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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완씨
김영완씨
16일 <오마이뉴스>가 입수한 이 사건처분결과증명서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검사장은 주소지가 '서울 종로구 평창동 443의 9'인 김영완씨에 대해 2005년 1월 24일에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위반(알선수재) 혐의로 기소중지 처분을 한 것으로 돼 있다.

검찰은 또한 이 증명서에서 김씨에 대한 기소중지 사유를 '국외출국, 입국시 통보요청'이라고 밝혀 김씨가 해외도피중임을 감추지 않았다.

그런데 검찰은 해외도피중이어서 기소중지 처분을 내린 범죄 혐의자에 대해 검거할 생각은 하지 않고 지난 4월 오히려 김씨에 대한 '영사에 위임한 증거조사 신청'을 파기환송심 재판부에 제출한 것으로 드러나 '보복성 시간끌기'라는 의혹과 함께 논란이 예상된다.

박지원씨 사건 공판을 담당해온 이병석 서울고검 검사가 지난 4월 12일자로 서울고법 형사2부에 접수시킨 '영사에 위임한 증거조사 신청'에 따르면, 주일본 한국 영사에게 박지원씨 사건의 증인 김영완에 대한 진술을 청취하는 방법으로 증거조사를 위임하겠다는 것이다.

검찰은 이와 같은 복잡한 '증거조사'의 사유로 우선 "김영완씨가 지난 2003년 3월 20일 미국으로 출국해 현재까지 귀국하지 않고 있으면서 귀국할 의사가 없음을 변호인을 통해 밝히고 있어 결국 김씨를 국내 법정에 소환해 증거조사를 벌이는 실시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고 밝혔다.

검찰은 또 "김씨가 본인이 작성해 변호인을 통해 제출한 진술서는 자신의 자유로운 의사에 기하여 작성된 것이라고 하면서 건강 문제 및 신변상의 위협 때문에 국내에 귀국할 수는 없고 주일본 대한민국 영사 면전에서 본건과 관련해 진술할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다"고 신청 사유를 제시했다.

"범법자 눈앞에 두고 필요한 증언만 녹취하고 다시 보내준다는 것은 직무유기이자 도주방조"

이어 검찰은 "김영완씨 스스로도 주일본 한국 영사 면전에서 진술을 희망하고 있는 바, 검찰 및 변호인으로부터 신문사항을 제출받아 영사로 하여금 신문케 하는 방법으로 증거조사를 하도록 위임해 대법원 판결에서 지적한 바와 같은 김영완 진술서의 증거능력에 대한 문제점들을 해소해 실체적 진실 발견을 도모하고자 한다"고 재판부에 취지를 밝히고 있다.

검찰은 이와 함께 ▲외교통상부장관 명의의 영사의 형사소송법 증거수집 관련 질의에 대한 회신 ▲주일본 대사관 명의의 영사의 증거수집에 관한 의견(회신) ▲일본 외무성 명의의 영사의 형사사건에 관한 증거채취에 관한 회신 등을 첨부서류로 제출했다.

요컨대 대법원이 해외체류중인 김영완씨 진술서의 증거능력을 의심해 이 사건을 파기환송한 만큼 김씨가 희망하는 제3국(일본)에서 영사더러 신문케 하는 방법으로 증거조사를 해 진술조서의 증거능력을 보완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박지원씨의 변호인인 소동기 변호사는 이에 대해 "법적 상식적으로도 무리한 기상천외한 발상으로 재판 지연 의도 말고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행위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소 변호사는 또 "검찰은 김영완씨가 주일본 영사 면전에서 진술을 희망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김씨가 일본에서 신문에 응할 것이라는 확신을 어떻게 가질 수 있냐"고 반문하고 "이는 김씨 변호인들과 검찰간에 긴밀한 의견조율이 있다는 반증이다"고 강조했다. 현재 주일본 한국 대사관의 법무협력관 서범정 영사도 해외파견 검사이다.

