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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호원, 진천, 음성 등 온 장터를  순례하는 뻥튀기 아저씨가 일년에 단 하루 초파일에 이곳에 온다. 내가 아는 한 그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맛있는 강냉이 튀밥을 파는 사람이다
장호원, 진천, 음성 등 온 장터를 순례하는 뻥튀기 아저씨가 일년에 단 하루 초파일에 이곳에 온다. 내가 아는 한 그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맛있는 강냉이 튀밥을 파는 사람이다 ⓒ 이승열
신라 7세기 중엽에 자장율사가 세운 칠장사는 경기도에서 가장 많은 문화재를 보유한 사찰이다. 원래 아미산으로 불리웠는데, 이곳에서 수도하던 혜소국사가 일곱 악인을 교화 제도한 고사에 따라 산 이름을 칠현산(七賢山), 칠현인이 머문 절이라 하여 칠장사(七長寺)라 하였다고 전한다.

벽초 홍명희의 소설 <임꺽정>에 나오는 일곱 도적 및 소나무 이야기는 앞 혜소국사와 관련된 일곱 도적 및 나옹대사의 소나무 이야기가 그 모태다.

원래 원통의 당이 30개 였으나 현재 15개만 남아있다
원래 원통의 당이 30개 였으나 현재 15개만 남아있다 ⓒ 이승열
칠장사에서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은 일주문 밖 밭 한가운데 있는 철당간이다. 대부분 절에 달랑 돌로 된 당간지주만 쓸쓸히 남아 있는 데 반해, 이곳 철당간은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초파일 오색 연등과 함께 오월의 초록에 쌓인 철당간에서 당이 나부꼈을 풍경이 눈에 선하다.

진흙을 이겨 이토록 큰 사천왕상을 만들 수 있는 정성이 놀랍다
진흙을 이겨 이토록 큰 사천왕상을 만들 수 있는 정성이 놀랍다 ⓒ 이승열
오색의 연등이 걸린 은행나무 길을 잠깐 걸으면 바로 진흙으로 만든 사천왕상을 만날 수 있다. 악귀 위에 걸터앉아 부처님의 도량과 불법을 수호하고 있는 사천왕은 짙은 눈썹에 큰 눈을 부릅뜨고 있는데, 꼬불꼬불한 수염 사이로 보이는 입술 끝에 살며시 감돈 미소가 무섭다기보다는 해학적이다. 꼬질 꼬질하게 때묻은 과자를 뒷짐에 감추고 귀엽다는 표시로 기어이 나를 울리고야 말았던 고향 동네의 짓궂은 대복이 어른을 만난 듯하여 어쩐지 정이 간다.

소박한 것이 주는 감동이 무엇인가를 통째로 보여 주는 대웅전
소박한 것이 주는 감동이 무엇인가를 통째로 보여 주는 대웅전 ⓒ 이승열
응향각, 요사채, 명부전에 둘러싸여 있는 대웅전은 단청이 벗겨져 세월이 지나간 흔적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대웅전 건물 자체는 1800년대 후반에 세워진 그리 역사가 길지 않은 건물이나, 그곳에 쓰인 기둥 중에는 600년이 넘는 것도 있다 한다.

세월의 풍상을 고스란히 드러낸 나무결의 무늬가 치장하지 않은 자연스럽고 소박한 것의 아름다움이 진정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초파일이 되면 잔디가 곱게 가꾸어진 대웅전 앞마당에 연등이 가득 걸리는데, 꼬마 전구로 연등을 밝히는 다른 절과는 달리 이곳 칠장사에서 최근까지 촛불로 아기 부처의 탄생을 봉축한다(재작년까지는 그랬는데 작년 초파일엔 가지 못했다).

손에서 손으로, 등에서 등으로 어둠과 함께 온 푸르름이 조금씩 짙어지며 연등이 빛을 발하기 시작하면 세상은 온통 연꽃의 물결로 출렁인다. 손에 손에 연등을 들고 있는 중생들 또한 등불이 되어 세상을 밝힌다.

칠장사가 자리한 안성땅은 역사의 전면에 한번도 화려하게 부상한 적이 없지만, 조선시대까지 삼남의 사람들과 물자가 한양으로 진입하는 요지였다. 사람들이 모여들면 이야기 거리가 생기고, 이야기는 다시 전설이 되고 그 전설은 사람들의 가슴에 신화가 되어 영원히 새겨진다.

한눈에 들어오는 아담한 대웅전, 봉업사터에서 옮겨온 석불, 아직도 당당한 철당간, 해학적인 사천원상, 인목대비가 영창대군의 원혼을 달래려 하사했다는 국보 괘불탱 등은 칠장사를 빛내는 보물들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곳으로 발걸음을 끌게 하는 것은 칠장사에 서려있는 조선의 의적 임꺽정의 전설이다.

