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과 ‘생존’은 한국인의 ‘전투적’ 생활양식의 키워드가 됐다.” 이렇게 써도 틀리지 않을 이 말은 오늘날 한국인의 생활상을 고스란히 드러내준다.
그런데 이 “요람에서 무덤까지 일관되는 ‘힘겨루기’의 뿌리”를 추적해 올라가면 19세기 말 20세기 초 제국주의 열강 사이에 낀 한국 민족주의와 조응하게 되는데, 이 한국 민족주의의 뿌리가 다름 아닌 서구의 사회진화론이다.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다는 적자생존의 논리가 바로 한국 민족주의의 기원이다. 이것이 박노자 교수가 새 책 <우승열패의 신화>(한겨레신문사)에서 드러내는 도발적인 문제의식이다.
여기서 ‘도발적 문제의식’이라 함은 무슨 일이든 일거에 제압하는 마력을 지녔을 뿐만 아니라 좌우간이든, 보혁간이든 편가름조차 무의미하게 만드는 우리 사회의 가장 예민한 담론인 ‘민족주의’ 문제를 건드린다는 점에서도 그렇거니와 많은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없는 “한국 민족주의의 뿌리가 서양에 있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노자 교수는 성공회대 한홍구 교수의 말처럼 “약육강식, 정글의 법칙을 설파하는 사회진화론에 대한 세밀한 분석을 통해 이 말도 안 돼 보이는 주장을 차근차근 입증”해간다.
노르웨이 오슬로 국립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우승열패의 신화>의 지은이 박노자 교수를 이메일로 만났다.
한국은 지금 ‘승자 독식’의 사회
“장르가 ‘대중학술서’라서 ‘학술성’이 ‘대중성’을 잠식하지 않았나 걱정입니다. 논문 언어란 게 어디까지나 동료 학자를 독자로 상정하다 보니 아무래도 대중들에겐 낯설 수밖에 없습니다. 이게 근대 학문의 큰 문제점이지요. 퇴계, 다산의 학문이라면 그 당시 교양인들이 얼마든지 접근할 수 있는 ‘문장’이었는데, 근대 학문에는 ‘문장’이 없고, 각 분야의 전문 언어밖에 안 남았지요. 제 책 역시 그 한계를 못 벗어난 것 같습니다.”
박노자 교수가 들려주는 ‘책을 낸 소감’이다.
학술논문을 보완하고 수정하여 묶은 이 책에서 박 교수는 지금의 한국사회를 ‘승자 독식 사회’ ‘승자를 위한, 승자에 의한 사회’라고 규정했다.
“상식적인 이야기인데, 우리 사회는 위로부터의 압축적 근대화를 거쳐 온 준주변부의 ‘극단적’ 자본주의 사회입니다. 근대화의 과정이 권위주의적이며 압축적이었던 만큼, 그리고 IMF상태가 노출시킨 중심부에 대한 종속성이 강한 만큼 시민사회의 연대에 의한 진정한 ‘공공의 영역’이 형성되지 못한 게 큰 문제입니다.
공공의 공정한 룰이 작동되지 않는 만큼 개인들이 패거리로 뭉쳐서 생존-나아가서 타인들에 대한 패권-을 구하는 것이 일반화됐어요. 국가/사회적 복지가 없다는 한국적 자본주의의 ‘극단성’을 보여주는 것이죠.
수술비가 없을 때 모든 가족, 친구들을 동원해 갹출하는 게 우리 실정인데, 그런 상황에서 가족주의, 패거리주의를 어떻게 일소할 수 있습니까? 그리고 패거리 사회에서 패거리들끼리 싸우는 걸, 승자가 독식하는 걸 말릴 수도 없지요. 그러기에 학벌타파와 공정한 룰의 성립, 복지국가의 건설이 우리 진보세력의 급선무일 수밖에 없지요.”
패거리주의는 대미종속적 군사독재의 산물
그런데 그런 ‘승자 독식 사회’ ‘승자를 위한, 승자에 의한 사회’의 시발점이 개화기 때 중국과 일본을 통해 들어온 ‘사회진화론’이라고 박 교수는 주장했다.
“한국사회가 ‘전투적 패거리주의’ 쪽으로 간 것은 식민지와 식민관료에 의한 대미종속적 군사독재의 산물이지요. 그런데 처음부터 친외세 부르주아세력들의 자기 합리화 도구로 미국 내지 일본, 또는 량치차오 등의 중국 개화파로부터 따온 사회진화론이 기능한 게 사실이지요.”
사회진화론 하면 흔히 다윈의 ‘진화론’에 빗대 사회도 적자생존의 논리에 따라 진화(발전 또는 진보)한다 뭐 그런 식으로들 이해하는데, 사회진화론의 정확한 의미가 궁금했다.
