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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한성 서린동 우포도청.
영의정 김병학을 만나고 온 우포장 신명순이 종사관 이덕기와 부장 조필두를 불러 놓고 곰곰 생각에 잠겼다.

"지난 달 평양 사주전 건에 관해 평안도 관찰사로부터는 이렇다할만한 속 시원한 장계가 오르지 않고 있소이다. 대원위 대감께오선 그 일에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계신고로 근심이 크시오. 공이 특별히 수하를 부려 내막을 좀 캐 와야 하겠소. 내 좌포장을 제치고 특별히 우포장을 부른 것은 그만큼 우포장에 대한 신뢰가 깊다는 뜻임을 잘 알겠지요?"

영의정 김병학이 우포도청 대장 신명순에게 이른 말이었다.

"이르다 뿐이겠습니까. 오늘 날 소장이 이 자리에 있는 것도 다 영상대감의 보살핌이 아니겠습니까. 대감을 향한 소장의 신심이 항시 여일하옴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좋습니다. 좋아요. 한 가지 명심할 것은 혹 그 사주전의 무리가 도당의 무리이라면 우선적으로 도당의 규모와 성향을 내게 고하시오. 대원위 대감께오선 그 무리를 위험하게 보고 있는 것 같습디다. 규모가 밝혀지면 좌우포청 뿐 아니라 군영에서 토포군을 내어 처결하라는 명도 있으셨소. 각별한 사안이니 우선 내게 보고토록 하시오. 알겠소이까?"

"예. 명심하겠사옵니다. 소장이 내막을 캘 것인즉 염려를 놓으소서."


지난 50여 년간 포도대장이란 자리는 임금이나 백성을 위한 자리가 아니었다. 세도정치의 틀을 공고히 하고 권문세가의 이권을 수호하기 위한 사병이나 진배가 없었다. 그러나 대원군 집권 후 병조와 훈련대장, 어영대장, 금위대장, 총융사, 좌우포도대장 등이 모두 대원군의 자파 사람으로 교체됨으로써 이제까지 풍양 조씨나 안동 김씨의 기반이 흔들렸던 것이다.

세상이 확고히 대원군의 수중에 있음을 신명순도 모르지 않았다. 이경하(李景夏) 같은 사람은 대원군 집권 초 총융사로 발탁이 된 이래 작년 병인박해 때는 훈련대장 겸 좌포도대장이 되어 천주교도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하였다.

낙동의 자기 집에서 죄인들을 심문하였다하여 '낙동염라'라는 별명까지 얻어가며 날뛰었던 고로 프랑스군이 침공한 병인양요 때는 순무사가 되어 도성방비의 책임을 지고 출진하지 않았던가.

대원군은 그런 그를 "이경하는 다른 장점은 없고 오로지 사람을 잘 살해하기 때문에 기용한 것이다"라고 공공연히 얘기하면서도 총애를 아끼지 않았다.

처음엔 신명순도 대원군의 계파에서 확고한 신임을 얻어 보려 애도 써봤다. 그러나 굳이 이경하뿐 아니라 다른 무장들이 굳건히 포진한 상태에서 자신의 출세를 위해서는 대원군 한 쪽에만 매달리는 것은 불안한 일이었다.

비록 대원군의 위세에 눌려 예전의 세력만큼은 아니더라도 여전히 정계의 요직의 태반을 꿰차고 있는 안동 김문으로 눈을 돌렸다. 그들 역시 한 사람의 무장도 아쉬워하는 입장이었다.

'줄을 잘 서야 돼, 줄을. 자고로 인생은 줄인 것을.'

신명순이 오랜 관직생활에서 얻은 결론이었다. 개인의 능력이나 공은 별개였다. 필요한 때 필요한 끈이 되어줄 수 있어야 했다. 윗사람에게든 아랫사람에게든.
'사소한 일로 알았는데 평안도 사주전 건에 대해 김병학이나 대원군이나 왜 이리 관심을 갖는 것일까?'

사실 뭔가 낌새가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지난 달 평안도 마두산 사건 이후 평안도 내 사주전 유통이 반가량 줄었다. 마두산 사건의 도당이 전체 유통량의 반 이상을 쥐고 있는 거대 조직이었을 수도 있고, 워낙 시끄러운 사건이어서 다른 패들까지 움츠러든 결과일 수도 있었다.

