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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저녁 나절, 슈퍼에 갔다오는 길에 맵시있게 치장하고 지나가는 애완견을 홀린 듯이 바라보던 녀석이 대뜸 한마디한다.

"아빠, 우리도 강아지 한 마리 키웠으면 좋겠다."
"…"
"아빠도 강아지 보면 귀엽지요? 우리도 강아지 키우면 좋을 텐데."

큰 녀석은 이미 예전에 우리가 강아지를 키울 수 없는 이유를 수차례에 걸쳐 귀가 닳도록 들었던 터라 더 이상 고집은 피우지 못하고 그냥 아쉬움만 가득한 표정을 짓고 만다.

아파트에 살면서 집안에 강아지를 기르다 보면 신경 쓰이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또 낮에 집이 텅텅 비어 버리는 우리로서는 강아지를 보살필 수 있는 여건도 아니다. 더구나 심한 알레르기 체질인 나로서는 집안에 강아지 털이라도 날리게 되면 그야말로 곤란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내 어릴 적 우리 집에서 기르던 강아지를 생각할 때면 녀석에게도 근사한 강아지 한 마리쯤은 다정한 친구로 데려다 주고 싶은 마음도 있다. 사실 강아지와 신나게 뛰어 노는 순간 참 행복하지 않은가? 그리고 강아지와 이별하면서 배우게 되는 상실의 아픔은 어린애들을 또 얼마나 성숙하게 만드는지….

사실 오늘 큰 녀석이 강아지 얘기를 꺼냈을 때 녀석에게 들려주고 싶은 유년시절의 기억 한 토막이 떠올랐다. 내가 꼭 지금 큰 녀석 나이쯤이었을 5~6살 때 경험했던 강아지의 죽음.

난 큰 녀석을 무릎에 앉히고는 30년도 훨씬 더 지난 그 옛날 기억의 길을 더듬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문밖에서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에 눈을 떴다. 조그만 고추는 오줌으로 퉁퉁 불거져 있었고 눈에는 마른 눈곱이 붙어서 한 쪽 눈을 제대로 뜨기가 어려웠다. 콩 비지를 나누어 먹으려고 동네 아줌마들이 모였겠거니 하고 마루로 나갔다. 마루 귀퉁이에서 마당 쪽으로 고추를 세우고 오줌발을 뿌리려는 찰나 저쪽으로 푸른 군복을 입은 군인 한 사람이 아버지와 무언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보였다.

간혹 트럭을 타고 군가를 힘껏 부르며 지나가는 군인들은 많이 보았지만 이렇게 가까이에서 군인을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아버지만큼 나이를 먹은 군인이 무어라고 얘기를 하고 있었고 아버지는 그 말에 간혹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무슨 일일까? 궁금증에 못 이겨 오줌발을 끊고 그리로 가보려는데 엄마가 마당으로 들어오셨다.

"엄마, 무슨 일 있어요?"

고추를 얼른 바지에 집어넣으면서 엄마의 표정부터 살펴보았다.

"누렁이가 죽었다."

엄마는 그 말 한 마디만 하고는 부엌으로 들어갔다. 아무런 감정도 없는 목소리였다. 하긴 개 한 마리 죽었는데 무슨 감정이 있겠는가? 팍팍한 세상살이 속에 개 한 마리 죽었을 뿐이었다. 그렇게 죽지 않았어도 누렁이는 클 만큼 큰 개였으니 아마 조만간 뒷산으로 가서 동네 어른들에게 실컷 두들겨 맞고 죽을 운명이었다.

물론 난 그때까지 개를 잡는 장면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저 어느 땐가 형이 개 잡는 얘기를 신나게 들려 준 걸 들었을 뿐이다.

마당을 지나 텃밭을 가로지르고 조그만 도랑물을 건너뛰어 길가에 서 있는 아버지께로 다가갔다. 벌써 아버지와 이야기가 다 끝이 났는지 군인은 차에 오르고 있었다. 누렁이가 죽었다면 어디에서 죽었을까 하는 궁금증으로 주위를 살펴보아도 누렁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동네 사람들은 마당 이쪽 편에서 서로 하품을 해대며 끼리끼리 모여 있었다. 내 또래 아이가 있는지 둘러보았지만 아직 이른 시간인지 녀석들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아버지에게 무어라 묻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아무 동네 어른께 내 궁금증을 얘기하기도 어색해서 일단 마당으로 다시 들어와 버렸다.

