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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에 유난히 개구쟁이였던 승완이가 이제는 중학교 1학년입니다.
승완이가 태어나서 100일이 지나자마자 온 가족이 서울에서 창원으로 이사를 왔습니다. 할아버지집이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와서 매주 토요일 오후가 되면 엄마, 아빠, 누나와 함께 할아버지 댁에 갔다가 일요일 저녁이면 집으로 돌아오곤 했습니다.
그렇게 할아버지 댁을 자주 찾아다니며, 승완이가 자라고, 철이 들기 시작하면서 할아버지와 승완이가 주고받는 사랑은 옆에서 지켜보는 가족들조차 마음을 찡하게 하는 순간들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할아버지는 다른 10명의 손자, 손녀들 중에서 승완이와 가장 친합니다. 할아버지의 팔을 베고 잠을 자는 손자도 승완이고, 길을 걸으면서 할아버지의 손에 깍지를 끼고 걷는 것도 승완이고, 할아버지가 뭐라고 야단을 치기라도 하면 버릇없이 할아버지를 툭 치는 손자도 승완이고, 가끔이지만 할아버지께 안부 전화를 하는 것도 승완이입니다.
물론 할아버지의 사랑도 승완이에게는 유별납니다.
작년 여름 늦은 밤이었습니다. 지금도 집에서 장수풍뎅이와 사슴벌레를 키우고 있는 승완이가 할아버지께 집 근처 산속으로 장수풍뎅이를 잡으러 가자는 이야기에 망설임 없이 선뜻 손전등을 찾아들고 앞장을 서시던 할아버지이십니다. 그날 잡아 온 곤충은 달랑 풍뎅이 한 마리였지만, 할아버지는 예전에도 승완이의 요구에 따라서 미꾸라지도 잡아주시고 개구리도 잡아 주셨습니다.
2년 전 할머니께서 돌아가신 후, 시골집에 홀로 계시는 할아버지가 내내 마음에 걸렸던 승완이는, 할아버지댁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순간이면 "할아버지 우리 집으로 함께 가세요. 우리랑 함께 살아요. 제 침대에서 할아버지가 주무시고, 저는 바닥에서 자도 되요"하고 할아버지의 손을 이끌던 승완이었습니다. 그리고 가끔 할아버지께 간식 사 드시라고 아껴두었던 1000원 짜리 두 장을 용돈으로 드리기도 해서 그런 모습을 지켜보는 주변 사람들의 눈시울을 뜨겁게도 했습니다.
지난 2002년도에 할아버지께서는 큰 손자와 작은 손자 승완이에게 특별한 선물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나중에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면 묻히실 한골밭머리에 밤나무 네 그루를 심어서 큰손주에게 두 그루, 승완이에게 두 그루를 주신 것입니다.
언제인가 할아버지, 할머니가 잠들어 계신 그곳에 어른이 된 큰손자와 승완이가 자신들의 아이들과 함께 찾아오거든 온 가족이 즐겁게 따 먹으라고 밤나무를 심으셨다고 했습니다.
그때에는 아주 작았던 밤나무가 이제는 제법 많이 자랐습니다. 작년에는 밤이 열리기도 했는데 누군가가 모조리 따 가버렸다고 할아버지는 내내 아쉬워했습니다.
승완이의 밤나무가 심어져 있는 그 한 골 밭 위로 지금은 2년 전에 돌아가신 할머니께서 홀로 잠들어 계십니다. 어쩌면 혼자 계실 할머니께서 외로울까봐 그래서인지 할아버지는 할머니 산소 옆에 할아버지의 산소까지 나란히 만들었습니다.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마치 두개의 산소가 어깨를 나란히 하고 다정하게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보겠지만, 왼쪽의 산소는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면 잠드실 산소입니다.
고모들은 할머니의 산소가 혼자 외롭게 있는 것 보다 할아버지의 가묘가 나란히 있는 모습이 훨씬 보기 좋다고 합니다.
이번 어버이날을 맞이하여 빨간 카네이션 화분을 사 가지고 할머니 산소에도 찾았습니다.
할머니 산소 앞에 온 가족이 큰절을 올리고 나서 카네이션도 심었습니다. 산소 주변의 쓰레기도 줍고, 잡초도 뽑다가 승완이는 모처럼 할아버지와 함께 밤나무 앞에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이번 어버이날, 새벽이슬이 사그라지기 전인 이른 아침인데도 "승완이 아직 자나?"하는 할아버지 말씀에 후다닥 일어나서 할아버지 뒤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마늘종도 뽑고, 풀도 뽑으면서 할아버지의 이야기 상대가 되어 주던 승완이입니다.
아마 돌아가신 할머니께서도 승완이와 할아버지를 그런 모습을 지켜보면서 살아계셨을 때처럼 빙그레 웃으시며 흡족해 하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덧붙이는 글 | 작년, 할머니의 첫번째 제사를 지내고나서 할아버지께는 새로 오신 할머니가 계십니다. 새로 오신 할머니는 주말이면 할아버지댁을 찾아 오시는데, 그 할머니조차 승완이에게 할아버지의 옆자리를 양보하며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던, 승완이와 할아버지의 따뜻한 사랑을 소개하고 싶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