“스펜서가 ‘적자생존’ 이야기를 꺼낸 것이 다윈주의가 형성되기 이전이고, 스펜서 등의 ‘사회진화론적’ 논리는 생물학적 다윈주의의 산물이라기보다는 그 시대가 낳은 독자적 사회학적 이론이지요. 스펜서의 주요 아이디어는 약자의 도태가 사회의 진화를 담보한다는 것이었는데(즉, 빅토리아 시대 영국이 복지국가 세울 필요 없다는 것이지요) 그 뒤 키드 등이 이 아이디어를 주로 인종간의 관계, 국가간의 관계에 적용시켜 국가/인종적 약자의 도태를 환영하려 했지요 (즉, 유럽 제국주의의 국제 살육을 ‘선’으로 보려 했지요).”
그렇다면 사회진화론은 매우 위험한 이론일 수 있다는 생각이 미쳤다. 그래서 물었다. 그 위험성은 무엇이냐고. 아울러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면 그것도 함께 얘기해달라고 했다.
“동물들도 동종의 약자를 도태시키는 것보다 도와주는 경우가 더 많은데, 우리가 동물계보다 더 가혹한, 약간이라도 약해보이는 약자를 깔아뭉개는 사회에서 살게 되면 뭐가 그리 좋습니까? 그런데 스펜서 논리의 ‘긍정적’이라 할지도 모를 측면은, 그 당시 영국 사회의 맥락에서 이 논리가 능력 없는 귀족들에게 직격탄을 날릴 수 있었다는 것이지요.”
개신 유림들이 들여온 사회진화론
사회진화론의 한국 이식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들이 개신 유림 계통의 주요 논객들이라며, 박 교수는 정치적 이유로 개화기 사회의 명논객 반열에 오르지 못한 윤치호와 유길준이 스펜서나 모세 등 영미 진화론 논객을 처음 읽었고, 이어 1900년대 신채호, 박은식, 장지연 등이 주로 일본/량치차오 계통의 ‘국가적 생존’ 위주의 사회진화론을 널리 보급시켰다고 했다.
특히 중국의 량치차오를 스승으로 떠받들며 량치차오 책 몇 권씩 번역, 보급도 하고, 거의 ‘새로운 공맹’으로 삼아 절대적으로 신뢰한 신채호, 박은식, 장지연 등 세 사람은 전통의식이 강하고 ‘국가’ 위주의 논리인 일본/량치차오의 영향을 받아 “국가/민족 생존을 위한 절대적 헌신"을 강조했다.
그런데 그거야 망해가는 반식민지에서 예상될 수도 있고, 이해될 수도 있는 이야기인데, 근대적 인권의식 훈련이 전혀 없는 그들이 ‘헌신’을 ‘우매한 민중’의 ‘계몽한 지도자’에 대한 복종으로, 그리고 ‘현모양처’가 될 여성의 남성위주 가족과 민족에 대한 절대적 봉사로 이해한 것이 문제라고 박 교수는 지적했다. 그들의 ‘생존’ 논리에는 ‘인권’은 ‘생존’의 하찮은 도구에 불과했다.
| | | 박노자는 누구인가 | | |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잘 아는 귀화 한국인 | | | | 토종 한국인보다 더 한국을 잘 알고 통열한 비판을 통해 ‘우리가 몰랐던 우리의 초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주는 박노자 교수는 러시아에서 귀화한 한국인이다.
애칭 ‘발로자’와 스승 ‘미하일 박’에서 성을 따 ‘박노자’로 이름을 지은 그의 본명은 ‘블라디미르 티호노프’이다.
1973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원자력연구소 설계자인 아버지와 미생물학 교수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어려서 영국적인 문화 속에서 살다 고교 시절 <춘향전>을 읽고 한국에 매료된다.
이후 그는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 한국사학과에 진학해 가야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1년 3개월간 고려대에 유학했던 그는 이듬해 바이올리니스트 백명정씨를 만나 연애하다 1995년 결혼했고, 1999년 한국인으로 귀화했다. 경희대에서 3년간 교수를 했고, 지금은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학에서 한국학을 가르치고 있다. 아들이 하나 있다.
<아웃사이더> 편집위원을 지내는 등 논객으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그가 지은 책으로는 <당신들의 대한민국> <좌우는 있어도 위아래는 없다> <나를 배반한 역사> <하얀 가면의 제국> 등이 있다. | | | | |
“예컨대, 좋은 학교 나와 남과 학력으로 경쟁해서 출세하겠다는 욕망은, 이미 개화파 엘리트들에게 강했지요. 그게 나중에 일제를 거쳐 현대 한국의 주된 ‘경쟁판’이 됐지요. 다만 개화기의 ‘좋은 학교’는 관립일본어학교, 사범학교, 법관양성소나 일본대학이었고, 일제 때 그게 경성제대와 연희, 보전으로 바뀌었고, 그뒤 경성제대와 보전, 연희학교의 후신 즉 SKY(서울대, 고대, 연대)로 된 것이지요.”
