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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지난 주였다. <오마이뉴스>에 잔뜩 올라온 결혼식 에피소드를 열심히 읽던 아내가 문득 나에게 물었다.

"우리 결혼하면서 제일 기억에 남는 게 뭐라고 생각해?"
"내가 쓴 글 읽어 봐서 알잖아. 내 알레르기 때문에 결혼식 엉망으로 만든 거 아니겠어?"
"천만에, 내가 생각하기로는 신혼 여행 때 당신이 보여준 모습들이 훨씬 더 기억에 남는 걸."
"그게 뭔데?"

아내가 들려주는 신혼 여행지에서의 추억거리는 남편인 내가 듣고 있기에는 상당히 거북스러운 이야기들이었다. 왜냐면 신혼여행지에서 아내의 눈에 비친 남편의 모습들이 하나같이 소심하고 겁쟁이에다 창피하게만 그려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 남편 맞아?

당시 우리 부부의 신혼 여행지는 비행기를 타고 한참을 가야만 되는 동남아 국가 중 하나였다. 그때가 아마 내 생전 처음으로 비행기를 탔을 때였을 것이다. 그런데 아내의 말에 의하면 남편의 소심함이 처음으로 드러나기 시작한 때는 바로 신혼 여행지로 떠나는 비행기 안에서였다고 한다.

내가 기억하기로 그날 비행기를 탔을 때만 해도 난 어린애 같은 호기심과 설렘으로 무척 들뜬 기분이었다. 그래서 비행기가 이륙할 때부터 한참 동안은 신혼 여행이 주는 설렘과 첫 비행이라는 감격이 합쳐져서 내 마음은 한없이 울렁거리고 있었다. 난 들뜬 기분을 주체할 수 없어 옆자리에 얌전히 앉아 있는 새색시를 향해 온갖 우스개소리를 다해가며 수다를 떨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갑자기 비행기가 '흐르릉'하면서 흔들리기 시작했다. 순간 아찔한 기분이 들었다. 얼른 손을 뻗쳐 안전벨트를 확인해 보았다. 그리고는 문득 내 자신이 지금 까마득한 창공 한가운데 앉아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마음이 편치 않았다. 어느 순간 어떻게 될지 모르는 난감한 상황 앞에 무방비로 놓여져 있는 느낌이었다.

다시 한번 비행기가 '흐르릉'거렸다. 곧이어 안내 방송이 나왔다. 기류가 어쩌고 저쩌고 해서 비행기가 조금 흔들리는 것이니 안심하라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내 몸과 마음은 잔뜩 굳어져 있었다. 정신없이 떠들던 내가 한순간 조용해지자 아내는 다소 의아해 하는 것 같더니 이내 눈치를 챘는지 다소 걱정스런 눈빛을 보냈다. 아내에게 괜찮다는 의미로 조금 웃어 보이려고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할 수 없이 두 눈을 감고 억지로 잠을 청했다. 제발 잠에서 깨어났을 때는 비행기 바퀴가 활주로에 닿아 있기를 고대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잠을 청할수록 정신은 점점 말짱해져만 갔다. 그리고는 자꾸 내 몸이 높다란 허공에 둥둥 떠 있는 장면만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 순간은 오직 이렇게 과장된 공포에 휩싸여 내 옆에 이제 막 내 아내가 된 여인이 있다는 것조차 잊어 버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러다 문득 누군가 내 손을 잡는 듯한 감촉이 있어 슬며시 눈을 떠 보니 아내가 내 손을 잡고 있었다. 분명 나를 안심시키려는 의도였다. 조금은 쑥스러웠지만 그래도 고마웠다.

아내가 그런다. 자신도 그때 그렇게 비행기가 흔들릴 때 다소 긴장되어 속으로는 은근히 남편이 자신의 손이라도 잡아 주면서 안심 시켜 주길 바랐는데 그러기는커녕 내 얼굴을 보니 자기보다 더 긴장된 표정으로 애써 그 상황을 잊어 보려는 듯 잠을 청하는 모습이 한편으로는 야속하기도 했다나 어쨌다나.

남편의 자존심을 구겨버린 바나나보트

우리가 선택한 신혼 여행지의 바닷가는 아주 그만이었다. 평소 가슴 깊이 정도의 물에만 들어가도 공포를 느끼는 나에게 그곳 바다는 한참을 걸어 들어가도 허리 깊이도 오지 않을 정도로 낮았기 때문이다.

바닷가 지방에 살면서도 이상하게 물과는 인연이 없었던 나는 이미 수차례 익사 직전까지 갔던 경험이 있었던 터라 그곳 신혼 여행지에 있는, 겨우 무릎까지 오는 정도의 바다에서도 조심에 조심을 해야만 했다.

