분은 많지 않은 듯합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선생님의 책은 전부는 아니더라도 어떤 단초를 제공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책 내용에 보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 문제인지 조목조목 짚어주고 있는데 간단하게 문제점이 무엇이고 무엇이 가장 핵심적으로 해결해야 할 사안인지 말씀해주세요.
“마지막까지 고민한 건 회사들이나 제품의 실명을 밝힐까 말까하는 생각이었는데, 그냥 독자 여러분들이 행간을 읽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다 뺐어요. 처음에는 C사, P사, J사, D사의 어떤 제품 이런 식으로 문제가 있는 걸 다 썼는데, 나중에 그걸 빼고 나니까 밋밋해져 버리더군요. 몸에 좋으냐 건강에 좋으냐를 떠나서 먹어서는 안 되는 걸 파는 게 너무 많아요. 장기적 효과로는 정말 먹을 수 있는 게 없어요.
이게 한두 가지가 아니니까, 지금은 시스템에 대해서 고민하고, 어떻게 하면 최소한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생산 및 공급 체계를 만들 것인가에 대해서 생각해야 하는데, 현재는 그야말로 ‘자신의 일은 자신이 하자’라는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그냥 맡겨 놓고, 정부는 그냥 믿어주세요라고 하는 거 아니에요?
일례로 90년대 중반에 폐기물 처리하는 토목공학 박사들 만나면 식사할 때 절대로 호박은 안 먹는 거예요. 원래 호박이 중금속 오염된 데서 잘 자라요. 흡수력이 높아서 그렇지요. 그래서 중금속으로 오염된 토양을 복원할 때 호박을 심거든요. 그럼 이 호박은 다 회수해서 폐기해야 하는데, 그걸 그냥 시중에 유통시켜 버렸어요. 지금은 괜찮으냐? 괜찮지 않고, 오히려 10년 전보다 더 위험해진 상태예요.
어떤 음식이 위험한지 어느 회사의 음식이 위험한지 일일이 알려주고 싶었는데, 출간 과정에서 실명들은 다 뺐어요. 소송을 피하려다 보니, 책이 꼭 예언서처럼 되어버렸어요. 그래도 음식국부론 행간을 잘 읽어보면 어떤 회사의 어떤 음식이 위험한지 알 수는 있어요.”
-제가 원고를 처음 받았을 때는 그냥 말랑말랑한 요즘의 웰빙서류로 착각했었습니다. 내용을 보니까 이 책이 가진 독특한 매력은 정치경제학적 관점에서 음식의 문제를 다룬 게 아닌가 여겨지더군요. 평소에 선생님이 음식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도 궁금하고 어떤 문제의식으로 음식에 관해서 이런 책을 써내시게 됐는지도 들어보고 싶습니다.
“시장이 우리나라에서는 극단적인 이데올로기가 된 상황 이예요. 모든 건 시장이 알아서 해줄 테니까, 기업에 맡기고, 그게 최고의 해결책이라고 하지요.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고 하면 제일 먼저 하는 얘기들이 미국의 예를 들어요. 세계에서 가장 먼저 체계적인 학교급식 체계를 만든 게 바로 미국이지요. 1940년, 한창 전쟁 중에 미국이 대대적으로 학교급식 체계를 정비하게 됩니다.
전쟁을 치르려고 모병을 해보니까 전부 발육부진에 체격미달이었는데, 그 이유는 바로 1929년 세계를 휩쓴 대공황 시절에 이 아이들을 제대로 먹이지 못해서 그런 일이 벌어졌거든요. 최소한 가난한 아이들이나 집에서 제대로 신경 쓸 수 없는 아이들에게도 제대로 된 먹을거리는 해결해주는 것이 바로 그 시장의 이념 이예요. ‘효율성’을 보완하는 ‘형평성’은 기본적인 보건과 교육에 해당돼요. 그리고 이건 미국도 예외는 아니고요. 그런데 이걸 개인이 알아서 해라? 그건 시장도 아니고 자본주의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녜요.
