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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인 건물에서는 연출되기 힘든 온전한 반사가 전면 유리창 건물에서는 쉽게 이루어진다. 건물은 그저 반사만 해주면 된다. 사람이 자연에게 행해야 할 미덕의 하나.
고전적인 건물에서는 연출되기 힘든 온전한 반사가 전면 유리창 건물에서는 쉽게 이루어진다. 건물은 그저 반사만 해주면 된다. 사람이 자연에게 행해야 할 미덕의 하나. ⓒ 박태신
제 이메일 주소에는 'cloud' 그러니까 구름이 들어 있습니다. 저는 구름을 좋아합니다. 구름의 자유로움과 넉넉함, 정체하지도 않고 지나치게 빨리 변하지도 않는 느림 때문이지요.

그렇게 흐르면서 구름은 나그네 마냥 건물 창에 오래오래 머물곤 하면서 그 고운 자태를 남깁니다. 전면이 유리창으로 된 빌딩은 이럴 때 아주 커다란 캔버스가 되어 줍니다.

밖에서는 실내가 보이지 않고 실내에서는 밖이 보이게끔 되어 있는 반사유리의 특성 덕분이지요. 덕분에 건물 안의 사람들은 걸러진 빛, 코팅 색깔 때문에 덧칠해진 빛으로 구름을 바라볼 수밖에 없습니다.

구름은 이런 배척 구조를 잘도 활용하면서 그 유리 위에 안착합니다. 그리고 유람선처럼 천천히 미끄러져 갑니다. 반사유리창 건물들이 즐비하게 있다면 그때 구름은 징검다리 건너듯 하기도 합니다.

새하얀 구름은 비행기에서, 산 정상과 수평선 너머 태양과 달까지 삼킵니다. 그러나 율동적으로 포개지는지라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습니다.

바삐 움직이다 보면 이런 멋진 장면들을 곧잘 놓치기 쉬운데, 잠깐 발걸음을 멈추면 우리 위에 너무도 멋진 벽화가 세워져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건물 위에 비친 구름의 모습은 자신을 보아달라는 하늘의 울림이기도 합니다. 일을 하면서 하늘을 바라보는 것은 요원하기까지 합니다. 오래 전엔 건물 옥상에 올라가 구름을 해찰거리곤 했는데 요즘은 큰 결심하지 않고는 힘듭니다. 바쁘려 하고 마음의 여유를 지니지 않으려는(?) 관성 때문이지요.

구름은 흩어짐과 뭉쳐짐이 자유분방하다. 그것도 느린 시간에. 서로에게 상처주는 일이란 없다. 우리 마음의 실타래도 이렇기만 하다면 아픔의 흔적이란 없을 텐데.
구름은 흩어짐과 뭉쳐짐이 자유분방하다. 그것도 느린 시간에. 서로에게 상처주는 일이란 없다. 우리 마음의 실타래도 이렇기만 하다면 아픔의 흔적이란 없을 텐데. ⓒ 박태신
코엑스와 무역센터 건물 주변은 빌딩 숲이면서도 한가운데 뻥 뚫려 넓은 하늘을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건 빈 공간이 많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 중 무역센터는 하늘의 영상을 중계하는 안테나 같은 역할을 합니다.

영화 <콘택트>는 외계에서 날아오는 전파를 통해 외계인의 메시지를 받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그 메시지는 자신의 세계로 올 수 있는 우주선의 설계도였습니다. 하늘의 구름도 어쩌면 자연의 메시지를 담은 영상이 아니겠는지….

구름은 제 의지대로 만들어지거나 흘러가지 않습니다. 수분의 응집과 바람의 방향, 세기에 따라 모양과 흐름이 좌우되는, 전적으로 타자의 의지에 순응하는 변형 조형물입니다. 구름은 그래서 자연의 생리를 보여주는 표지판입니다.

솜털보다 새하얀 구름을 보면 마음 설렙니다. 마음이 깨끗해집니다. 미소가 절로 납니다.

구름은 무정형이기 때문에 구름을 바라보는 이들의 마음과 상념에 따라 연상되는 이미지는 다양합니다. 또 보는 이가 제멋대로 형상화할 수 있습니다. 영화 <아멜리에>의 주인공 아멜리에의 눈에도 구름은 친근한 동물 형상으로 변합니다.

<구름빵>이라는 그림책이 있습니다. 우연히 발견하고서 조카 사주려고 주문했습니다. 저도 더불어 읽어보았지요. 가지 위에 걸린 구름 조각을 가져다가 빵을 만들어 먹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고양이 형제 이야기입니다. 급히 출근하는 아빠에게도 갖다 주고요. 반입체기법이라는 방식으로 만든 그림이 얼마나 신기하던지…. 창은 고양이 형제가 비상하는 출구였습니다. 그렇게 창은 '거두절미하고' 시간과 장소를 넘나드는 통로입니다.

그 구름을 대형빌딩의 창에 기대어 봅니다. 구름은 지상의 어떤 사물과도 어울릴 줄 아는 넓은 마음을 지니고 있습니다. 지난 몇 달 간 예술의전당에서 있었던 '서양미술 400년' 전의 그림들에서처럼 구름은 배경을 멋지게 마감하는 소재로 빈번하게 사용되었습니다. 최첨단의 기교로 건축기술을 발달시킨 현대인들도 이내 구름과 하늘을 받아들일 마음으로 전체가 반사되는 건축물을 만들었습니다. 자연에 반하다가도 이내 자연의 모습을 그리워하고 받아들이려 하는 것이 사람인가 봅니다.

인공의 도시 서울 그 중에서도 화려함과 호화로움이 극치를 이루는 곳에서 구름을 만났습니다. 언제든 원하면 바라볼 수 있는 구름을 오늘 한 번 쳐다보세요 '원해야' 볼 수 있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하늘을 바라본 눈은 이내 다른 눈이 되어 세상을 바라볼 것입니다.

건물과 건물 사이에 있는 피라미드 유리 구조물.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의 그것과 비교할 바 못 되지만... 구름과 빌딩이 그 위에서 기묘한 몸짓을 한다. 안쪽의 지하도 풍경도 조합된다. 거기에 얼굴도 비춰본다면...
건물과 건물 사이에 있는 피라미드 유리 구조물.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의 그것과 비교할 바 못 되지만... 구름과 빌딩이 그 위에서 기묘한 몸짓을 한다. 안쪽의 지하도 풍경도 조합된다. 거기에 얼굴도 비춰본다면... ⓒ 박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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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어 번역가이자, 산문 쓰기를 즐기는 자칭 낭만주의자입니다. ‘오마이뉴스’에 여행, 책 소개, 전시 평 등의 글을 썼습니다. 『보따니스트』 등 다섯 권의 번역서가 있고, 다음 ‘브런치’ 작가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https://brunch.co.kr/@brunoclou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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