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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절인 5월 1일 민주노총과 의료연대회의 등 시민사회단체는 '암부터 무상진료를'이란 캐치프라이즈로 서명운동을 시작했다. 한편, '암 무상진료'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논의가 고조되는 분위기에서 정부는 4월 28일 예정에도 없던 '암 등 고액중증 환자 진료비 부담 줄이는 데 건강보험재정 집중투입'을 발표, 논의와 관심확산의 진화에 힘쓰는 듯한 인상이다.

하지만 이러한 정부의 발표는 시민사회단체의 호된 비판을 불러일으켰다. 선택이 불가피한 선택진료비, 일반 병실이 없는 상태에서의 특실비 차액, 환자의 영양공급에 꼭 필요한 식대 등 비급여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주요 부분들을 제외한 급여 확대는 면피용일 뿐이라는 것이다.

한편, 한나라당의 고경화 의원은 5월 2일 <한겨레>에 "많은 고액진료비의 중증질환 환자가 있는데 암환자에게만 무상진료를 주장하는 것은 위험분산의 보험원리와 형평성에도 어긋난다"며 "건보흑자분이 고액·중증 질환에 고루 투입되어야 할 것"을 지적함으로써 암의 우선 무상진료에 반대의 뜻을 분명히 하며 복지부의 입장과 궤를 같이 했다.

'암 무상진료'의 참뜻 헤아려야

하지만 복지부와 고경화 의원은 원론적인 입장만 밝힐 것이 아니라 '암 무상진료'가 나오기까지의 배경과 속뜻을 헤아릴 수 있어야 한다. 시민사회단체에서도 "대만과 같은 중대상병제로 전체 중증질환에 대하여 보장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 일관된 입장이었다.

그렇기에 이러한 조건이 충족되지 않은 상황에서의 '암의 무상진료' 요구에 대하여 내부에서도 의견이 크게 대립했다. 하지만 지적될 수 있는 여러 가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수정된 새로운 결과를 만들어 낸 것은 우리 나라가 처해진 보건의료환경이 원칙론만 고수하기에는 위기로 치닫는 속도가 너무 빠르기 때문이었다.

건강세상네트워크의 김창보 국장은 "암 뿐만 아니라 모든 중증질환에 골고루 배분하자는 원칙은 당연하다. 하지만 이것도 조금씩, 저것도 조금씩 하자는 것은 하지 말자는 것과 같다. 그리고 '선 재정확보 후 급여확대'란 발상은 '선 급여확대 후 재정확보'로 바뀌어야 한다. 낮은 보장성 때문에 국민의 불신이 그대로인 상태에서 어떻게 급여확대재원 마련을 위한 보험료 인상에 동의할 수 있겠느냐"며 "국민적 공감대를 이루고 있는 '암부터 무상진료를' 먼저 실현하는 것이 급여확대의 열쇠"임을 강조했다.

전방위적으로 밀려오는 의료시장 개방

민간의료보험(생명보험)의 보험료 수입을 2005년에 6조8천억원으로 예상하는데, 이는 건강보험 연간 보험료수입 16조3천5백억원의 40%를 넘어서는 수준이다. 보장성이 높은 서구 유럽을 보면 2001년에 영국 3.3%, 독일 12.6%, 네덜란드 15.2%(OECD World Health Report, 2004년)이다. 이들 국가는 공공의료기관이 80% 내외이며, 민간의료보험의 무분별한 적용을 엄격하게 통제한다.

반면에 공보험의 와해가 심화되고 많은 계층이 의료보험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는 남미 국가들은 2001년에 칠레 56%, 아르헨티나 46.6%, 멕시코 55.7%, 브라질 58.4%(WHO Health Dater, 2004년)이다. 민간의료보험시장의 천국인 미국은 의료보험에 가입하지 못한 국민이 4천7백만이고, 국민의 의료비지출이 상상을 초월한다.

이뿐이 아니다. 열린우리당의 유필우 의원은 지금까지 규제해 왔던 의료광고를 전면 허용하는 '의료법 개정안'을 의원입법으로 준비 중이다. 의료광고는 불필요한 의료이용 유도 및 광고비용의 수가인상과 진료비상승 연결이 결국 국민에게 전가되기 때문에 미국만이 극히 제한적으로 허용하고 대부분의 국가에서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다. 요양기관에 대한 정보제공을 보험자에게 부여하며 의료에 관한 한 '광고'가 아닌 '정보'의 개념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또한, 손해보험법 개정으로 8월부터 민간의료보험도 정액지급에서 실손지급이 된다. 암에 걸렸을 경우 건강보험에서 지급하는 비용외 일체를 민간 암보험에서 보장해 줄 수 있는 것이다. 보험업계의 한 관계자는 S생명의 경우 8월 한달에만 30만명 이상이 실손형 암보험상품에 가입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처럼 급변하는 의료시장의 외부환경이 시민사회단체로 하여금 '하나의 목소리'를 내도록 한 것이란 분석이다.

의료연대회의와 민주노총 등 시민사회단체는 "민간의료보험 도입과 병의원의 영리법인 허용을 핵심으로 하는 '의료산업화'라는 오도된 정책으로 인한 의료의 양극화와 공보험의 붕괴를 우려할 만한 현상들이 사회보험의 특성을 외면한 채 경제논리만을 내세운 정부 부처에 의해 전방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진단이다. 암과 같은 중증 질환에 대하여 본인부담을 면제하고 있는 대만은 국민 대다수인 83%가 현 공보험에 만족하고 있으나, 민간의료보험을 규제없이 도입한 칠레에 대하여 최근 WHO는 보건의료시스템평가를 통해 전 세계 191개국 중 168위로 평가했다.

암 무상진료는 대만이냐, 칠레냐의 갈림길일 수도

민주노동당의 현애자 의원측은 "우리 나라 국민들이 평균 수명까지 살면서 남자는 3명 중 1명, 여자는 5명 중 1명이 암에 걸린다. 암은 전체 국민들이 경제적, 육체적으로 가장 심각하게 체감하는 광범위한 고액중증 핵심질환이다. 암의 무상진료가 어찌 암으로만 끝나겠는가. 일시적인 시간차이가 있을 뿐 다른 중증질환에 대해서도 동일한 보장성이 곧 뒤따를 수밖에 없다. 원칙만 주장하다가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가 된다. 국민이 피부로 느끼고 동의하는 '암 무상진료'는 대만이냐, 칠레냐의 갈림길일 수 있을 정도로 절박한 상황에 이미 우리는 와있는 것이다"며 "암에 이어 다른 중증질환도 곧바로 무상진료를 반드시 이루어 나갈 것"을 분명히 했다.

'암부터 무상진료를' VS '전체 중증질환에 골고루'는 시민사회단체와 복지부의 첨예한 대립만이 아니라, 결과에 따라서는 향후 우리 나라 보건의료체계와 시장을 재편하는 분수령이 될 수 있기에 그 추이와 향방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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