그냥 야만스러운 사회일 뿐이죠. 1인당 국민소득 만 불이면, 이제 이 정도 먹는 문제는 해결될 시기거든요. 음식 스캔들의 역사가 우리나라가 깊죠? 이건 하나하나 스캔들로 만들어서 풀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이 진화해야 하는 상황 이예요. 은행 몇 개 망하면 큰일 난다고 거의 백 조원 가까이 쏟아 부었잖아요. 그런데 아이들을 친환경유기농으로 급식하는 데에 몇 백억도 아깝다고 하는 상황 이예요. 노령화된다고 난리치잖아요? 이런 작은 문제들이 모여서 그런 거시경제적인 크고 대처할 수 없는 효과를 만들어내는 거예요.
국가? 최소한 국민들이 편히 먹고 살라고 만들어낸 것이 근대국가 아닙니까? 지금의 우리나라 정부는 사회계약론의 기본 정신도 지키지 않고 있는 겁니다. 지금부터라도 시스템이 진화를 해야 하는 거지요. 음식에 관해서는 우리나라 소비자들이 너무 관대해요. 까다롭게 굴어야 합니다. 핸드폰 소비자는 우리나라가 가장 까다롭지요? 그래서 핸드폰 산업이 망했나요? 사진도 찍게 해 달라, MP3도 틀게 해 달라, 거기다가 컴퓨터 기능도 해야겠다……. 이래서 결국 세계 최고의 핸드폰을 만들고 있는 거 아니겠어요? 소비자들이 더 까다롭고, 도대체 어떤 걸 넣었고, 어디에서 만든 건지 알아야겠다고 할수록 우리나라 식품이 안전해지고, 튼튼해질 겁니다.”
- 현장에서 활동하시니까 음식과 관련해서 충격적인 사건이나 고통 받는 분들을 겪어보셨을 듯합니다. 선생님이 음식 문제가 정말 심각하구나 하고 느끼셨던 대표적인 에피소드 몇 가지를 들려주신다면요?
“아토피 아이들은 눈물 없이 보기는 어려워요. 그냥 가슴이 짠해지고. 어른으로서 미안할 뿐이지요. 통계적으로는 16%의 아이들이 아토피고, 서울 강남도 38%나 됩니다. 대구 중구는 64%로 전국 최고이고, 광주 동구도 43% 가까이 됩니다.
이런 데도 별 일 없다고 하는 사람들 보면, 아이들이 안쓰럽지요. 통계를 역사적으로 뒤져보니까, 70년에 태어난 어머니들이 아이를 낳으면서 아토피가 사회적 현상이 됐어요. 그 시기는 유신 시대이기도 하지만, 농약이 대량으로 공급된 시기이고, 미원의 성공으로 화학조미료가 대량 보급되었고, 새우깡 같은 스낵 류가 보급된 때지요. 이걸 먹고 자란 어머니들이 아이를 낳을 때 아토피가 생겨났어요. 80년대에는 햄버거 류가 공급됐습니다. 앞으로는 어떨까요? 새우깡은 일본 과자 표절했다는 얘기가 있지요.
근데 아토피 아이들이 우리나라 새우깡을 먹으면 알레르기가 돋는데, 똑같이 생긴 일본 새우깡을 먹으면 아무 일이 없는 거예요. 우유도 그래요. 체질별로 조금 다른데, 아토피 아이들의 경우 대개 알레르기 반응이 심한 경우가 많은데, 유사한 성분의 산양유를 마시면 아무렇지도 않아요. 그만큼 제초제나 항생제 같은 게 많이 있다는 거죠. 그런데 그것도 마케팅이라고 1리터 이상은 마셔줘야 키가 큰다고 광고하는 거 보면 마음이 무너지지요.
아이스크림도 그래요. 아토피 아이들이 먹을 수 있는 아이스크림이 없는 게 보기에 예쁘라고 황색 몇 호니 하는 인공색소를 안 넣은 게 거의 없거든요. 회사들도 할 말은 있어요. 그렇게 안 하면 안 사먹는다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이건 “입맛” 자체를 놓고 온 사회가 같이 진화를 시작해야 풀릴 것 같아요.”
-이 책은 읽은 독자가 꼭 알아줬으면 하는 내용이 있으신가요? 아니면 어떻게 읽어야 이 책을 제대로 읽는 방법인지 이 책의 독법에 대해 한마디 해주신다면?
“음식 얘기에 국부론이라는 딱딱한 제목을 붙이기까지 약간의 고심이 있었는데, 국부론 읽는 마음으로 읽으면 국부론보다는 훨씬 쉽게 읽히겠지요. 책은 대체적으로 평이하고 재미있게 서술을 했는데, 예언서 같은 책이 돼버렸어요. 행간 중간 중간에 작은 단초를 주고 마음으로 읽어야 하는 책이지요. 그러다보면 어떤 음식이 위험한 거고, 어떤 게 지금 문제인지 알 수 있게 해놓았어요.