개화기부터 현재의 신자유주의에 이르기까지 ‘경쟁’의 양상을 이렇게 개괄하는 박 교수에게 페달을 밟아야 나아가는 자전거처럼 경쟁이 있어야 굴러가는 자본주의에서 벗어나 양식과 양심이 있는 명실상부한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 있겠느냐고 강한 회의감을 드러내봤다.
“자본주의 자체를 지금 벗어날 수 없다 해도, ‘극단적’ 자본주의 모델을 벗어나 복지사회로, 사민주의 사회로 가는 방법밖에 없는 것 같아요. 구체적으로 무상의료와 무상교육, 그리고 학벌타파를 위한 여러 정책과 청년실업자를 위한 국가적 ‘공공부문 일자리 창출’ 등이 관문이겠지요.”
약자를 조금 더 이해하는 민족주의 필요
그러면서 박 교수는 한국 민족주의에서 특히 강하게 나타나는 관과 자본 주도의 정치적 이용에 대해 비판했다.
“식민지와 한국전쟁 등 외세침략과 간섭으로 민중이 받은 정신적인 집단적 외상을, 집권자들이 이용하는 측면이 크지요. 물론 반일 감정 같으면 ‘위로부터의 조절’이 아니고 민중의 진정한 의사표현으로 봐야 할 듯합니다. 헌데, 월드컵 같은 관과 자본주도의 행사에 이렇게 자발성을 가장하여 대중을 교묘히 동원시킬 수 있었던 것은 그야말로 ‘바깥’에 대한-여태까지 열세에 있었다고 인식되는-‘우리’의 위치를 확립시키려는 대중적 욕망을 집권자들이 이용한 것이지요.”
아울러 박 교수는 “과거 외상을 진정으로 극복하려면 대미 종관계 청산부터 하고 이라크 파병과 같은 영원히 남을 굴종부터 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박 교수는 “21세기인 지금 우리가 견지해야 할 민족주의는 꼭 ‘민족주의'란 말을 붙일 필요가 있는지 모르겠다”면서 “우리의 과거를 기억하여 미제와 싸우는 이라크 독립군 등 약자를 조금 더 적극적으로 이해해주었으면 좋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일제 식민지 폭력엔 아무런 ‘선’도 없다
얘기가 나온 김에 요즘 우리 사회의 가장 뜨거운 문제로 부각된 독도와 일본 역사 교과서 문제에 대해서도 물었다. 아무래도 그는 객관적 위치에서 제3자적 시각을 견지하실 수 있을 것 같아서다.
“일본 우파가 식민지 때의 일본 군벌과 재벌을 위한 약탈적 ‘개발’을 마치 한국인을 위한 진정한 개발로 둔갑시켜 후세를 교육시키겠다 하면 큰일이지요.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일본 민초-개별 학교와 시민단체 등-들과의 교류를 활성화시켜 식민지적 폭력에 아무런 ‘선’도 있을 수 없었다는 걸 부단히 이해시켜주고, 일본 진보 사학자와 함께 폭력과 자본주의에 맞서는 진정한 교과서들을 공동으로 개발해야지요.
다만, 이러한 교과서에서는 일군 폭력도 비판받는 동시 다카키 마사오(박정희)와 같은 일군 계통의 군사반란범들이 저지른 반인륜적 범죄(월남 파병 등)도 같이 비판받아야 되고 일본 재벌의 야만적 모습은, 한국 재벌의 야만적 모습과 같이 서술돼야지요.”
반면 교과서 문제와 달리 독도 문제에 대해서는 일본의 양심적 시민세력들이 말하길 꺼려하는 것에 대해서 그 이유는 무엇이냐고 물어봤다.
“근대인들이 영토를 국민 국가의 ‘몸’으로 인식들 하기에 영토문제로 들어가면 말문이 많이 막히지요. 거기에다 일본에서 이 문제에 대해 ‘국민적 입장’을 취하지 않는다면 많은 개인적 손실을 볼 수도 있지요. 글쎄, 1905년의 독도의 시마네현 편입이 불법이자 한국 영토 침략의 시초이었다는 사실을 보다 적극적으로 이해시켜주는 법밖에 없지요.”
책 두 권을 준비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고 말하는 박 교수는 6월 중순경부터 한 달간 방학이라서 그때 서울에서 얼굴을 볼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배부른 나라에서 산다는 게 부끄러운 짓인데, 다만 여기에서 괴롭히는 사람이나 제도가 별로 없는 조건을 이용하여 모든 빈 시간을 글 쓰는 데에 바치면 그 부끄러움을 조금 덜어낼 수 있다”고 말하는 박노자 교수. 그는 이런 말을 덧붙이며 인터뷰를 끝냈다.
“저는 ‘민족주의 박멸론자’가 아닙니다. 국민국가가 존속되는 이상-즉, 세계 혁명이 승리하기 이전까지-민족이나 민족의식이란 어찌할 수 없이 계속 생산될 것인데 다만 시민, 노동자, 나아가서 인간으로서의 우리는 ‘민족’을 넘어 ‘남’과 연대하여 하나가 될 줄 알아야 한다는 말씀일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