그런데 아내는 이게 다소 불만이었던 모양이다. 자기는 좀더 근사한 추억을 남기고 싶은데 남편이라는 사람은 겨우 무릎 높이의 바닷물에서 어린애처럼 첨벙대고만 있으니 재미가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런데 그런 아내의 눈에 바나나보트를 타고 있는 신혼 여행객들이 보였던 모양이다. 내가 얼핏 보니 서너 쌍이 한 팀이 되어 바나나보트를 타고 있었다. 바나나 보트는 저 멀리 바다 한가운데 쪽으로 나갔다가 커다란 반원을 그리며 다시금 돌아오는데 거의 다 와서는 일부러 급하게 커브를 돌아 바나나 보트에 탔던 신혼 부부들을 재미삼아 모두 바다에 빠뜨리고 있었다.

나는 애초 바나나 보트가 그렇게 멀리까지 나가는 모습에 질겁을 하여 아내가 그걸 타보자는 제안을 단 한 마디로 거절했으나 아내의 고집도 만만치 않아 결국 울며겨자먹기로 수락하고 말았다.

그런데 나와 아내는 공교롭게도 다른 신혼부부와 팀을 이루지 못하고 단 둘이서만 바나나 보트를 타게 되었다. 명색이 남편이라고 앞자리에 올라탄 나는 크게 한 번 호홉을 가다듬고 손잡이를 두 손으로 꼭 잡고 앉았다.

드디어 바나나 보트가 출발했다. 동력선에 이끌려 얼마 가지도 않았는데 벌써 바닷물은 짙은 파란색으로 변하다 못해 아주 짙푸른 검은 색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그 색깔만 봐도 온몸이 굳어 오는 듯싶었다. 얼마나 깊길래 이렇듯이 시퍼렇다 못해 까맣게 보일까, 하는 생각을 하는 순간 보트는 완만하게 커브를 그리는가 싶더니 이내 내 몸이 바닷물 속으로 냅다 내던져지는 느낌을 받았다.

다른 신혼 부부들은 여럿이 함께 타니 그 무게로 인해 커브를 돌 때도 여간해서는 보트가 뒤집히지 않는데 나와 아내는 단 둘이 타다 보니 그 가벼운 무게 때문에 커브를 도는 순간 보트가 뒤집혀 버린 것이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새파란 바다 한복판에 내 몸이 둥둥 떠 있었다. 바나나 보트를 끌던 동력선은 멈추어 서서 밧줄을 당겨 바나나 보트를 끌어다가 내 쪽으로 보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런데 가벼운 파도에도 바나나 보트는 이리저리 흔들거리며 좀처럼 이쪽으로 다가오지 못하고 있었다.

옆에 있는 아내는 처녀 시절 윈드 서핑을 해 본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침착한 표정으로 손을 저어가며 바나나 보트로 나아가는데 나는 손 하나 까딱할 수가 없었다. 마치 조그만 손짓이라도 하는 날이면 그냥 그대로 바닷밑으로 가라 앉기라도 하는 듯이 꼼짝 못하고 구명 조끼에 의지해 바닷물에 그냥 둥둥 떠 있기만 했다. 내겐 시퍼런 바닷물 한복판에 이런 꼴로 놓여 있는 자체가 이미 거대한 공포로 다가왔다.

그리고 그 공포의 한가운데서 나는 어린 시절 물놀이를 하다가 익사 직전까지 갔던 여러 번의 경험이 생생하게 눈앞에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러자 내 공포는 순식간에 거대한 산처럼 커져 버렸다.

빨리 바나나 보트 쪽으로 가야 된다는 생각은 간절했지만 몸은 움직일 수 없었다. 그러는 사이 아내가 어느 순간 바나나 보트를 타고 내 앞에 와 있었다. 간신히 아내의 손을 잡고 바나나 보트에 올랐다.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 당시 아내가 괜찮냐고 물었다는데 난 기억에도 없다.

하여간 그렇게 겨우 바나나 보트에 올라타고 난 뒤, 바나나 보트를 끄는 동력선을 향해 천천히 가라고 손짓을 했지만 이 친구들은 내 손짓을 반대로 해석했는지 금방 속력을 높여 달리기 시작했다. 조금 전보다 훨씬 더 빠른 속력을 냈다.

