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펜을 잡은 건 학생들. 학생들은 내신등급제 반대 추진 카페를 중심으로 지난 1일부터 교육부 앞으로 편지를 보내기 시작했다. 학생들은 편지에서 교육부를 비판하며 내신등급제 반대 이유를 설명했다.
고1 여고생, “장관님! 과외를 시켜주시겠습니까? 교육제도 고쳐 주시겠습니까?”
“고1 여고생입니다! 내신등급제는 ‘고1 첫 시험 망치면 대학 못간다’고 우리들의 머릿속에 세뇌시키는 역할을 할뿐입니다! 저는 요즘 심한 자살충동 느끼구요! 심해지면 아마 세상을 떠난 우리 친구들 따라 갈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저희 집안은 가난해서요, 다른 애들처럼 내신 관리 받을 학원도 과외도 못 받습니다!
이거 아시나요? 존경하는 장관님! 우리학교 아이들 중 50%가 과외와 학원을 병행합니다! 예체능도 과외한다구요! 사교육비 절감이 아니라 더욱더 돈만 쏟아 붇는 새로운 교육제도 참 좋아서 미칠 것 같아요! 장관님이 저 과외랑 학원 다니게 해주시면 이런 말 하지 않겠습니다! 장관님 저에게 과외를 시켜주시겠습니까? 아니면 이번 교육제도 새로 고쳐 주시겠습니까?” (ID:제도를 바꾸라)
“떨리는 마음과 두려움을 지니고 고등학교 입학한지도 2달이 넘어가는데요. 이제는 공부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뒤에 상위 학교를 선택했습니다. 하지만 님들 덕분에 내 인생 완전 망했네요. 이제는 공부 잘하는 사람만 살아남겠군요. 공부 못하는 학생은 이제 사회에 남아서 막노동이나 실업자가 될 것이 뻔한 일이 될거구요. 감사합니다. 이런 인생 우리한테 부여해주셔서 당신들 덕에 일찌감치 꿈을 포기하게 되네요.
솔직히 말해서 근본적으로 당신들 제도의 목적이 뭔가요? 사교육비절감인가요? 만약 사교육비절감이면 욕 들어먹을 짓 한거구요. 학원학생수가 10~20% 늘었다는 것은 알고 계시겠죠? 이게 사교육비절감을 위한 제도마련의 효과네요. 교육부에서는 무엇을 하는 건지, 무슨생각을 하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네요. 지금상황으론 학원, 불법과외 연합과 손을 잡고 있는 것 처럼 보이네요.” (ID:ㆍ꿈━☆ㆍ)
“We don't need no education./We don't need no thought control./No dark sarcasm in the classroom./Teacher, leave those kids alone./Hey, Teacher, leave those kids alone!/All in all it's just another brick in the wall./All in all you're just another brick in the wall.
우린 교육 따위 필요없어요/우리의 생각을 조종하는 그런 교육은 원치 않습니다/교실에서의 혹독한 야유는 이제 그만/선생님, 애들을 그냥 내버려둬요/이봐요 선생님들, 우릴 이대로 그냥 놔두세요/우린 그저 벽 속의 마찬가지 벽돌들일 뿐이었죠/선생님도 마찬가지, 벽 속의 똑같은 벽돌들일 뿐입니다…당신들에게 하고 싶은 말입니다.”(ID:Rutk Dic Manson-주: 핑크플로이드 ‘another brick in the wall’ 가사)
김진표 교육, “새로운 대입 제도는 전문가들이 2년 동안 토론 거친 대안”
한편, 교육부는 지난 5일 교육가족 앞으로 보낸 김진표 교육부총리 명의의 서한문에서 내신등급제에 대한 인식은 오해라며 학생들에게 이해를 구했다.
김 부총리는 내신등급제 논란에 대해 "성적 부풀리기 방지를 위해 교과 성적 표기 방식을 변경하여 평어를 없애고 석차 중심으로 표기하다 보니, 많은 학생들이 지나치게 '경쟁'을 의식하게 된 것 같다"고 지적한 뒤 “새로운 대입 제도는 우리 사회의 많은 전문가들이 지난 2년 동안 토론을 거치고 중지를 모아 마련한 대안임을 이해해 주시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김 부총리는 “다행히 많은 학교에서 수업에 대한 학생들의 집중도가 이전보다 훨씬 높아지고, 독서와 토론 수업이 활성화하는 등 긍정적인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며 “선생님들도 교재 연구나 공정한 성적 관리를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교과 협의회가 활성화하는 등의 성과도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부총리는 이어 “입시제도는 서서히 제자리를 찾아갈 것으로 기대된다”고 덧붙였다.
부총리의 서한문에도 불구하고 고교생들이 내신등급제 반대 촛불집회를 연다고 하자, 교육부는 지난 6일 학사지원과 명의로 ‘전국의 고1 학생들에게 보내는 글’을 다시 띄웠다.
교육부는 “어떤 대학에서 학생부 성적을 30% 반영하고 국어, 영어, 수학, 국사 네 과목을 평가한다면, 국어 반영 비율이 30%/4로 7.5%다. 고교 3년 동안 12번 시험을 보니까 7.5%/12로 0.625%다. 이 0.625%는 중간고사에서 국어를 1등한 학생과 꼴등한 학생의 차이”라며 “학생부 성적은 1, 2번의 시험으로 큰 차이가 나는 것이 아니라, 잘하는 학생은 ‘티끌 모아 태산’이고, 불성실한 학생은 ‘가랑비에 옷 젖는’ 식으로 반영된다”고 설명했다.
교육부는 학생들이 “내신성적, 수능, 논술 같은 대학별고사가 각각 균형 있게 반영된다고 하면 너무 부담스럽게 하는 거 아니냐?”고 반문하는 것에는 ”수능시험은 학교에서 가르치고 배우는 내용을 위주로 출제하고, 시험 출제위원도 절반 이상을 고등학교 선생님들로 위촉할 계획”이므로 “학교 공부를 열심히 함으로써 학교시험과 수능시험을 모두 대비할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교육부는 끝으로 “아주 느린 속도지만, 학벌위주의 사회에서 벗어나 성실하게 노력하고 창의적인 능력을 가진 사람이 높게 평가 받는 ‘능력중심사회’로 가고 있다”고 분석한 뒤 “대기업의 전문경영인 중에는 비록 명문대학을 나오지는 않았지만 전 세계를 상대로 무한경쟁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분들이 많이 있다”며 “감성적으로 무분별한 행동을 하기 보다는, 넓은 안목과 굳은 자신감을 가지고 장래를 설계하시기 바란다”고 학생들에게 당부했다.
오프라인에서는 촛불집회를 두고 팽팽한 긴장감을 연출했던 교육당국과 학생들이, 온라인에서는 비교적 차분하게 상대를 비판하고 설득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내신등급제 관련 온라인 편지가 의사소통 창구로 활용될지 아니면 논란 2라운드로 접어들게 할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