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건부신고복지시설 생활자 인권확보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준비위원회’이하 시설공대위.
현재 22개 인권시민단체가 참여하고 있는 시설공대위는 정신질환자의 인권 문제에 대해 대응하고 있는 대표적인 기구다. 시설공대위의 성격과 활동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단체의 명칭을 자세히 뜯어 볼 필요가 있다.
먼저 ‘조건부신고복지시설’. 1997년 사회복지사업법이 개정돼 시설에 대한 허가제가 신고제로 바뀌면서 우리나라의 모든 사회복지시설은 신고시설과 미신고시설로 나뉘었다. 여기서 문제는 미신고시설이 압도적으로 많은 데다 일부 미신고시설의 경우 인권침해 실태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사실이다.
인권단체들이 미신고시설에 대한 정부의 무관심을 비판하자, 정부는 2002년 5월 ‘미신고시설 양성화정책’을 발표했다. 이것은 미신고시설 중에서 조건부로 등록한 시설에 한해 정부가 지원하고, 2005년 7월을 기점으로 일정한 기준을 통과한 시설들을 신고시설로 전환한다는 구상이었다.
다음으로 ‘생활자’. 법적으로 사회복지시설은 이용형태에 따라 대상자를 입소시켜 보호하는 생활시설과 외부에서 통원하는 사람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용시설로 구분되는데, 일반적으로 생활자는 외부와 차단된 생활시설에 집단으로 거주하는 사람을 말한다. 시설공대위는 바로 생활시설에서 살아가는 정신질환자, 장애인, 약물중독자들의 인권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만들어진 단체다.
마지막으로 ‘공동대책위원회 준비위원회’. 2003년 가을 인권단체들은 잇따른 사회복지시설의 인권침해 사건에 대한 대처방안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양지마을 사건과 에바다 사태 등 심각한 인권유린이 벌어지고 있었지만, 시설 문제를 전담할 만한 연대기구가 없었던 것이다. 이런 가운데 10월 인권활동가대회에서 몇몇 활동가들이 공동대책기구 결성을 제안했고, 한 달 뒤 대한정신보건가족협회, 인권운동사랑방, 인천여성의전화,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좋은집, 태화샘솟는집, CMHU 한국지역사회정신건강자원봉사단 등 7개 단체가 모였다.
시설공대위는 곧바로 ‘성실정양원’과 ‘은혜사랑의집’을 기습적으로 방문조사해 소문으로만 떠돌던 인권침해의 실상을 낱낱이 파헤치는 개가를 올렸다. 당시 시설공대위 조사단의 일원으로 참여했던 김정하씨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는 조사과정에서 시설관계자들과 부딪혔던 상황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국회의원이 몸싸움을 벌이면서 진입하는 상황에서도 원생들을 감금하고 폭행했습니다. 아무도 감시할 수 없는 그곳에서 생활자들은 날마다 강제노역, 강제투약, 감금, 폭행 등에 시달렸지만 정부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습니다. 뒤늦게라도 시설공대위가 고발하지 않았다면 그 시설에서는 지금까지 똑같은 일이 벌어졌을 겁니다.”
시설공대위는 결성된 지 2년이 넘었지만, 아직까지도 ‘준비위원회’ 꼬리표를 떼지 못하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한 달이 멀다 하고 터지는 시설의 인권침해 사건에 대응하는 일만으로도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기 때문이다. 제보를 확인하고 수시로 현장조사를 나가면서도 시설공대위는 정부관계자 면담과 사이버시위 등을 전개하고 내부토론회와 공개토론회를 수차례 개최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시설공대위 관계자들은 대체로 정부의 무책임한 정책을 가장 먼저 비판한다. 정부가 전국의 미신고시설에 대한 심층조사를 실시하지 않고 시설의 양성화에만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보건복지부는 줄곧 “미신고시설의 경우 상시적으로 조사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는데, 결국 법과 현실이 따로 노는 모순 속에서 시설생활자의 인권은 사각지대에 내몰리고 있는 셈이다.
시설공대위는 궁극적으로 정부 정책이 시설 중심에서 ‘탈시설화’로 전환해야 한다는 견해를 밝히고 있다. 생활자들이 폐쇄된 공간에 머무르는 한 수동적인 삶에서 영원히 벗어나기 힘들고 나아가 ‘시설병’의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실제로 선진국들은 1970년대 이후 잇따라 탈시설화 정책을 선언했고, 일본도 2003년 그 대열에 합류했다. 1995년부터 탈시설화의 일환으로 ‘그룹홈’Group Home, 생활자들이 소규모로 지역사회에 거주하는 공동생활가정 을 운영해 온 임성만 씨 인천 장봉혜림원 원장 는 “먼저 시설수용 자체가 반인권적이라는 점을 인정하고 출발해야 한다. 말로만 ‘탈시설’을 주장하고 생활자들이 지역사회에 자연스럽게 섞일 수 있는 선택 가능한 메뉴를 제공하지 않는다면, 진정한 자립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시설공대위가 생활자들의 인권 향상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펼치는 사이, ‘교남소망의집’에서는 우리 사회의 인권 수준을 상징적으로 끌어올리는 ‘교남장애인인권보장규정’을 제정했다. 시설 스스로 생활자들의 ‘자기결정권’생활자가 서비스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권리 을 명문화했다는 점에서, 이 규정은 향후에 중요한 모델이 될 듯하다.
시설공대위 정책단의 일원이며 ‘교남장애인인권보장규정’ 제정에 참여한 염형국 변호사는 “생활자의 인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려면 궁극적으로 시설생활자인권법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염 변호사의 의견처럼 시설공대위는 향후 국내외 법률과 정책을 적극적으로 검토할 예정이다. 계획대로라면 2005년 하반기에는 ‘준비위원회’ 꼬리표가 사라질 듯하다.
<시설공대위> 주요활동일지(작게 표로 넣어주세요)
2003년 11월
시설공대위 결성,
<성실정양원> 및 <은혜사랑의집> 기습 방문조사
2003년 12월
‘미신고복지시설 양성화지침 무엇이 문제인가’
토론회 개최
2004년 3월
<성실정양원> 및 <은혜사랑의집>
인권침해 행위 관련 검찰 고발
2004년 6월
보건복지부장관 면담 요구 사이버 시위
2004년 7월
‘시설내 인권침해 역사와 문제들’
1차 내부 세미나 개최
2004년 8월
미국 정신보건법제의 역사와 동향’
2차 내부 세미나 개최
2004년 9월
보건복지부장관 면담
2004년 12월
‘시설생활자 인권확보를 위한 기존법률의 개정방향과 대안’ 공개 토론회 개최
2005년 3월
<바울선교원> 인권침해 진상조사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국가인권위원회가 발간하는 월간 <인권> 4월호에 실려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