만약 동전의 주조 상태를 직접 볼 수 있다면 동일 패거리의 것인지 분별할 수 있을 테지만 지금은 그저 막연한 추측만을 해볼 뿐이었다. 사실 사주 죄인으로 처형되는 자는 한 달에 열이 넘는 실정이어서 평안도 사주전 건이 유통의 규모가 컸다는 것 외에는 그리 주목받을 일은 아니었다. 아무래도 윗선에는 더 관심을 갖는 것은 평안도 사주전 패거리의 행동이었다.

잡히자 자결해 버리는 그 독함이나 소수의 인원이 다수의 관군을 그토록 무참히 유린하고 유유히 사라진 후 종적조차 찾지 못하는 점 등이 예사 사주전패는 아닐 것이라는 추측. 게다가 반역의 땅인 평안도에서 벌어진 사건이라 것 또한 윗선의 신경을 자극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이런 때 한 번 두각을 나타내야 한다. 기회야.'

그래서 명목상 책임자로 종사관 이덕기와 더불어 우포청 내에서 수사 능력과 사람 후리는 수완으론 가히 최고를 다투는 부장 조필두를 평안도로 파견하기로 한 것이다. 더구나 부장 조필두는 며칠 전부터 긴히 기찰할 내용이 있다며 평안도에 가기를 청하지 않았던가.

이런 생각을 하는데 종사관 이덕기와 부장 조필두가 왔음을 알렸다.

그들을 방으로 들인 우포도대장이 입을 열었다.

"한성 판윤으로부터 송 여각네 도사공 납치 사건에 대한 문의가 여러 차례 왔었네. 분명 조 부장 자네가 기찰을 나간 그날이었고, 그 날 잡아왔던 투전 패거리 중에 끼어 있었다 하는데…."

"누차 말씀드리지 않았사옵니까. 포장 나으리. 그 자는 현장에서 놓쳐 제대로 본 바가 없었습니다. 아마 돈을 잃은 투전 패거리에 잡혀 고초를 겪고는 엄한 포도청을 끌고 넘어가는 것입니다요."

조필두가 강경하게 부인했다.
도사공으로부터는 어렵게 자백을 받았는데 내려 준 위치와 평소 송 여각과의 유대관계가 있는 광산업자 겸 물주라는 제보를 빼고는 쓸 만한 것이 없었다. 그러나 자백 내용을 종합해 볼 때 '평안도 서방님'이라는 그 자가 매우 구린 일에 몸을 담은 자라는 짐작은 들었다.

이틀을 자신의 사가에 가둬놓고 물고를 낸 후에 눈을 가려 수구문 근처에 내다 버렸는데, 아니나 다를까 여각 주인 송인석의 입김으로 관변 여기저기서 문의가 빗발쳤었다. 가히 송 여각의 위세를 깨닫게 되는 계기였다.

심지어 도사공으로 하여금 좌, 우포청 포교들의 목소리를 확인토록 해 달라는 협박 비슷한 요청을 포도청 고유의 권하는 침해하는 일이라며 길길이 뜀으로써 겨우 입막음하였다.

"여하튼 조 부장이 원한 바이기도 하니 겸사겸사 자네가 기찰하고자 했던 바도 수행하면서 이 일에 만전을 기하게."

"예,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좌포청에서 평안도의 광산 몇 곳이 의심스럽다하여 기찰 포졸 둘을 보낸 바가 있는데 석 달이 넘도록 돌아오지 않고 있네. 운산의 모처에서 연락이 끊긴 것이 마지막이라 하니 기왕 가는 김에 어찌된 일인지 탐문이나 하여 오도록 하고."

"예. 헌데 그리하다 보면 이번 길은 시일이 좀 걸리겠습니다요?"

부장 조필두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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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서.화에 능하고 길떠남에 두려움이 없는 생활인. 자동차 지구 여행의 꿈을 안고 산다. 2006년 자신의 사륜구동으로 중국구간 14000Km를 답사한 바 있다. 저서 <네 바퀴로 가는 실크로드>(랜덤하우스,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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