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4일 오후 5시 무렵, 부산의 한 정신병원. D대학 배모 교수가 국가인권위 조사관과 함께 사전예고 없이 방문해 그곳에 수용중인 J씨(19·여)를 면담했다.
올해 대학에 입학한 J씨는 한 달 전에 이 병원에 입원했다. 당시 고3 학생이던 그는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사장과 성관계를 맺었다. 이후 사장은 그에게 결혼하자고 했고 그도 마음이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J씨의 부모는 단호하게 반대했다. 무엇보다 사장이 이혼한다고는 했지만 유부남이라는 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하지만 J씨는 부모 몰래 사장을 만났다.
결국 J씨의 부모는 딸을 사장에게서 떼어 놓기 위해 정신병원에 입원시켰다. 국가인권위 조사관과 배모 교수가 방문한 날, 병원 원장은 "젊은 학생이 그것도 유부남과 성관계를 갖고, 부모가 말리는데도 결혼하겠다고 만나는 게 제 정신이냐!"고 답했다. 듣기에 따라 정신질환의 기준이 사회통념에 반하는지의 여부인가 하는 생각이 들 법하다.
전문가 의견 엇갈린 정신질환 판단
국가인권위가 벌인 조사의 초점은 과연 J씨가 정신병원에 수용될 정도의 정신질환 상태였느냐는 점. 그러나 J씨를 진찰한 배모 교수의 의견은 "약간의 우울증은 있지만, 입원할 정도는 아니다"는 것. 이렇게 정신질환에 대한 전문가의 판단은 서로 달랐다. 그러나 이 사건은 J씨가 퇴원하는 바람에 '부당한 입원 가능성'만 확인한 채 종결됐다.
우리나라의 정신과시설(정신의료기관 및 정신요양시설)에는 6만여 명이 입원(소)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정신과시설의 인권 문제는 아직 사회적으로 공론화되지 못한 측면이 강해,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할 인권 사각지대로 인식되고 있다.
2004년 10월 현재 국가인권위에 접수된, 정신과시설 관련 진정 사건은 총 86건이다. 총 진정 사건과 비교해 보면 무척 낮은 비중을 차지한다. 그러나 매년 80~100% 이상 증가하고 있다.
국가인권위 진정 사건을 내용별로 보면, 절반에 가까운 49.4%가 강제 수용에 대한 내용이고, 19.8%가 시설과 치료 과정, 18.8%가 직원이나 동료에 의한 폭행 등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국가인권위가 권고 등의 조치를 가장 많이 내린 내용은 입·퇴원 과정의 강제 수용.
지난해 4월, 국가인권위는 진정이 접수된 부산에 있는 A병원을 조사했다. 국가인권위는 병원측에서 제출한, 2003년부터 2004년 4월까지의 입·퇴원 환자 명단 가운데 퇴원한 지 10일 이내에 재입원한 환자들을 임의로 선정해 조사를 벌였다. 이 과정에서 병원측이 환자들의 입·퇴원 서류를 허위로 꾸민 사실을 확인했다.
환자 한모(44·여)씨는 병원에서 퇴원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병원측은 보호자에 의해 퇴원한 것처럼 신병 인수증을 허위로 작성했다. 병원측은 또한 퇴원 다음날 보호자의 동의 없이 입원동의서 및 입원 서약서를 허위로 작성하기도 했다. 일부 환자들의 입·퇴원 서류는 아예 없었다.
또 다른 환자인 강모(38·남)씨의 아버지는 "아들은 입원한 후 퇴원한 사실이 없으며, 최초 입원할 당시 입원 서류에 서명한 이후에는 서류에 서명한 사실이 한 번도 없다"고 진술했다. 특히 병원측은 환자 최모(54·남)씨가 입원할 때 "입원 후 3개월 이전에는 퇴원할 수 없다"는 내용의 각서를 보호자에게서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정신보건법 제24조에 의하면, 정신질환자의 입원 기간은 6개월 이내로 하고 있다. 그러나 정신의료기관의 장이 시·도지사에게 계속입원치료에 대한 심사를 청구할 수 있다. 다만 이때는 계속입원치료가 필요하다는 정신과 전문의의 진단과 보호의무자의 입원 동의서가 필요하다.
따라서 A병원은 정신보건심판위원회의 계속입원심사를 피하기 위해 이 같은 방법을 이용한 것이다. 즉 6개월이 되기 전에 환자가 퇴원한 것처럼 해 정신보건심판위원회의 심사 대상이 되지 않게 한 후, 며칠 사이에 재입원한 것으로 꾸몄다.