귓가에 바람소리가 윙윙거리며 났다. 바닷물이 어지럽게 내 다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눈을 꾹 감았다. 파란 바닷물이 보기 싫었다. 그러다 몸이 뒤뚱거리는 느낌이 있어 눈을 뜨니 다시금 바나나 보트가 커브를 돌고 있었다. 바나나 보트의 손잡이를 두 손으로 더욱 꽉 쥐었다. 손바닥에서 땀이 나는 듯했다. 그 순간 오랫동안 잊고 있던 하느님을 찾은 것도 같다.

그러나 역시 이번에도 커브를 도는 속력을 못이기고 바나나 보트는 뒤집혀졌다. 나와 아내는 다시 한번 바닷물에 처박히고 말았다. 이번에는 그 굉장한 속력 때문이었는지 구명조끼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내 몸이 바닷물 속으로 아주 깊이 빨려들어가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바닷물 속에 처박혔던 머리를 드는 순간 아내가 내 얼굴을 보았던 모양이다. 남편 얼굴이 아주 백지장보다도 더 하얗게 보였다고 한다. 거기다 턱까지 덜덜 떨며 무어라고 계속 중얼거리고 있는 듯했는데 그 목소리를 정확히 듣지는 못했지만 대충 입 모양을 보니 "살려줘요"라고 외치는 것 같았다고 그랬다.

그러면서 이번에는 두 손을 바삐 움직여 필사적으로 바나나 보트를 찾아가더라는 것이다. 제 정신이 아닌 듯 팔 다리를 마구 놀리며 바나나 보트 쪽으로 가는 모습을 보고 아내가 진정하라고 몇 차례 불렀지만 대답도 않고 가더라고 했다.

그리고 아내와 내가 거의 비슷한 시간에 바나나 보트까지 도달했다. 그런데 이번에도 바로 옆에 있는 아내가 먼저 올라타도록 돕기보다는 내가 먼저 훌쩍 올라타서는 아내가 뒤따라 타는 것을 돕지도 않고 그저 안도의 한숨을 쉬기에 바쁜 모습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얼굴이 사색이 되어 바나나 보트에 간신히 올라타는 모습을 보았는지 동력선에서 바나나 보트를 끌던 사람들은 더 이상 속력을 내지 않고 아주 느린 속도로 우리를 해안가로 데려다 주었다. 바나나 보트에서 내려 해안가 모래사장 쪽으로 걸어 오는데 뒤따라 오던 아내가 급히 나를 불러 세운다.

왜 그러느냐 했더니 내 엉덩이 쪽을 가리킨다. 뒤돌아보니 엉덩이쪽에서 수영복이 안쪽으로 말려 들어가서 궁둥이 살이 훤히 비치고 있다. 바닷물에 처박힐 때 엉덩이 쪽에서 안으로 감겨들어간 모양이다. 그런데 그때는 창피함도 모르고 그저 살았다는 안도감만이 머릿속에 꽉 차 있었다. 그런 남편을 보고 아내가 어떤 생각을 했을까? 말하지 않아도 훤히 알만하다.

아무튼 아내는 그때 남편이 물을 몹시 무서워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래도 위급한 상황에서는 아내를 조금이라도 먼저 생각하는 마음이 있어야 되는데 그런 모습을 전혀 보이지 않는 남편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아내의 말을 다 듣고 보니 내게 있어 신혼 여행은 꿀맛같은 시간이 아니라 내 치부만 다 보여주었던 시간들이 아니었나 싶다. 새색시에게 없는 용기라도 내어서 보여 주어야 할 새신랑이 오히려 절대 보여주어서는 안될 나약하고 이기적인 모습만 보여줬다는 것에 다시 한번 얼굴이 화끈거린다.

그러나 신혼 초부터 이렇게 화끈하고 솔직하게 남편의 약점을 다 보여주다보니 앞으로 살면서 더 이상 감출 것도 움츠려들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이제부터는 나의 조그만 용기가 아내에게는 아주 큰 감격으로 받아들여질 것 같다는 약삭빠른 희망을 가져보기도 한다.

덧붙이는 글 | [결혼 에피소드] 응모글 2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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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만 들어도 가슴이 벌렁거리는 '기자'라는 낱말에 오래전부터 유혹을 느꼈었지요. 그렇지만 그 자질과 능력면에서 기자의 일을 수행할 수 있을까 하는 자신에 대한 의구심으로 많은 시간을 망설였답니다. 그러나 그런 고민끝에 내린 결정은 일단은 사회적 목소리를 들으면서 거기에 대해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내생각도 이야기 하는 게 그나마 건전한 사회를 만들어 가는 데 필요치 않을까, 하는 판단이었습니다. 그저 글이란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진솔하고 책임감있게 표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 있는 글쓰기 분야가 무엇인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일상의 흔적을 남기고자 자주 써온 일기를 생각할 때 그저 간단한 수필정도가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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