소 변호사는 이어 "범법자를 눈앞에 두고 검찰이 자신들이 필요한 증언만 녹취하고 다시 보내준다는 것은 직무유기이고 도주방조다"면서 "더욱이 한·일간에는 범죄인 인도협정이 2002년에 체결돼 발효중이므로 마땅히 범법자를 인도요청하고 잡아와야 할 일이다"고 강조했다.

사실 이처럼 검찰이 김영완씨의 소재를 파악하고 있으면서 지금까지는 관련법에 의해 범죄인인도에 필요한 제반조처를 취하지 않고 있다가 대법원의 무죄취지 파기환송 결정이 나온 뒤에야 '영사에 위임한 증거조서 신청'을 제기한 것도 그동안 제기된 검찰과 김씨 사이의 '플리 바기닝'(감형협상) 의혹을 뒷받침하는 대목이다.

일본 외무성 회신 중 '증인 신문을 공관 내에서 행할 것' 항목 뺀 번역본

실제로 검찰이 신청한 '영사에 위임한 증거조사'가 제대로 시행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이를테면 검찰은 주일본 한국대사관을 통해 일본 외무성에 '대한민국 영사가 우리 법원의 위임을 받아 증거조사 대상자의 진술 채록을 할 수 있는지'에 관하여 문의한 결과, 일본 외무성의 4월6일자 답변을 첨부해 재판부에 제출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2003. 9 일본 외무성은 아래의 조건 하에 어느 국가의 영사가 형사사건에 관한 진술 청취를 행하는 것을 인정한 바 있음
① 강제적인 수단을 사용하지 않을 것 ②본인의 의사에 기할 것 ③청취는 영사가 행할 것 ④상호주의를 인정할 것 ⑤다른 사건의 선례로 하지 않을 것"


이와 같은 일본 외무성 답변에서 알 수 있는 사실은, 일본의 경우에도 형사사건에 관한 주재국 영사의 진술 청취를 허용하는 기상천외한 사례가 2003년 9월에 단 한번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일본 외무성이 확답을 한 것은 아니다. 다만, 일본 외무성은 "구상서를 보내주면 그 가능성 여부를 관계기관과 협의해 회답하겠다"고 회신했다.

그런데 '실수'라고 보기에는 석연치 않은 대목은 일본 외무성의 회신 원본에는 진술청취를 허용한 조건으로 ①∼⑥의 항목을 적시하고 있는데 '주일대사관 법무협력관 서정범' 명의로 법무부에 보낸 번역본에는 위의 조건 중에서 ④항목을 뺀 채 다섯 가지 조건만 적시하고 있는 점이다.

문제의 번역본에서 빠진 원문의 ④항목은 '公館內で行うこと'(증인 신문을 공관 내에서 행할 것)이다.

상식적으로 판단해도 기소중지자인 김영완씨가 검찰과 '모종의 딜'(거래)을 해서 일본에서 영사(검사)의 신문에 응한다고 하더라도, 대한민국의 지배력이 미치는 공관에 제발로 들어가 체포되어 본국에 송환될 것을 자초할리는 만무하다. 기소중지된 범법자가 검사가 근무하고 있는 공관으로 들어가 증거조사에 응하는 것은 '날 잡아잡슈'라고 두 손을 내미는 것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검찰은 김영완이 희망하는 '제3의 장소'(호텔 등)에서 증거조사를 할 가능성이 크다. 그럴 경우, 일본 정부가 이를 허용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고, 또 진술조사를 받더라도 다시 진술조서의 증거능력이 의심받게 될 가능성 또한 크다.

이미 대법원은 권노갑씨의 현대비자금 200억원 수수 사건에서 김영완씨를 권씨의 공범으로 규정하면서도 판결문에서 김영완 진술서는 증거능력이 없다고 판시한 바 있다. 설령 어렵사리 영사에 위임한 증거조사를 받는다 해도 결국 원점으로 돌아가는 셈이다.

결국 검찰이 결과가 뻔한데도 새로운 증거를 제시하지 못한 채 '영사에 위임한 증거조사 신청'을 고집하는 것은 재판의 증거를 보강하기 위한 실제적인 효력보다는 파기환송심 재판을 받고 있는 박지원 피고인에 대한 '시간끌기 보복'이라는 의혹을 받기에 충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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