그리고 뭘 어디서 어떻게 먹으면 좋은지, 그건 전화번호까지 뒤에 전부 달아놓았지요. 하여간 개인들에게 조금이라도 좀 도움을 주고 싶었어요. 그리고 만약 부탁 하나를 달자면 이 책은 여성보다는 남자들에게 더 도움이 될 겁니다. 집에서 조미료를 없애는 작은 노력으로 이 사회가 새로운 진화를 시작할 수 있는데, 거기에 제일 큰 걸림돌이 되는 게 밖에서 외식 많이 하는 아버지들이거든요.
조미료가 빠져서 맛이 없더라도 한 달만 참으면 원래 입맛이 회복돼요. 거창하게 얘기했지만, 아버지들이 조미료 없는 음식을 한 달 정도 참고 먹는 게 제가 생각하는 “음식 혁명”의 시작이지요. 유아 전문하는 사람들에게 있는 우스운 농담이 “할아버지가 육아의 적”이라는 말이 있어요.
기껏 조미료 없고 설탕 없이 음식 먹을 수 있게 아이들 입맛을 만들어놓으면, 가끔 놀러 오시는 할아버지가 초콜릿이나 과자를 잔뜩 아이들에게 먹여서 입맛을 엉망으로 만들어놓는다고요. 만약 조미료 없이는 음식 못 먹겠다고 투정부리는 아버지가 있으면 이 책을 읽도록 권해보세요. 아마 생각이 바뀌실 겁니다.”
-앞에서 무겁고 딱딱한 이야기만 잔뜩 했으니 좀 사적인 얘기를 좀 꺼내보겠습니다. 선생님, 얼마 전에 장가 가셨잖아요. 혼인을 하셨으니 2세 계획도 있으실 텐데 요즘같이 환경오염이 심하고 건강한 아이 낳기가 어려운 상황에서 어떻게 살아야겠다 같은 선생님만의 방식 같은 게 혹 있습니까?
“제주도가 전국에서 아토피 발병률이 제일 높습니다. 22% 정도 되지요. 전문가들은 관광제주 한다고 하면서 도로공사니 건물이 잔뜩 지으면서 발생한 미세먼지 때문이라고 하기도 하고, 서른 개 정도의 골프장 때문에 지하수가 오염되어서 그렇다고 하기도 해요. 시골이라고 더 안전하지는 않아요. 특히 농촌 지역의 아파트는 새집증후군 때문에 서울과 비슷한 아토피 발병률을 보여주지요. 아내가 스물다섯 살까지 아토피였어요.
아마 저도 아이 낳으면 아토피가 생길 확률이 100%라고 각오하고 있습니다. 통계적으로 보면, 지리산 일부, 양구처럼 서울에서 먼 곳 정도가 안전한데, 요즘은 여주의 상수원보호구역 근처에서 조그맣게 텃밭 가꾸면서 농업살리기에 매진할까 하는 쪽으로 생각이 기울어요. 도시 문제는 도시에 계시는 훌륭하신 분들이 해결하실 거니까, 저는 당분간은 농업 문제에 매달릴까 해요. 평생 살았던 고향을 이제 떠나려고 틈틈이 지방으로 집 보러 다니는데, 아이가 안 아프고 한 5년 정도 아이를 키울 수 있는 데가 정말 없더라고요.
불교에 공즉시색, 색즉시공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요즘 같으면 딱 맞아요. 눈에 좋은 게 생태적으로는 대단히 해롭지요. 음식도 그렇고 아파트도 그렇고 고급빌라도 그렇고. 공즉시색, 공해는 곧 색깔이 곱다, 색깔이 고운 건 곧 공해물질이다, 불경을 이렇게 해석하면 불경스럽겠지만, ‘예쁘지 않아도 좋아’라는 게 사회적 경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공기 좋고 물 좋은 곳에 가서 살면 좋겠지만 저같이 서울을 떠날 수 없는 사람들은 먹는 거라도 조심하면서 살아야겠네요. 긴 시간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덧붙이는 글 | 조성웅 기자는 <음식국부론>의 편집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