병해대사와 임꺽정 일곱두령. 벽화 밑에 그들의 이름이 써있다.
병해대사와 임꺽정 일곱두령. 벽화 밑에 그들의 이름이 써있다. ⓒ 이승열

병해대사의 칠장마를 탄 꺽정
병해대사의 칠장마를 탄 꺽정 ⓒ 이승열
백정출신으로 민초들에게 가죽신 짓는 법을 가르쳐 유기와 더불어 가죽신을 안성의 명물로 만든 갓바치인 스승 병해대사를 만나러 꺽정은 자주 칠장사에 온다. 갓바치는 10년동안 꺽정에게 무예를 가르치고 자신의 애마 칠장마를 주는데 이 상황이 명부전 벽에 그려 있다. 천민도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이상 사회를 꿈꾸던 그들, 꺽정이 스승 갓바치를 위해 만든 꺽정불이 벽초 홍명희가 임꺽정을 썼던 1930년대까지 전해지고 있었다 한다.

애꾸눈의 궁예도 명부전의 한 벽면을 장식하고 있다
애꾸눈의 궁예도 명부전의 한 벽면을 장식하고 있다 ⓒ 이승열
임꺽정과 함께 명부전의 벽면을 장식하고 있는 또 하나의 인물은 궁예다. 신라 왕실의 서자였던 궁예는 유모의 손가락에 눈이 찔려 한쪽 눈을 잃는 기구한 운명에 처해진 채 이후 이 곳 칠장사에서 유년기를 보내며 활 연습을 했다 한다. 지금 명부전 뒤편에 있는 궁지(弓地)는 바로 궁예가 활 쏘는 연습을 하던 곳으로, 활을 잘 쏘아 궁예라는 이름을 얻었다 한다.

뒷언덕에 자리잡은 혜소국사 비. 비,귀부,이수가 해체돼 있어 안타깝다
뒷언덕에 자리잡은 혜소국사 비. 비,귀부,이수가 해체돼 있어 안타깝다 ⓒ 이승열
임꺽정, 궁예와 함께 칠장사에는 임진왜란 당시 가토 기요마사의 설화가 함께 전해진다. 문경새재를 넘어 계속 북진한 왜장 가토는 칠장사에 이르자 사찰을 뒤지고 무례하게 굴었는데, 한 노승이 나타나 썩 물러가라고 크게 나무랐다. 이에 화가 난 가토가 칼을 빼어 노승을 치니 그는 홀연히 자취를 감추고 비석이 갈라지면서 피를 흘렸다고 한다. 그 비석이 바로 보물 제488호인 혜소국사비다.

혜소국사비는 지금도 그 내력을 증명하듯 가운데에 갈라진 흔적이 역력히 남아 있다. 현재 비각 안에는 비석, 귀부, 이수가 세 조각으로 나뉘어 보존되어 있다.

혜소국사비 앞에 자리한 일곱 현인의 화신을 봉안한 나한전은 어사 박문수가 기도를 드리고 장원급제를 한 곳으로 유명하다. 어머니가 만들어준 조청으로 만든 유과를 이곳 나한전에 공양하고 갔던 박문수의 꿈에 과거시험의 시제가 그대로 나와 급제했다 한다.

박문수는 돌아올 때도 과자를 만들어 다시 이곳에 바치고 갔다 하는데, 현재도 이 나한전에는 수험생 자녀를 둔 부모가 와서 조청이나 과자 공양을 하면 영험하다 하여 수험철에 과자 공양이 끊이지 않는다 한다.

경내 구석에 있는 '청신녀 선주유인이갓난공덕비'. 여기서 갓난이란 누구였을까?
경내 구석에 있는 '청신녀 선주유인이갓난공덕비'. 여기서 갓난이란 누구였을까? ⓒ 이승열
민초들의 이루지 못한 꿈이 서린 곳, 칠장사가 가장 아름다운 계절은 11월과 12월의 초겨울의 길목이다. 등불처럼 세상을 밝히는 주홍빛 감이 파란 하늘에 매달려 겨우 내내 세상을 밝힌다. 초파일 온몸으로 세상을 밝혔던 촛불처럼, 민초들에게 새로운 세상을 꿈꾸게 했던 꺽정의 존재처럼….

유행처럼 번졌던 중창불사의 흔적. 상처는 남았지만 늦게라도 철거되어 고맙고 다행이다
유행처럼 번졌던 중창불사의 흔적. 상처는 남았지만 늦게라도 철거되어 고맙고 다행이다 ⓒ 이승열
사족 하나. 아담하고 소박한 절집 칠장사에도 이 나라 방방곡곡에서 유행하고 있는 중창 불사의 회오리가 휩쓸고 간 흔적이 있다. 잔디를 정성껏 가꾼 대웅전 뜰 앞에 어느 날, 손을 대면 베일 것 같은 날카롭고 우람한 화강암 탑이 세워졌다. 애써 외면해도 마음이 언짢아 칠장사에 대한 애정을 거두어야 할 때가 왔다고 다짐했는데, 엊그제 우중 칠장사에 가보니 화강암 탑은 철거되었고, 그 흔적만 남아 있었다.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다.

덧붙이는 글 | - 지난 5월 6일에 다녀와서 쓴 글입니다.

- 칠장사는 안성시 죽산면 칠장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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