같은 재단의 병원간 환자 맞바꾸기
경남에 있는 B병원은 같은 재단에서 운영하는 부산의 C병원과 환자를 맞바꾸는 방식으로 환자를 관리했다. C병원은 부산의 한 정신병원에서 수행하는 만성정신분열증 관련 연구에 협조한다며 연구 대상자 30여 명을 B병원에서 받았다. C병원은 그에 상응하는 수의 환자를 B병원으로 이송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이들 병원이 환자에게 병원 이송에 대한 동의를 구하지 않고 사유도 알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더욱이 병원측은 연구 목적뿐만 아니라 병원 내의 병실 부족 등의 사유로 병원간 환자 교환이 이뤄졌다고 시인했다.
대구에 있는 D병원에서도 보호의무자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환자를 입·퇴원시킨 사례가 밝혀졌다. 국가인권위 조사 결과 2003년 6월, 자치단체장에 의해 입원한 환자 서모(71·남)씨는 그해 11월과 2004년 11월 두 차례에 걸쳐 계속입원심사 절차를 밟아 입원한 상태에 있었다. 그러나 2004년 6월부터는 계속입원심사청구 없이도 계속 입원 처리됐다.
정신과시설에서 이처럼 불법 입원이 이루어지는 이유는 환자를 책임지지 않으려는 가족의 태도 탓도 있지만, 입원 환자의 수가 곧 영리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정신과시설 환자는 기초생활수급자인 경우엔 의료보호가 적용되고, 비기초생활수급자는 의료보험이 적용된다.
이에 따라 정부에서는 의료보호 환자 한 명당 약 40만원, 의료보험 환자는 90만원 정도를 지급한다. 따라서 병원으로서는 수용 환자가 많을수록 병원 운영에 경제적인 도움이 된다.
생활시설미비, 처벌 규정 없어
진정 사안 가운데 두 번째로 많은 내용인 시설과 관련한 진정은 CCTV 설치·운용과 생활시설 운영에 관한 건이다. 대구의 D병원은 CCTV를 설치·운용하고 있어, 환자들은 어디를 가나 24시간 감시의 테두리에서 벗어날 수 없다. 특히 화장실 칸막이의 높이가 낮고, CCTV가 천장에 달려 있어 용변을 보는 환자들의 사생활이 전혀 보호되지 않았다. 아울러 설치된 CCTV의 경우 특정 부분을 자유로이 확대 또는 축소하고는 특정 부위를 정밀하게 촬영할 수 있으며, 촬영된 내용을 어떤 형태로든 편집이 가능한 상태였다.
이처럼 D병원 환자들의 인권이 시각지대에 놓여 있음에도, 병원측은 환자들의 진정권을 적극적으로 보장하지 않았다. 국가인권위 조사 결과 D병원엔 병동별로 진정함을 설치하고 있지만, 진정함의 내용물을 관리하는 방법을 몰라 진정서를 국가인권위로 송부하지 않고 직원 개인 파일에 스크랩해 둔 상태였다.
또한 인권침해에 관해 국가인권위 진정 방법 등을 알리는 안내서 등을 병원 내 비치하지 않았고, 용지와 필기도구 및 봉함용 봉투를 비치하지 않아 국가인권위원회법을 위반하기도 했다.
진정 접수에 따라 국가인권위가 조사를 벌인 E병원에는 별도의 식당이 없었다. 환자들은 휴게실에 놓인 여러 개의 탁자를 TV 시청 용도로 사용하거나 식탁으로 이용했다. 그밖의 환자들은 자신의 침상, 복도의 의자나 바닥, 탁구대 등에서 식사했다. 심지어 흡연실에서 식사하는 모습도 확인됐다.
이에 병원측은 "모든 병원의 입원 환자는 병상 침대에서 식사하고 있다"며 "더욱이 정신과 폐쇄병동이기 때문에 따로 식당을 둘 수 없다"고 답했다. 또한 환자들의 요구나 증상에 따라 휴게실이나 복도에서 식사를 허용하기도 하는데 이는 환자의 치료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여 자유롭게 둔다고 설명했다.
'정신보건법시행규칙'에 따르면, 입원실이 있는 정신의료기관은 "환자들의 생활에 불편이 없도록 식당·휴게실·욕실·화장실 등의 편의시설을 갖추어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그러나 E병원은 이 규칙에서 정한 시설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다.
E병원에서 발견된 정신병원의 생활시설 문제는 다수 정신의료기관의 실상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정신보건법시행규칙' 역시 이와 관련한 처벌 규정 등이 없어 시정 조치를 권고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정신과시설의 생활시설 문제는 아직 인권을 말할 단계에도 접어들지 못했다. 정신과시설의 인권 문제는 오래 전부터 있어 왔지만, 사회적인 문제로 인식된 지는 몇 해 되지 않는다. 이제 막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 인권 사각지대다. 그 관심이 높아질수록 정신과시설의 인권 역시 향상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발간하는 월간 <인권> 4월호에 실려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