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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과 잎이 한평생 만나지 못하는 상사화. 열매도 맺지 않는다. 2004년 7월28일
꽃과 잎이 한평생 만나지 못하는 상사화. 열매도 맺지 않는다. 2004년 7월28일 ⓒ 이승열
일주문 밖 둔덕에 분홍빛 상사화가 잡초들 사이에 애잔한 분홍빛을 발하며 청룡사를 지키고 있다. 잎이 말라 죽은 뒤에야 꽃대가 올라와 잎과 꽃이 한평생 만날 수 없는 애달픈 사연을 간직한 꽃 상사화, 무리 지어 한 점 티 없는 현란한 분홍꽃이 어쩐지 애잔하다.

파란 하늘, 하얀 뭉게구름, 바람 한 점 없는 대웅전 옆 배롱나무의 매끈한 줄기를 손끝으로 살살 간질여주니 가지 끝 탱글탱글한 꽃망울을 매달은 꽃송이가 흔들린다. 바람이 이는 듯하다.

한여름 이글이글 태양 아래 탱글탱글한 배롱나무. 2004년7월28일
한여름 이글이글 태양 아래 탱글탱글한 배롱나무. 2004년7월28일 ⓒ 이승열

배롱나무

이면우

배롱나무 붉은꽃 피었다 옛날 배롱나무 아래 볼 발갛게 앉았던 여자가 생각났다 시골 여관 뒷마당이었을 게다 나는 눈 속에 들어앉은 여자와 평생 솥단지 걸어놓고 뜨건 밥 함께 먹으며 살고 싶었다

배롱나무 아래 여자는 간밤의 정염을 양 볼에 되살려내는 중이던가 배롱나무 꽃주머니 지칠줄 모르고 매달 듯 그토록 간절한 십년 십년 또 오년이 하룻밤처럼 후딱 지나갔다

꽃 피기 전 배롱나무 거기 선 줄 모르는 청년에게 말한다 열정의 밤 보낸 뒤 배롱나무 아래 함께 있어봐라 그게 정오 무렵이면 더 좋다 여자 두 뺨이 배롱나무 꽃불 켜고 쳐다보는 이 눈 속으로 그 꽃불 넌지시 건너온다면 빨리 솥단지 앉히고 함께 뜨건 점심 해 자시게!


포도송이로 둘러싸인 청룡사 가는 길

어느쪽으로 청룡사에 가든 포도밭을 지나야 한다
어느쪽으로 청룡사에 가든 포도밭을 지나야 한다 ⓒ 이승열
충청남도 성거, 입장에 맞닿은 안성 서운면은 알이 붉은 검붉은 빛의 거봉 포도의 주산지로 칠장사 가는 길은 온통 포도밭 천지다. 한여름 탱탱하게 잘 익은 포도송이가 주렁주렁 달린 풍경은 또 하나의 장관이다. 사시사철 물이 마르지 않는다는 청룡저수지 안쪽으로 올망졸망한 논과 밭과 함께 청룡마을이 있고 청룡사는 버스 종점, 마을 끄트머리에 자리잡고 있다.

버스 종점 마을이 끝나는 곳 길 가운데 자리잡은 청룡사 사적비
버스 종점 마을이 끝나는 곳 길 가운데 자리잡은 청룡사 사적비 ⓒ 이승열
늠름히 마을 입구를 지키는 느티나무 두 그루, 길 한가운데 서 있는 사적비, 언제나 졸졸졸 소리 내며 흐르는 맑은 계곡물, 낮게 쌓은 돌담, 울 밑에 정성껏 가꾼 총 천연색 꽃들이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높지 않은 계단 위, 대갓집 솟을대문 같은 일주문에 서운산 청룡사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높지 않은 돌계단 위의 서운산 청룡사. 그냥 지나치기 쉽다
높지 않은 돌계단 위의 서운산 청룡사. 그냥 지나치기 쉽다 ⓒ 이승열
성서로운 구름 위를 청룡이 노니는 곳, 고려 말 나옹 스님이 청룡사를 중창하면서 한 마리 푸른 용이 오색 찬란히 빛나는 상서로운 구름[瑞雲]을 타고 하늘에 오르내리는 것을 보고는 이름을 서운산(瑞雲山) 청룡사(靑龍寺)라 했다 한다.

사천왕상이 있어야 할 곳에 자리잡은 쪽방. 한여름 오수를 즐기고 싶은 곳
사천왕상이 있어야 할 곳에 자리잡은 쪽방. 한여름 오수를 즐기고 싶은 곳 ⓒ 이승열
여느 절과는 달리 청룡사 일주문에는 불법을 수호하는 우락부락한 사천왕상이 없고 사천왕상이 있을 자리에 조그만 쪽방이 달려 있다. 대갓집의 행랑채로 들어가는 느낌이다.