마루 밑 누렁이의 집을 살펴보았다. 온기가 남아 있는 듯한 느낌만 들 뿐 누렁이는 보이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아도 그 때 내가 누렁이의 죽음에 무어 그리 슬픈 마음을 가졌던 기억은 없다. 그날 아침 누렁이를 보려는 것은 단지 누렁이가 죽었다면 어떤 모습을 하고 죽었을까 하는 것만 궁금했을 뿐이었다.

그날 늦게 알았지만 누렁이는 아침에 일어나 똥을 싸기 위해 길 건너편 밭으로 가다가 지나가는 군용 트럭에 치여 죽었다.

누렁이와 내가 어떻게 지냈는지는 기억에 뚜렷하게 남아 있지 않다. 단지 커다란 몸뚱이로 마당이나 텃밭 언저리를 어슬렁거리며 땅에 코를 박고 킁킁거리기도 하고 냄새를 맡는 시늉도 하면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던 모습과 간혹 나를 보면 꼬리를 흔들면서 내 주위를 껑충껑충 뛰던 모습이 얼핏 생각날 뿐이다.

혹은 친구들과 놀고 있을 때 누렁이가 나를 보고 찾아와 주위를 빙빙거리며 돌면 친구 녀석들에게 자랑삼아 누렁이의 목을 안고 한바탕 뒹굴던 기억도 난다. 하지만 누렁이와의 이런 관계가 무슨 특별한 추억거리가 된 것은 아니었다.

가족들이 둘러앉아 아침밥을 먹을 때는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그렇다고 누렁이의 죽음이 우리 가족의 입을 닫게 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어수선한 이 아침 나절이 집안 분위기를 그렇게 가라앉혀 놓았을 뿐이었다.

그날 아침 평소와 같이 나는 집에 혼자 남았다. 그리고 나는 친구 녀석들이 얼른 우리 집 넓은 마당으로 구슬치기라도 하러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마당에서 빌빌거리며 흙장난을 하고 있을 때 어디에선가 누렁이의 냄새가 났다. 짐승 특유의 노린내 비릿한 냄새가 내 코를 자극했다.

고개를 들고 얼핏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얗게 서리가 내린 밭에 해가 비추고 있었다. 그리고 눈부시게 빛나는 밭 한쪽 구석에는 시커먼 이물질이 놓여 있었다. 누렁이가 싸 놓은 똥이었다. 누렁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노린내는 그쪽에서 나는 것이 아니라 마루 밑 누렁이의 집에서 퍼져 나왔던 것이다. 산 위에서 부는 바람이 집안 공기를 휩쓸어 마당 쪽으로 끌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날 아침 누렁이는 없고 누렁이가 싸 놓은 똥과 누렁이의 몸 냄새만이 내게 그렇게 남아 있었다. 어쩌면 어린애의 가장 절친한 친구로도 생각될 것 같던 누렁이는 그렇게 죽었다.

그런데 아무렇지도 않을 것 같던 누렁이의 죽음은 시간이 지날수록 어린 내게 점점 더 절실하게 다가왔다. 누렁이가 죽은 이후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이 부쩍 많아졌다. 이전에는 누렁이와 보내던 시간들이 온전히 나 혼자 보내야 할 시간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시간들 속에서 나는 어렴풋이 상실의 아픔을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였던가. 비오는 날이면 누렁이와 마루에 앉아 처마 밑으로 떨어지는 빗방울을 보면서 보내던 그 무료한 시간들까지도 아픈 추억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그 아픔을 어린 아이 혼자 속으로 삭이고 있는 동안 나는 어느새 어른이 되어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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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만 들어도 가슴이 벌렁거리는 '기자'라는 낱말에 오래전부터 유혹을 느꼈었지요. 그렇지만 그 자질과 능력면에서 기자의 일을 수행할 수 있을까 하는 자신에 대한 의구심으로 많은 시간을 망설였답니다. 그러나 그런 고민끝에 내린 결정은 일단은 사회적 목소리를 들으면서 거기에 대해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내생각도 이야기 하는 게 그나마 건전한 사회를 만들어 가는 데 필요치 않을까, 하는 판단이었습니다. 그저 글이란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진솔하고 책임감있게 표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 있는 글쓰기 분야가 무엇인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일상의 흔적을 남기고자 자주 써온 일기를 생각할 때 그저 간단한 수필정도가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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