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산과 들, 어디에서나 흔하게 만날 수 있는 산딸기는 알고 보면 꽃의 귀족 장미와 함께 장미과(Rosaceae)의 한 계보를 이루는 한 집안 식구나 다름없는 꽃이다.
장미와 마찬가지로 줄기에는 가시가 돋고, 잎은 서로 어긋나며 가장자리에 톱니가 있어서만은 아닌 것 같다. 5월 초순부터 후미진 산길을 하얗게 밝혀주는 산딸기 꽃을 자세히 들여다보노라면 그 자태가 여간 탐스럽고 청량하여 결코 장미꽃에 뒤지지 않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산딸기는 나무다. 말이 나무이지 허리춤 남짓한 키로 자라고 가지가 사방으로 늘어져 풀인지 나무인지를 구분하기에 헷갈리기 십상이며 가시 덩굴이 여간 사납지 않아 쉽게 접근하기 어렵다. 또한 산딸기는 꼭 산에 가야만 만날 수 있는 게 아니다. 야트막한 야산이나 밭 가장자리에서 흔히 볼 수 있어 사람들과 친숙하다
유년시절을 시골에서 보낸 사람들에게는 군침을 돋게 하는 산딸기에 대한 추억을 하나쯤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사람들의 발길이 잦은 곳에는 산딸기는 여간해서 아이들 차지가 되지 않았다. 사람의 발길이 뜸한 좀 후미진 곳이나 으슥한 곳에 금방이라도 들쥐나 뱀들이 스멀스멀 기어 나올 같은 곳이라야 횡재할 수 있었고 실컷 따먹고도 모자라 주머니 밖으로 딸기물이 빨갛게 배어나올 정도로 욕심껏 채워올 수가 있었다.
골짝 바위 서리에 / 빨가장이 여문 딸기 /
가마귀 먹게 두고 / 산이 좋아 사는 것을 /
아이들 종종쳐 뛰며 / 숲을 헤쳐 덤비네 /
삼동(三冬)을 견뎌 넘고 / 삼춘(三春)을 숨어 살아 /
되약볕 이 산 허리 / 외롬 품고 자란 딸기 /
알알이 부푼 정열이사 / 마냥 누려 지이다.
-이태극 시인, <산딸기>-
사람들은 산에서 만나는 딸기의 종류를 두고 모두 산딸기라고 하지만 사실 잎 모양과 꽃 모양에 따라 그 종류만 해도 20여종이 넘는다. 딸기나무 무리에는 복분자딸기, 곰딸기, 멍석딸기, 줄딸기 등이 있으며 이들은 종(種)이 다른 별개의 나무다.
모양새의 차이를 보면, 산딸기는 줄기가 붉은 갈색이며 거의 곧추서고 잎은 보통 셋으로 갈라져서 한 잎자루에 한 개의 잎이 달린다. 반면에 복분자딸기는 줄기가 마치 밀가루를 발라놓은 것처럼 하얗고 덩굴이며 잎은 한 잎자루에 3-5개가 달린다. 열매가 익으면 까맣게 되는 것이 특징이다.
줄딸기는 복분자딸기 비슷하나 줄기의 하얀색이 덜하고 잎도 훨씬 작다. 곰딸기는 줄기에 가느다란 가시가 곰의 다리처럼 털북숭이로 붙어있다. 멍석딸기는 멍석을 깔아놓는 것처럼 땅바닥을 기어 자라므로 쉽게 구분할 수 있다.
산딸기의 가장 신선한 맛은 숲에서 직접 따먹은 것이지만 과실주를 담으면 그 빛깔과 맛이 또한 일품이다. 한방에서는 산딸기나 복분자딸기를 달리 구분하지 않고 복분자 혹은 복분이라는 생약명으로 쓴다. 약재에는 덜 익은 열매를 쓰는데 초여름에 아직 푸른 기운이 남은 열매를 따서 그대로 햇볕에 말렸다가 물에 달이거나 가루로 만들어 처방한다.
자양 강정 등의 효능을 가지며 몸이 허약한 사람에게 특히 좋고 몸을 따듯하게 하고 피부를 부드럽게 하는데도 효과가 있다. 산딸기 효능에 감동하여 이를 알리고 보급하는 민간모임이 있을 정도다.
복분자(覆盆子)딸기는 정력제로 유명하다. 열매를 먹으면 오줌발이 너무 세어 요강을 뒤집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동의보감에도 복분자는 "남자의 정력이 모자라고 여자가 임신되지 않는 것을 치료한다. 또한 남자의 음위증을 낫게 하고 눈을 밝게 하며 기운을 도와 몸을 가볍게 한다"는 기록이 있다. 전북 순창, 고창군에서는 1997년부터 민속주로 복분자술을 만들고 있는데 전국적으로 인기가 높다.
복분자딸기와 산딸기를 약으로 쓰려면 구분해서 쓰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조선왕조실록이나 동의보감에는 산딸기의 한자이름인 산매가 아니라 복분자로 분명히 적혀 있기 때문이다.
세종12년(1429) 궁내의사 노중례의 청에 따라 예조에서는 중국의사를 초빙하여 우리나라에서 나오는 약재를 감정하게 했다. 후박 등 열 가지는 합격하였으나 복분자 등은 중국약재가 아니라서 비교 할 수 없다고 하였다.
한편 중종 34년(1539)에는 "내관이 오늘 아침 복분자를 따기 위하여 후원에 들어갔더니 어떤 중이 숨어 있기에 붙잡았다"는 기록이 있다. 이런 여러 가지 고사로 볼 때 복분자는 우리 고유의 약제임을 알 수 있고 임금님도 궁중에 심어놓고 즐겨먹는 과일이기도 하였다.
-박상진 경북대교수 <나무 이야기>-