부유하던 먼지도 문살에 내려앉아 오수를 즐길 것 같은 한낮, 너무 차분해서 발소리조차 내는 것이 미안하다. 정면에 자리 잡은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4칸의 측면이 한 칸 더 많은 흔치 않은 건물이다. 조그마하나 어느 한곳 빈틈없이 당당하게 청룡사를 지키고 있다.

정면보다 측면의 칸수가 더 많은 보물 대웅전
정면보다 측면의 칸수가 더 많은 보물 대웅전 ⓒ 이승열

ⓒ 이승열

절정의 순간에 이른 아름다움. 휘어질대로 휘어진 나무로 기둥을 쓴 흉내낼 수 없는 자신감
절정의 순간에 이른 아름다움. 휘어질대로 휘어진 나무로 기둥을 쓴 흉내낼 수 없는 자신감 ⓒ 이승열

청룡사 대웅전의 묘미는 정면이 아니다. 절정의 역도선수 팔뚝에 불거진 근육 같은 기둥의 울퉁불퉁 휘어짐이 가히 장관이다. 떡 주무르듯 나무를 다룰 수 있다는 자신감 없이는 감히 선택조차 할 수 없는 기둥들이다. 뒤틀리고 휘어진 목재를 생김새대로 다듬어 기둥을 세우고 대들보를 얹은 대담함이 정면의 단정함과 대비되며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법당 안에는 최근(2000년) 보물로 지정된 청동종이 있고, 큰 괘불이 있어 대웅전 앞에 괘불을 걸 돌지주까지 마련해 놓았다. 구불구불한 아름드리나무를 껍질만 벗긴 채 본래의 나뭇결 그대로 살려 기둥으로 세웠다.

오래 전 남사당패가 걸어 넘었을 그 산, 서운산

청룡사는 1900년대부터 등장한 남사당패의 근거지이기도 했다. 절의 허드렛일을 거드는 불목하니로 겨울을 난 뒤 봄부터 가을까지 청룡사에서 준 신표를 들고 안성장터를 비롯해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연희를 팔며 서민의 애환을 달래주던 남사당패. 지금도 건너편에는 남사당마을이 남아 있다.

그 남사당패의 상징으로 남아 있는 인물이 안성 출신 바우덕이(김암덕)다. 안성에서 태어나 청룡사에 맡겨졌던 바우덕이는 최초이자 최후의 여자 꼭두쇠(남사당패 우두머리)를 맡아 삼남(三南)에 이름을 날렸다. 고종 2년인 1865년, 경복궁 중건에 안성남사당패를 이끌고 기예를 뽐내 흥선대원군에게 정3품 당상관 벼슬에 해당하는 옥관자를 받아 전국적인 명성을 얻었다.

민요에 "안성 청룡 바우덕이 소고만 들어도 돈 나온다. 치마만 들어도 돈 나온다" 구절이 심심찮게 나올 만큼 명성을 얻었던 그녀는 스물셋 꽃다운 나이에 폐병으로 요절했다. 바우덕이의 시신은 어려서 자랐던 청룡사 부근에 묻혔다 한다. 몇 년 전 무덤으로 추정되는 장소에 가묘를 만들고 안내문을 세웠다.

서운산 중턱의 좌성암. 부드러운 산책길이 온갖 야생화로 아름답다
서운산 중턱의 좌성암. 부드러운 산책길이 온갖 야생화로 아름답다 ⓒ 이승열
청룡사 앞 개울을 따라 수십명 남사당패가 자신의 기예를 뽐낼 악기를 등에 메고 넘었을 서운산 중턱 좌성암을 향한다. 앵초, 참꽃마리가 무리지어 피어 있고, 때 이른 더위로 할미꽃은 벌써 하얀 머리를 풀어헤친 채 홀씨가 되어 부유할 채비를 하고 있다. 성환, 성거, 입장 충청도 마을을 넉넉하게 품은 안성평야가 한눈에 들어온다.

덧붙이는 글 | -5월 6일 우중에 칠장사와 함께 돌아보았습니다.

-불교신자는 아니지만 초파일이 되면 안성의 절집들을 순례합니다. 
임꺽정의 칠장사에서 아침을, 서운산 깊숙이 자리잡은 석남사에서 점심을, 청룡사에서 저녁을 먹습니다. 그 중 청룡사 비빔밥이 제일 맛있고, 다른 음식도 제일 푸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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